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53 / 스티그마(stigma), 숨기고 싶은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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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53 / 스티그마(stigma), 숨기고 싶은 이력
  • 이용훈
  • 승인 2014.08.2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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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쇠붙이로 문양이나 문구를 만들어서는 불에 벌겋게 익혀 도장 찍는 행위. ‘낙인’이라는 단어를 설명할 때면 죄인의 몸에 새겨진 형벌의 표식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물론 목재, 기구, 가축 따위에 주로 찍었던 것을 인간에게까지 확장시킨 건 지혜의 오용일 것이다. ‘낙인’은 부정적 어감 때문인지 ‘불도장’으로 순화시키도록 했으나, 도로 명 주소 정착이 늦춰지듯 기존 단어의 활용 반경이 여전히 넓다. 비단 몸이나 외관의 표식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다시 씻기 어려운 불명예스럽고 욕된 판정이나 평판을 가리킬 때도 이 단어를 공유한다.

낙인, 곧 부정적 이미지에 가장 예민한 건 청문회를 앞둔 행정부서의 예비 수장들일 것이다. 요즘은 국회 청문회가 열리기 전에 언론을 통한 사전 청문회가 통과의례다. 각종 의혹들이 무수히 제보된다고 들었다. 자천타천 저격수가 된 각 당의 국회의원은 자체 조사를 벌여 제보의 진위를 가리고 신빙성이 있는 내역은 언론에 슬쩍 흘린다. ‘그렇다’가 아니라 ‘그랬다고 하더라’는 식의 보도 역시 단정적 발표가 지닌 위험을 빗겨가기 위한 고육책이다. 이들의 주 타깃은 ‘탈세’, ‘위장전입’, ‘병역기피’, ‘부당한 청탁’, ‘부동산 투기’문제다. 요즘은 예비 수장 후보군 중 학계와 법조계 출신이 다수라서 그런지 ‘논문 표절’ 혹은 ‘연구비 유용’ 등의 새 메뉴가 가세했다. 이들 청문회 후보자들이 숨기고 싶은 이력은 발생 시점이 과거이기에 원죄에 속한다. 기정사실이기에 초동대처는 불가하다. 그저 논란이 확산되는지 여론의 동향을 예의주시할 뿐이다. 매 청문회마다 각 후보자의 숨기고 싶은 과거가 들춰져 ‘낙인’까지 이르면 낙마는 불가피하다. 그 부정적 이미지는 더 강력한 긍정적 이미지가 아니고서는 희석되지 않을 정도로 생명력이 끈질기기 때문이다.

‘낙인’효과는 지역이나 개별 부동산에도 발생한다. 연쇄 성폭력 및 살인 사고로 경기도 내 한 도시는 한 동안 대중이 색안경을 끼고 볼 정도였다. ‘부실사업장’ 이미지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된 사업장은 한동안 유치권을 주장하는 시공사의 플래카드를 품고 있다. 경매로 낙찰 받은 이가 공사대금지급과 유치권 해제조건을 맞교환 한 후 서둘러 잔여공사를 마무리 짓고 성대한 분양홍보에 나서도 수요자의 냉담한 반응을 피하기 힘들다. ‘흉물상가’의 이미지는 쉽사리 개선되지 않는다. 경매 낙찰 받은 건물에 입점하는 입시·보습학원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속설이 간간히 들리는 걸 봐선 부실사업장의 ‘낙인’이 꽤 오래 지속되지 싶다.

‘낙인’효과가 감정적인 선호도에 영향을 미치면 부동산 가치까지 출렁인다. 얼마 전 한 대기업의 생산 공장 주변으로 유해 화학 물질이 유출되면서 방송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적이 있다. 이 공장 코앞에 있는 아파트가 문제였다. 대상 아파트는 이 부근에서 고속도로와의 접근성이 최상이고, 대형마트 및 대학병원 등의 편익시설의 이용편의도 역시 최고 수준이었다. 대규모 생산 공장에 초 근접했다는 점을 빼고는 달리 불리한 점을 찾을 수 없는데, 아파트 가격은 500m 뒤쪽 단지보다 천만 원 이상 낮다. 유해 물질의 유출 피해 가능성이 잠재된 아파트 단지였다가 이제는 유출 이력이 있는 아파트 단지 꼬리표를 달고 있어 모든 주택 수요자가 낙인을 부여한 것이다.

해당 부동산 주변의 비(非)선호시설의 존재만으로 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은 비(非)선호시설과의 거리에 동일 평형·품질의 아파트 거래단가가 연동되는 것으로 입증될 수 있다. 또 다른 증거는 이러한 유해 혹은 혐오시설의 철거 혹은 이전계획이 발표된 후 실행 시점에 가까워질수록 부동산가치가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는 후광효과다. 실제 이전이 이뤄지고 그 자리에 선호시설이 입점한다면 상승세는 한동안 이어질 공산이 크다. 어쨌든 이전 발표 직전과 이전이 완료된 후의 동일 부동산의 가격 격차는 곧 비(非)선호시설의 ‘낙인효과’라 불러도 무방하다. 부정적 이미지와 가치를 연동시킬 수 있는 친시장적 입증자료가 조사·축적돼 있다면 한 권의 보고서로 이런 현상을 담아 낼 수 있다.

주변의 비(非)선호시설이 아닌 내재한 비(非)선호조합으로 낙인효과를 겪는 신축 아파트도 있다. 재개발 혹은 재건축 사업이 완료되고 들어서는 신규 아파트 중 특정 동(棟)이 그들이다. 100여 세대가 한 동(棟)을 이루는데 이 중 10세대 정도만 분양세대고 나머지는 의무적 임대세대라면 분양세대는 임대세대와 혼합되어 있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 전 세대가 분양아파트로만 구성된 동(棟)이 행정고시 출신의 5급 공채 사무관이라면 임대아파트가 혼재된 동(棟)은 7급 공무원 정도로 낮춰 보기 때문이다. ‘이 라인은 임대아파트입니다’라고 말하는 공인중개사는 옆 동보다 1~2천 만 원은 싸게 주고 분양받거나 매수할 수 있다고 달리 표현한 것이다.

대상 부동산에 내재한 유해한 환경을 개선한다 해도 이 낙인효과의 완전 치유는 어렵다. 토지 지하에 매장된 오염물질을 발견하고 전문 처리 업체를 동원해 오염제거 및 중화작업을 성공리에 마쳐도, 오염 물질이 없는 인근 대체 가능한 토지 가격수준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좋게 표현하면 ‘안전 심리’겠지만 일말의 유해 가능성이 있는 토지에 대한 ‘혐오감’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환경공학에서는 이를
‘스티그마(stigma)’라고 부른다. 숨기고 싶은 이력이 만든 낙인효과는 수년에서 수 십 년 생존하는 게 다반사다.

낙인효과를 당하고 있는 부동산을 평가할 때 대상이 토지라면 시장접근법 하에서는 ‘스티그마 효과’의 유무에 따른 가격 격차를 반영하면 될 것이다. 거래가 완료된 토지(‘거래사례’) 혹은 표준지와 대상 토지의 개별적 요인, 품등을 비교할 때 항목 중 하나인 ‘환경조건’에 이런 점을 반영할 수 있다. 해당 항목은 인근 토지의 이용 상황, 위험 및 혐오시설 등의 인접유무를 비교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통계적인 방법 또한 대안이다. 폐업 주유소를 타 용도로 전용하려면 지하 오염물질 제거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 비용 이상으로 매매금액이 그 주변 토지에 비해 떨어진다면 그 차액은 ‘스티그마(stigma)’라고 보면 될 것이다. 폐업 주유소의 사례를 다수 확보할 수 있어 이런 식의 접근은 통계적인 지지를 그리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다.

초과이익을 발생시키는 영업권은 무형자산 중 하나다. 마찬가지로 낙인효과가 발생하고 있는 대상 부동산은 무형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 최선을 다해 이력 관리를 해야겠지만 부득이 ‘낙인’ 찍힐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이를 반전시킬 수 있는 더 강력한 유인책이 필요하다. 물론 이가 불가능하다면 ‘낙인’의 짐을 질 각오를 해야 한다. 부동산 가치 평가의 대 원칙은 ‘현황평가원칙’이고 이는 현재상태의 이용 상황과 공법상 제한, 주변 환경, 내재한 위험성 하에서 몸값을 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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