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의 '공감'(12)-기분을 충족시켜 줄 것인가, 두뇌를 충족시켜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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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의 '공감'(12)-기분을 충족시켜 줄 것인가, 두뇌를 충족시켜 줄 것인가?
  • 이유진
  • 승인 2014.08.28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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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KG패스원 공무원 국어 강사

저는 학원가에 꽤 일찍 나온 편이라 언제 어디서나 막내였습니다. 그래서 띠동갑이 훌쩍, 심지어 두 바퀴씩 넘는 선배님들과 일하는 것이 익숙합니다.

제가 ‘수업의 신’들을 만나 조금은 친해졌다는 생각이 들면, 정말 조심스럽게 부탁드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 수업에 대한 모니터링입니다. 물론 제 스스로도 현장에서 학생들의 표정, 수강평가, 수강 인원의 증감 등으로 모니터링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인기’에 대한 모니터링이지, 수업의 질에 대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다양한 과목의 ‘수업의 신’들에게 부끄럽지만 제 강의 자료나 동영상을 봐주십사 부탁합니다.

그런데 선배님들이 제게 주신 귀한 조언들 중, 제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버티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이것입니다.

“열 개의 공을 던진다고 열 개를 다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꼭 받을 수 있게 세 개의 공만 잘 던져 봐. 그래야 분필 잡고 밥 먹는다.”

 
이 선배님의 조언처럼, 교육학적인 연구 결과에서 학생들이 수업 직후에 가장 큰 만족도를 보였던 수업의 내용 구성은 ‘낯익은 정보의 재확인 70% + 불완전한 기억이나 원리의 각성 20% + 낯선 정보 10%’의 구성이었습니다.

여기서 낯선 정보의 비율이 늘어날수록 만족도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것은 낯선 정보를 만나는 지적 호기심보다 낯익은 정보를 재확인하는 반가움이나 안도감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도 이 사실을 정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용할 수도 있겠지요.

‘꼭 받을 수 있게 잘 던져 주는 것’은 강사의 소임이 분명합니다. 아마 학생들은 수업의 내용량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채,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들을 모두 이해했다며 매우 만족스러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제가 ‘세 개의 공만’ 던져도 되는 걸까요? 그것이 합격에 이르기에는 모자란 분량의 학습이었다면, 그때는 어차피 ‘열 개를 던져 줘도 다 못 받을 것’이었다며 한 해 더해서 공을 더 모으라고 격려하면 되는 걸까요?

저는 열 개를 던지려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학생이 세 개를 받으면 나머지 일곱 개를 다시 주워 와서, 거기다가 새로운 공 세 개를 더 보태 열 개를 또 만들어 던지지요. 그러니 항상 수업 시간에는 저도 바쁘고 학생들도 바쁩니다. 수업 시간에 여유가 없고 힘이 들지요. 여유가 없으니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기 힘들고 말이죠.

그러다 보니 대중적 강사(다수에게 인기가 있는 강사)가 되기 힘이 듭니다. 제 수업은 자기 뇌를 혹사시키길 즐기는 변태들이 좋아할 만한 수업입니다.(나래국어 수강생들~ 이건 친애하는 여러분들을 향한 애정이 어린 표현입니다.)

현재 저는 수업 내용의 구성을 ‘낯익은 정보의 재확인 30% + 불완전한 기억이나 원리의 각성 40% + 낯선 정보 30%’로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전의 수업 시간에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은 불완전한 기억이나 원리가 되어 다음 수업 시간에 반복되고, 각성됩니다.

이 방법이 수험생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결국 저도 수험생이 선호하는 비율치로 영합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은 제게 교수 방식의 연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고, 수험생들의 지적 호기심과 의지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있습니다.

이번 칼럼은 쓰고 보니, 여러분을 설득하기 위한 칼럼이라기보다 저를 다잡기 위한 일기였네요. 몇 년 뒤에 이 칼럼을 보고도 제 스스로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응원해 주세요, 여러분. 

▲ 그림 이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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