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 (8) - 책읽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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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 (8) - 책읽기의 즐거움
  • 차근욱
  • 승인 2014.08.2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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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아무래도 병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을 때라던가, 시간 여유가 없는 때라면 관심사를 보다 생산적인 것에 두어야 할 텐데, 도무지 이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카드명세서나 지출항목을 정리하다보면 스스로 자신의 도서구입비에 심각해지기도 한다.

경제생활을 운영해 갈 때에는 수입과 지출을 충실히 고려해서 자신의 경제규모에 맞는 지출예산을 짜는 것이 건전한 상식인데, 이상하게 책에 대해서만큼은 이성을 잃는다. 보고 싶은 책, 갖고 싶은 책이 있으면 잠들지 못해 뒤척이다가 견디지 못하고 결국 경제적 상황을 떠나 그냥 지를 때가 간혹 있다.

당구장에 가면 잠이 오고, 카드나 화투는 아직까지 익히지 못했다. 사실, 사회생활을 해야 하긴 해야 하니, 배워는 두어야 겠다 싶어서 카드나 화투 배우기에 몇 번이고 도전은 해 보았지만, 결국 습득은 하지 못했다.

 
일단 내겐 화투가 재미가 없고 지루했다. 왜 그렇게까지 괴로운 자세로 앉아 그림이나 숫자를 맞춰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도 그걸 해서 보내는 시간이 죽도록 아까웠다.

특히 화투에서 그림만 보고 점수를 계산하는 분들을 보면 거의 경외의 눈길로 바라보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걸 다 알고 계실까 싶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지금은 포기했다. 이제 와서 굳이 사회생활이라는 미명하에 괴롭고 싫은 할 견디고 참아가며 억지로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화투나 카드를 하지 못해서 어울리지 못하는 사회생활이라면, 뭐 그냥 안 어울리고 말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포기하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개인적으로는 화투나 카드를 배울 시간에, 피아노를 더 배우고 싶다. 그 편이 훨씬 즐겁고 재미있으니까.

재주 없는 내 입장에서는 당구도 마찬가지인데, 일단 당구장에 들어가면 잠이 온다.

대학 시절에는 어린 마음에,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인내의 과정을 견뎌내어 꼭 배워야 되나보다 싶어 친구 따라 몇 번인가 당구장에 가보기는 했지만, 당구를 치지 못해 사귀지 못할 친구라면 진짜 친구는 아닐 거야, 라는 결론을 내리고 배우기를 그만 두었다.

역시 머리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도무지 재미를 붙일 수 없어서 둔한 자신을 탓하며 관두었다.

게다가 당구장은 참으로 이상하게도 졸음이 쏟아지는 곳이라 견딜 수 없이 피곤했다. 그냥 공기도 안 좋은데다, 빛나는 청춘을 그런 퀴퀴한 곳에서 보낸다는 것 자체가 우울했다.

하지만 뭐 세상에는 도무지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있는 법이니 당구를 좋아하는 멋쟁이도 있겠거니, 하고 납득하고는 있다.

그런데, 책에 대한 집착은 나 스스로도 이해가 안된다. 특히 의식주의 중요부분을 포기하더라도 수입의 대부분을 책 구매에 쏟아 붓고 있는 상황은 정신적 문제가 아닌가 싶어 심각히 고민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활공간이 점점 책 창고처럼 되어가다 보니, 이건 도무지 어디 한 군데 다리 뻗고 쉴 여백이 아예 없어지는 느낌인지라 이젠 위협을 느끼기 까지 한다. 예전에 좁은 공간에서 책을 쟁여놓고 지낼 땐 쌓아 놓은 책이 잘 때 무너지면 죽지 않을까? 하고 깔려죽는 걱정을 하며 자기도 했었다.

이덕무 선생님의 학식수준까지 된다면야 이런 위험을 감수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의 수준은 아예 꿈도 못 꾸는 깜냥에서 단순히 생명의 위협을 느껴가며 책을 모셔놓고 있노라니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쌓여있는 책을 보면서 저 책들 중에서 죽기 전에 다시 볼 책이 몇 권이나 될까, 싶어 다 집착이구나 했다.

그래서 이사를 갈 때 한번은 책들을 헌 책방에 제법 팔기도 하고 집 앞에 내놓기도 하며 짐을 줄였었는데, 나중에 그 헛헛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어 두고 두고 후회를 했다.

아직까지도 가끔은 그 때 없앴던 책 생각을 하면서 다시 읽고 싶다거나 바보같은 짓을 했었다며 아쉬워하기도 하니까.

이덕무 선생님께서는 책읽기의 이로움을 “첫째,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훨씬 낭랑해져서 글귀가 잘 다가오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한다.

둘째, 날씨가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의 기운이 스며들어 떨리는 몸이 진정되고 추위를 잊을 수 있다. 셋째,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과 마음이 책에 집중하면서 천만 가지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넷째, 기침병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목구멍의 걸림돌을 시원하게 뚫어 괴로운 기침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라고 써 놓으셨다고 하니, 이건 그야말로 마인드 컨트롤의 대가가 아니신가!!!

난 배고플 땐 먹어야 하고 추울 땐 따뜻한 곳에서 누워 몸을 지져야 한다. 아플 땐 병원에 가야지! 역시 아무래도 저 경지까지는 무리라니까.

하지만 비록 이덕무 선생님의 발끝에도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당구도 못하고 화투도 못치는 내게 유일한 즐거움이 있다면 그건 당연히 ‘책’이다.

가끔은 시간에 쫓겨 읽지도 못하는 책을 소유욕이나 집착 때문에 reader가 아니라 collecter가 되어 책을 사 모으는 것은 아닐까 싶어 스스로의 정신건강이 심하게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책이 좋다.

일단 책은 ‘타임머신’이다. 어떤 분들이든 책을 통해서는 만날 수가 있으니까. 그것도 커피 한잔 정도의 가격이면 어느 시대에 활동하셨던 분이라도 언제든 어디서든 소통할 수 있다. 책 한권을 보다가 딱 한 문장이라도 가슴에 남는다면 그건 굉장히 남는 장사다.

누군가 그렇게 가슴에 남는 일깨움을 전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만(감정이나 안 상하면 다행이지!), 책이라면 커피 한잔 정도의 값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열 번을 죽었다가 깨어났어도 나 혼자였다면 깨우치기 어려웠을 일을, 커피 한잔 정도의 투자로 만나다니! 이건 그야말로 횡재라고 밖엔 설명할 길이 없다.

게다가 책은 내게 늘 ‘길’을 보여주곤 했다. 안철수 박사님께서는 책에서 답을 찾지 말라고 하셨지만, 난 아니라고 본다.

책에 답이 바로 있는 것은 아니어도 적어도 찾다가 찾다가 보면, 길을 보기 마련이고 길을 볼 수 있었다면 머지않아 나름의 답을 만날 수 있기 마련이니까. 심란한 마음을 잊고 싶을 때면 아직도 ‘정석’을 펴서 문제를 하나 하나 풀어보기도 하고, 마음이 답답할 때면 ‘맹자’를 펴서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나름의 길을 헤쳐 나아갈 힘을 얻는다. 어쩌면 책은 자신과 마주해 이야기할 수 있는 비밀의 문인지도 모르지.

그리고 책은 내게 ‘여행’이었다. 한비야 님의 글들을 읽을 때면 나도 괜히 가슴이 뛰었고, 법정스님의 글을 읽을 때면 어느샌가 알싸한 새벽 공기에 코가 시린 느낌이 들곤 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에, 결국 앞으로의 인생에 새로운 꿈을 품곤 했다. 이렇게 책 속에는 늘 새로운 친구들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있으니, 그 유혹을 뿌리치기란 정말 정말 어렵다.

요즘은 톨스토이 선생님께 꽃혀서 전집을 구해 보고 있다. 모두가 그렇게 말하듯, 러시아 문학이란 그야말로 대단하니까. 특히 ‘인생독본’ 같은 책은 ‘흥~!’하며 한 귀로 흘려듣기도 하고 ‘오~!’하며 곰곰이 생각하게 되기도 하게 되는데, 조금씩 커가면서 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빨리 읽고 빨리 요점정리를 하는 쪽에 비중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지금은 책을 되새기며 읽는 편이다. 천천히 묵직~하게.

책은 그 책의 성격에 따라 읽는 방법도 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닌가, 나름대로는 그렇게 느끼고 있다.

자기계발서 같은 책들은 그냥 빨리 휘리릭 읽고서 필요한 정보만 습득하는 방법으로 읽는 것이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소설은 느긋~하게 읽으면서 내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 후회를 아낄 수 있다. 그리고 위대한 영혼으로 쓰여진 책들은 한 글자 한 글자 묵상하며 읽는 것이 인생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묵상해야 하는 책들을 휘리릭 읽어버리면 이건 좀 낭비다. 천천히 생각하며 읽다가, 불현 듯 깨닫게 되는 지혜에 무릎을 치게 되는 그 기쁨을 놓쳐버린다니, 그야말로 안타까운 일일테니.

여기까지 쓴 글을 읽어보니, 쑥스럽기도 하지만, 뭐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원래 수필이라는 것이, 손 가는대로 쓰는 글이 아닌가! 굳이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자면 역시, 마음에 드는 책 한권을 읽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창 밖에선 귀뚜라미가 울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여름밤, 잠자리에서 느긋하게 책을 들고 있는 순간이야말로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달콤한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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