감정평가 산책 58 / 투자가치와 시장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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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58 / 투자가치와 시장가치
  • 이용훈
  • 승인 2014.09.2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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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2014년 9월 18일 아침, 온통 삼성동 한전부지 낙찰가로 어수선했다. 한전이 소유한 8만㎡가 조금 안 되는 강남 알짜배기 땅의 매수제안가가 10조 원을 넘겼기 때문이다. 예상치를 웃도는 낙찰가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10조 원이 천문학적 돈이라는 데 다들 이의는 없다. 도대체 얼마나 큰 금액인가? 2014년 확정 지출 예산이 355조 원 상당이다. 이것의 3% 금액이니, 대한민국의 열흘 분 생활비다. 올해 문화, 체육, 관광, 환경 분야 예산 총액 11조 7천 억 원에 살짝 못 미치는 금액이다. 컨소시엄 대표사인 현대차의 2013년 영업이익 8조 3천여 억 원을 웃돌고 평균 출고 가 기준으로 현대 자동차 70만 대와 등가다. 초봉 3천만 원 신입사원 35만 명을 채용할 수 있는 규모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얼마나 큰돈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현금 유보액이 많기로 소문난 현대그룹이기에 자금 조달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없다. 대기업이 사내 보유 현금만 쌓아놓고 투자를 기피하며 안전 운행을 해 온 단적인 증거라며 과도한 입찰액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필자 입장에선 강남 일부 필지에 대한 지가(地價)가 저 정도면 서울시 토지 가치는 과연 얼마일지에 관심이 쏠린다.

연초 시장의 예상치를 웃도는 기업 실적이 발표되면 이를 어닝서프라이즈[earning surprise]라고 부른다. 금번 낙찰가가 어떤 측면에서 충격인지 검토해보자. 해당 부지의 과세 기초가격인 공시지가는 1조 중반이다. 2010년 1월 1일 기준 공정가치로 평가한 자산재평가액은 2조 초반이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 대상 부지 매각을 위한 감정평가 금액으로 3조 초반을 통보받았다. 마지막으로 2등 입찰 기업의 매수제안금액은 5조 전후로 알려져 있다. 시장가치 이하인 공시지가, 4년 전 시장가치인 자산재평가액, 현재 시장가치인 입찰 최저가가 1조 단위로 상승한 것에 비하면 최종 낙찰가는 그 전 단계에서 갑자기 7조 원 뛰어버린 것이다. 낙찰가 총액이 아닌 토지 단가로 접근하면 @1억 3천 만 원/㎡이 산출되는데, 2014년 공시된 전국 최고 지가(서울 중구 충무로 1가 24-2, 화장품 판매점 nature republic 자리)@7천 7백만 원/㎡에 비해서도 한참 올라가 있다. 물론, 예정된 기부채납의 효과와 각종 세금 및 부담금을 고려하면 실질 매수 단가는 더 치솟을 것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시장가치와 낙찰가의 괴리다. 후자를 현대그룹의 투자가치로 부른다면 3배 이상 차이나는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원인 규명에 앞서 둘 중 어느 금액이 부실, 편향된 결과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시장가치는 ‘통상적인 시장에서 충분한 기간 동안 거래를 위하여 공개된 후 그 대상물건의 내용에 정통한 당사자 사이에 신중하고 자발적인 거래가 있을 경우 성립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인정되는 대상물건의 가액(價額)’으로 정의한다.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100년을 대다본 투자라고 말했다는 대목 하나만 주목해도 그들의 베팅 액이 시장가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느 누가 100년 뒤의 잠재가치까지 고려해서 매수 금액을 높여 줄까. 그룹 이미지·상징성을 고려한 입찰이라는 점, 경쟁 입찰자인 삼성 그룹에 용산 개발 입찰 당시 물 먹었던 전력, 그룹 입장에선 대체 불가능한 토지인 점, 오너의 실패 없는 입찰 지령까지 있었다면 웃돈 주고 사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한전부지의 그간 가격 자료와 주변 시세를 고려할 때 매각 평가액은 정상적인 시장가치고, 낙찰가는 투자가치인 셈이다. 그러므로 한남 더 힐 사태처럼 뻔히 시장가치 범위를 알고 있으면서 하단과 상단을 의도적으로 벗어나는 편향적 감정평가를 한 것이 아니라면, 시장가치로 추계된 한전부지 매각 평가액은 특정 매수 당사자를 위한 가격이 아닌 모든 시장 참가자를 위한 합리적인 가격이었던 셈이다. 투자가치로 평가하는 이들은 항시, 과거 및 현재의 가격 자료에 시선을 두지 않고 장래의 기여, 기대이익에 목을 맨다. 따라서 투자가치인 낙찰가는 ‘시장가치’가 아닌 ‘시장가치 외의 가치’로 분류될 것이고, 한전 측의 평가업체 선정 입찰에 참여해 최종 선정된 두 개의 평가법인이 평가한 금액과의 괴리를 문제시 삼을 필요가 전혀 없다.

투자가치가 이처럼 시장가치와 괴리될 수 있는 건, 가치의 성격 때문이다. 시장가치가 가장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라면, 투자가치는 주관적 가치라고 이분법적인 도식을 시도해도 과하지 않다. 투자의 타당성을 검토할 때 투자가치가 시장가치를 상회하면 적극적으로 투자를 권유하는데, 시장가치로 매입하면 투자가치만큼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니 그렇다. 매수자 입장에서 전국에서 가장 비싼 땅으로 인정했으면 충무로 최고 지가보다 못하게 가격을 매길 필요도 없을 것이다. 100년을 내다봤으니 잠재가치를 고려한 것이다. 삼성 서초타운처럼 현대가의 시너지를 얻을 수 있는 요지(要地)가 필요했으면 강남 마지막 노른자위 땅엔 사심이 듬뿍 들어간다. 통상 컨설팅 보고서에나 등장할 토지 매매 단가가 현실로 나타난 것은 거래당사자가 누구인지, 거래당사자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거래목적물이 무엇인지, 거래 의도가 무엇인지, 거래 이후의 상황은 어떻게 변화될 것으로 예상했는지를 고려해야 설명이 가능하다.

기업 인수합병 시 거래대금이 순자산가치를 초과하면 이를 영업권으로 인식한다. 최근 법제화 움직임이 있는 권리금도 무형의 ‘자리 값’인 셈인데, 현대그룹이 이 토지를 인수할 계획을 세우며 무형의 프리미엄을 얼마로 계산해 냈는지 내부 산출근거를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더라도 이번 투자의 사후 타당성이 입증되면 결국은 수 십 년 지나 낙찰가는 시장가치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현대의 베팅이 출혈을 감수하긴 했으나, 그룹의 도약 기반을 닦는 데 지불한 평범한 수준의 도로 포장비용이었는지. 류현진의 포스팅 비용과 연봉 총액이 시장 예상치를 크게 넘어섰지만, 오히려 저렴한 투자였다는 것을 엄연히 2년 째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수많은 사람들이 투자에 실패하고 일부만 대박 신화를 보이는 현실에서 현대 그룹의 이번 투자는 하나의 굵직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고, 수 십 년 간 인용되는 투자 건이 될 것이다.

감정평가는 모든 이를 위한 가치를 재단하기도 하지만, 특정 당사자에게만 유의미한 가격도 제시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단, 평가의뢰에 앞서 반드시 시장가치가 아닌 투자가치를 추계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그리고 평가 결과를 받아 보고 탐문해 본 시세와 격차가 있다고 놀랄 필요가 없다. 며칠 전 반려된 평가 건의 의뢰자가, 20억 수준에서 낙찰 받고는 50억 이상 너끈히 나가는 상가를 저렴하게 평가해 대출이 실행되지 않는다고 항의 차 들른 점을 보면 투자가치는 종잡을 수 없다. 그러니 비싸게 샀다고 타박 듣는 투자자는 부지런히 고액 베팅의 근거를 찾아 모으길. 사후적으로 보완·입증만 되면, 머지않아 시장가치로 격상될 기회를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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