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 (10) - 너 커서 뭐 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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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 (10) - 너 커서 뭐 될래?
  • 차근욱
  • 승인 2014.09.0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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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어디보자... 요즘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말해 보라고 한다면, 단연코 ‘늘어지게 자는 일’ 이라고 답하겠다.

그렇다면 24시간 매 순간을 옴팡지게 일만 하고 있는 것인가 하면, 뭐 꼭 그렇지도 않다. 아무 성과도 없이 컴퓨터 모니터를 째려보며 흘러가는 시간도 상당 할 테니.

원래 원고작업이라는 것이 사실 기다림의 연속인 법이다. 원고가 술~술~ 잘 풀려나갈 때야 뭐 아무런 고민 없이 신이 나 ‘흥~흥~’ 콧노래를 부르며 집중하겠지만, 한번 막히기 시작하면 정말 대책이 없다.

원고를 쓰다가 한번 막힐 때의 느낌은, 핵전쟁 방공호의 두꺼운 철문을 온 몸으로 밀어내면서 동시에 코끼리와 씨름을 하는 기분이랄까. 뭐, 기분이 딱 그렇다.

 
그럼 글이 안 나올 때는 어떻게 하느냐?! 나가서 딴 볼 일을 보냐구? 천만의 말씀! 그렇게 해서는 영원히 못 쓴다. 글이 아무리 안 나온다고 해도 글을 쓰려면 의자에 뿌리를 내린 채 계속 써야 한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어쨌든 쓰고 있는 노력이 중요하다고나 할까. 물론, 성과도 없고 효율도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거의 매일 밤을 지새우는 나날 속에서 계속 쓰다보면 어느 순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가 오니까.

그러다 글이 좀 풀린다 싶으면 그 때를 결코 놓쳐서는 안된다. 그 때 집중해서 쓰지 못한다면 원고는 결코 완성할 수 없다. 그러니까, 원고작업이란 막혔던 원고가 다시 써지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한없이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할지라도 같은 자리에서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작업이랄 수밖에.

원고작업들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물론 순수하게 창작을 하는 글이겠지만, 수험관련 원고를 쓰는 일도 늘 고민이다.

적어도 돈이 아깝다는 책을 쓰고 싶지는 않으니까.

게다가 내게는 원고작업 자체가 주는 심리적 압박도 만만치 않은 편이라, 솔직히 중압감으로 인해 원고작업을 하는 것 자체가 싫어 하염없이 미루고 싶을 때도 있어, 진짜로 딴 짓을 해 버리게 되면 한번 떠난 책상으로 좀처럼 돌아와 원고를 쓴다는 것 자체가 점점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경험상 가장 좋은 상태는, 원고를 쓸 때에는 원고만을 위해서 꿈쩍도 하지 않고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써 내려가는 것이다. 밥도 먹지 않고 나가서 다른 일을 하지도 않고 되도록 잠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아무런 방해도 없이.

제대로 도움이 될 만한 원고가 되기 위해서는 맥락이 살아있어야 하는데, 중간에 딴 짓을 한다거나 자리를 비우고 배를 채우고 온다거나 잠을 자버리면 그 맥락의 흐름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한번 집중해서 맥락을 잡았다 싶을 때 그대로 가는 것이 가장 좋다. 물론,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원고가 써지고 중간에 이런 저런 일이 없다는 전제 하의, 가장 최상의 조건일 때 얘기지만.

대부분의 일상은 이런 저런 회의와 강의준비랑 강의로 뼈와 살을 불사르다가 겨우 연구실로 돌아오게 되면, 찹쌀 시루떡으로 둔갑한 채 컴퓨터를 마주하기 마련인지라 핵 방공호 담벼락 앞에 다시 서게 된다.

결국, 코끼리랑 블루스를 추며 또 밤을 새고 기다리지 뭐, 하는 일상의 연속이다.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올 때까지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그러다보니 내가 꼭 서울에서 살고 있는 탓은 아니지만, 원고 고민 없이 해질 무렵 거리에 나가 차를 마시거나 휘적 휘적 걸을 수 있는 날에는 소풍을 가는 아이처럼 신이 난다.

특히 하늘에 노을이 지려는 낌새가 보이는 시간대를 가장 좋아하는 편이라, 노을이 지면서 어스름해지는 그 순간의 저녁공기가 그렇게 달콤할 수 없다. ‘역시 마실은 밤마실이 최고여!’ 하면서. 후후후, 설빙에 가서 인절미 빙수라도 먹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거든. 생각만 이지만.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달리기라도 하고 나면 그 상쾌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치, 깊은 산속 옹달샘에 가서 두뇌를 꺼내 뽀득 뽀득 윤이 날 때까지 시원하게 씻은 후의 기분이랄까. 물론, 옹달샘 오염시키기 전에 물도 몇 바가지 들이켜야지.

하지만 그런 숨 돌릴 짬도 사실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기껏 수업준비를 위해 책을 사러 집을 나서는 정도의 기회뿐이랄까. 주말도 없고, 명절도 없고, 휴가도 없다. 오직 수업과 원고만이 있을 뿐!

특히 개강과 마감이 빠작 빠작 다가올 때의 긴장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좀 더 좋은 강의, 좀 더 좋은 원고로 스스로 부끄럽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원고가 써지지 않을 때는 딴 짓을 하고 싶기는 하다. 당연하지! 나도 사람인데!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던가, 재미난 것을 보고 싶다던가, 누워 뒹굴다가 자고 싶다던가, 밖으로 나가고 싶다던가, 뭐 그런 것들이 하고 싶어 지지 않겠어요? 인간적으로다가.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다간 마감을 맞추지 못할 테니까. 그러면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커져서 이젠 별의 별 것이 다 재미있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미드를 정주행하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고 심야토론이 재미있어지는 것은 물론이며, 영어 문법책까지도 재미있어 보인다. 게다가 스트레스가 더~더~더~ 점점 커지기 시작하면 이젠 정신적 원인에서 오는 허기가 찾아온다.

먹어도 먹어도 출출한 이 어마무시한 공복감! 안 그래도 영국연구진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책상에 앉아 작업을 주로 하는 사람은 저절로 배둘레햄이 되기 마련이라고 하는데, 거기에다 치킨이며 빵이며 핏자 등을 먹어댄다면 이건 기름을 붓고 불길에 뛰어드는 격이다.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식욕이 마그마가 되어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나를 차선생 최후의 날로 이끌고 가는 것이다. 안돼~! 라고 소리지르고는 싶지만, 컵라면을 먹느라 소리를 낼 수도 없는 이 참혹한 현실에 눈을 질끈 감고 국물을 삼킬 밖에.

그런데 먹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허기가 질 때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좀 출출하다고 과자를 약간 집어먹다보면 그냥 빵으로 식사를 대체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빵을 먹게 된다.

빵을 먹어서 속이 든든해지면 좋겠지만, 대체로 빵을 먹다보면 뜨끈한 국물이 그리워지기 마련인지라 또 라면이 땡긴다.

그럼 젓가락을 놓을 무렵에는 문득, 건강에 나쁜 탄수화물을 너무 먹은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과일을 찾아 먹게 되고 그러다보면 다음 식사시간이 되어 결국 또 밥을 먹게 된다는... 뭐, 이런 패턴.

그러니 허기가 진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깔끔하게 배를 채우고 주전부리는 참아야 쭉쭉몸짱 오라버니가 될 수 있다는 안타까운 얘기. 놀라운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경악하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결국 처음부터 밥을 제대로 챙겨 먹었으면 좋았잖아! 라고 거울을 보고 말하게 된다.

원고는 안쓰고 먹기만 하는 거야? 라고 실망하셨을지 모르지만, 아닙니다. 분명 원고는 쓰면서 모니터 앞에서 오물 오물 하고 있는 것 뿐 이예요. 계속 쓰기는 쓴다니까요. 진짜예요.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7월과 8월에는 써야 할 원고가 많아서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자주 이런 사투를 벌였다. 그러다보니 몸도 마음도 점점 타락해가는 현실에 혼자 슬퍼하고만 있는 중인데, 9월에는 하루도 쉬는 날이 없으니 저절로 빠지겠지, 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고 있는 중이다. 뭐, 원고작업만 끝난다면야, 새벽에 열심히 뛰고 운동해서 뺄꺼야! 하면서.

그러니까요, 차팀장님! 저는 마감에 늦고 싶어서 늦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실은 아주 굉장히 열심히 쓰고 있어요. 매일 매일 겁나게 모범적으로다가 허벌나게 뜨겁고도 맹렬하게 쓰고 있습니다.

마감보다 훠~얼~씬 일찍 원고를 끝내서 차팀장님을 놀래켜 드려야지! 하고 혼자 좋아서 씨익 웃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원고를 보낼 때가 되면 마감을 넘기기가 일수라 인지부조화로 혼자 이불을 뒤집어쓴 채 괴로워하기도 해요.

뭐 꼭 변명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여튼 그냥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심과장님, 원고 빨리 보낼께. 늦어져서 미안해요.

그건 그렇고 이 원고를 마무리 할 무렵이 되어가니 갑자기 짜짬탕슉 셋트가 격하게 땡기기 시작했다. 짜장은 곱빼기로, 짬뽕은 해물이 많은 것으로. 탕슉은 물론 쫄깃해야지. ‘그런거 먹으면 살찌는데. 안되는데~ 안되는데~ 아... 아... 9월을 맞이해서 살빼야 하는데... 살빼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이지요.

9월 개강을 앞두고, 아직 신에게는 12킬로의 살이 남은 채로 이렇게 ‘천고차비’의 계절을 맞이했으니, 이것 참 난감한 일입니다. 참으로.

그건 그렇고, 여기까지 써 놓은 글을 읽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 군요. “이봐, 차선생! 너 진짜 커서 뭐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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