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군대폭력, 제도적 개선책 마련이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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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군대폭력, 제도적 개선책 마련이 시급
  • 오시영
  • 승인 2014.08.0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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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2014년 대한민국의 8월, 한여름 무더위보다 사람이 사람을 더 뜨겁게 달군다. 제28사단 소속 윤 모 일병이 이 모 병장 등 같은 부대원들로부터 장기간 집단구타를 당한 끝에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다. 지난 4월에 발생한 사건이, 그냥 수많은 폭력사건 중의 하나처럼 묻혀 버릴 수도 있었던 사건이 뒤늦게 국민에게 알려져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고, 끝내 육군참모총장이 옷을 벗는 사태로 확대되고 있다. 가해장병들의 잔인하고 집요한 괴롭힘은 어찌 보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우리 속에 내재된 악마성을 보여준 것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이다. 이 일을 계기로 군대 내에서 자행된 수많은 폭력사건이 여기저기에서 드러나면서 군대 내 가혹행위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사건, 유병언 회장의 체포 과정에서 그의 시신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 초동수사를 그르친 책임을 지고 이성한 경찰청장이 사표를 냈고 수리될 모양이다. 슬프지만, 이런 곳에서 “남의 비극은 나의 기쁨”이라며 희희낙락하고 있을 이들의 모습이 보이기조차 한다. 공석이 된 육군참모총장 자리에, 경찰청장 자리에 어찌 보면 똑 같은 책임을 져야 할 하급관련자가 운 좋게 진급해야 보란 듯이 자리를 꿰차 앉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책임져야 할 사실을 놓고 최상급자는 옷을 벗고, 그 다음 하급자는 그 최상급자의 보직으로 승진하는 것, 어찌 보면 참 웃기는 희극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 데는 몇 가지 심리유형이 있다. 첫째가 들키지 않을 것이라며 치밀한 계획을 세워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로 얼마 전 발생한 팽 모씨와 서울시 김 모 의원에 의해 벌어진 것으로 알려진 한 재력가에 대한 살인사건이 그렇다. 둘째가 들켜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형 범죄로, 생활이 궁박한 이들이 잡힐 땐 잡히더라도 먹고 살아야겠다며 생계형도적질 같은 것을 하는 경우이다. 셋째가 가해행위를 당해 오다 더 이상 당하며 살 수 없다는 반격심리로 너 죽고 나 죽자며 저지르는 범죄로, 얼마 전 22사단 임 모 병장에 의해 자행된 자신을 무시한 동료병사들에 대한 총기살해사건이나 폭행배우자에 대한 상대 배우자의 살해사건 등이 그러하다. 넷째가 심리적으로 내재된 불만 등이 쌓여 세상 모두를 적으로 돌리고 저지르는 복수심리를 표출하는 범죄로,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적 묻지 마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이다. 다섯 번째가 자신은 범죄를 저질러도 보호해 줄 뒷배경이 든든하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다며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로, 권력가나 재벌가 등 힘센 집 자녀 같은 이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이에 속한다고 하겠다. 이 외에도 분류하기에 따라서는 수많은 범죄심리유형이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보면 저런 유형의 범죄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아무리 많은 어둠도 멀리서 비치는 촛불 하나의 밝음을 이길 수 없다. 아무리 깜깜한 밤하늘이라 할지라도 멀리서 반짝이는 별빛 하나의 밝음을 어찌할 수 없다. 범죄도 마찬가지이다. 세상 모든 범죄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그 범죄를 “들킨 죄”가 되게 하는 것뿐이다. 범죄가 들키기 전까지는 신조차 그 범죄를 용서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에게 들키게 되면, 신은 결코 그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신은 스스로 인간을 벌하기보다는 인간을 통해 인간을 벌하는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제28사단 가해사병인 이 모 병장은 사고부대로 전입하기 전 다른 부대에서 문제를 일으켜 사고부대로 전입되어 왔고, 고참이 되면서 무소불위의 폭력을 행사해 왔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가해행위에 동참했던 다른 병사들도 대부분 폭행을 당해 오던 피해자에서 고참이 되어가면서 가해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폭력의 대물림이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어둠 속에 감추어진 범죄”를 드러나게 하는 시스템이 강구되어야 한다. 가해자 이 모 병장은 자신의 아버지가 건달이자 조직폭력배임을 내세우며 자신의 폭행사실을 누설하면 피해자인 윤 일병 아버지 사업을 망하게 하고 어머니를 섬에 팔아버릴 것이라는 황당한 협박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범행에 대한 피해자의 신고의지를 말살시키기 위한 고도의 심리적 전술을 쓰기조차 한 것이다.

40년 전 필자가 군대생활을 할 때, 가장 괴로웠던 것이 “줄빳다”라는 집단폭행이었다. 내무반에서 최고참이 전 병사를 집합시킨 후 야전침대용 막대기로 전 병사를 한 대씩 때리면 그 다음 선임이 다시 그 아래 병사들을 한 대씩 때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집단폭행방식이었다. 이때는 입대동기일지라도 군번이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선임병이 되어 동기생을 폭행하도록 강요되기도 하였다. 폭력이 난무하던 40년 전, 사회는 유신헌법이 발효되어 민주화투쟁을 국가폭력으로 진압하고자 전경의 최루탄과 곤봉으로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그런 과정에서 잡혀오거나 때가 되어 입대한 젊은이들은 서로서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어 “줄빳다”로 상징되는 폭력성을 집단적으로 키우고 있었다. 6.25전쟁 후 한국군이 북한군에 의해 목숨을 잃은 병사는 정확하게 산출할 수는 없지만 채 백 명이 되지 않을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같은 한국군 병사끼리, 고참병사에 의해, 장교나 부사관 등에 의해, 또는 하급자에 의해 살해당한 우리의 대쪽 같은 젊은이들은 건군 이래로 따지면 아마 수천 명에 이를 것이다. 전우에 의해 살해당한 병사들이 적군에 의해 살해당한 병사에 비해 수십 배에 이르는 군대라면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군은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 그것은 “군사보안”이라는 군의 특수성으로 위장막을 친 군의 자기방어핑계를 국가와 국민이 묵인해 왔기 때문이다. 다시 사십년 전으로 돌아가, 제28사단 윤 일병처럼 최고 졸병으로 줄빳다를 맞아오던 어느 날, 그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고 내무반 모든 병사들은 가족과 연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이 싱숭생숭했던 날이었는데, 그 줄빳다 고참이 또 다시 “전체집합”을 외치자 내무반 공기는 차갑게 얼어붙었고, 줄빳다가 중고참 정도에 이르렀을 때 엎드려뻣쳐를 하고 있던 누군가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에이 XX”하고 벌떡 일어나 그 가해병장을 쓰러뜨렸고, 이에 순간 동조한 몇 명이 가세하여 그 줄빳다 고참을 반 죽여 놓았다. 부대가 발칵 뒤집어졌고, 그 병장은 전역 한 달을 남겨 놓고 영창에 넘겨졌고, 반란(?)을 일으켰던 몇몇 사병은 하극상이었지만 장교들로부터 몇 대의 빳다를 받고 용서(?)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시작도 줄빳다 폭력이었고, 마무리용서도 단체 빳다 폭력이었다. 폭력에서 시작되어 폭력으로 끝나는 시대였다. 고참의 줄빳다 공포에 떨었던 졸병들은 그 항명사건을 조사받으면서 영창에 넘겨져 전과자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고, 다행히 군대영창이 아닌 몇 대의 장교 빳다로 용서를 받자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기억이 새롭다. 정당방위가 좀체 인정되지 않는 대한민국은 “참으면 제28사단 윤 일병, 반항하면 제22사단 임 병장”꼴이 되도록 방임 또는 조장되는 사회현상은 개선되어야 한다.

그때 당시 한 방 내무반원들은 전우가 아니었다. 고참은 언제 저 놈이 발광하며 “집합” 구호와 함께 야전삽자루로, 아니면 야전용침대 막대기로, 그도 아니면 군화발로 폭력을 행사할지 모른다는 공포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항명사건 이후 줄빳다 관행은 없어졌지만 고참의 특정 졸병에 대한 개인적 폭행은 여전히 은밀하게 자행되고는 하였었다. 그 폭력의 대물림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대한민국 군대, 세상은 많이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군대는 1960년대, 1970년대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진짜 바뀌어야 한다. 필자는 제대 사흘 전 졸병들이 마련해 준 조촐한 환송식파티에서 “나는 지난 34개월 동안의 군대생활 중 한 번도 빳다를 잡아본 적이 없었습니다.”라는 필자의 고별사에 많은 내무반원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더러는 아쉽다며 사회에 나가 꼭 만나자며 눈물 글썽이던 이들도 있었던 그 날을 나는 평생의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군대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첫째가 의식개혁이고 둘째가 제도개선이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 제도를 만들어 잘 집행하면, 그 제도를 따르기 위해 의식이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그 하나의 방법으로 군사법원 등 군대내 사법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이 크다. 군대 내 범죄를 이원화하자는 것이다. 군사보안과 관련된 범죄와 절도나 강간 등과 같은 일반형사사건에 불과한 범죄를 분류하여, 군사보안에 관련된 범죄는 순수한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하여 국가안보를 우선시하더라도, 일반형사범죄는 군사법원이 아닌 일반법원에서 재판하도록 이제 제도를 바꿀 때가 되었다. 물론 전시이거나 계엄상태와 같은 특수한 경우에는 예외를 두더라도, 평시에는 군인의 일반형사범죄에 대한 군사법원의 관할권을 배제하고 일반법원이 재판하는 형사소송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할 시점에 왔다. 군사법원도 장교가 되었든 사병이 되었든, 법무관으로만 구성된 군사법원에서(현재는 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일반장교가 계급이 선임이라는 이유만으로 재판장이 되어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재판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사단장 등에게 주어져 있는 “확인조치권”을 평시에는 배제하여야 한다. 사단장 등의 확인조치권은 재판이 확정된 후 사단장 등 부대지휘관이 아무런 이유 없이 형을 제 마음대로 깎아주는 “사면권”을 말한다. 헌법 제79조에 의해 특별사면권(개별적 사면권)은 대통령이 법률에 따라 행할 수 있을 뿐이고, 일반사면권(전체적 사면권)은 국회의 동의를 얻은 후 행할 수 있을 뿐이다. 헌법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부대지휘관의 확인조치권은 위헌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원래 군대는 폭력을 먹고 사는 합법적 폭력국가기관이다. 하지만 그 폭력은 자국민이 아닌 전시의 적국에게 행사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국가보안이라는 밀폐성, 은밀성, 비접근성 등을 빙자하여 신성한 병역의무를 수행 중인 국민의 자식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여 죽거나 다치도록 방치하는 것은 군 수뇌부의 직무유기라고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참모총장이 짤려 줄줄이 승진해서 좋다고 희희낙락하지 말고 제발 병사들을 귀하게 여겼으면 한다. 국민의 입에서 “빌어먹을 놈의 군대!”라는 탄식이 나오지 않도록 말이다. 대한민국 군대가 거듭나기를 바란다. 또 시끌벅적, 요란스럽다가 용두사미가 되고 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민ㆍ군으로 구성된 “군폭력조사위원회”를 설립하고, 모든 병사들이 위 위원회에 폭력사실을 신고하도록 하여, 이를 심사하여 헌병대나 군검찰에 통보하여 그 결과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군 수뇌부도 군폭력은폐를 통한 오마조마주의에서 벗어나, 이를 공개하여 개선하겠다는 발상의 대전환을 해야 할 것이다. 공개해서 군폭력이 사라지면, 장군들도 도중에 짤리는 개인적 억울함도 없어지지 않겠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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