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 (6) - 가끔은 느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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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 (6) - 가끔은 느리게
  • 차근욱
  • 승인 2014.08.0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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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아직도 참 후회되는 기억인데, 석사과정 시절의 일이었다.

그것도 모두 세상을 배우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위안을 삼고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공부한답시고 대학 때부터 집을 나와 생활하던 나는 오랜만에 본가에 갔었다.

누구나 그렇듯, 예나 지금이나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에 가면 맨발로 달려 나와 맞아주시는 분들은 어머님들이신지라, 우리 어머님께서도 무척이나 반가워 하셨었다.

그래서 만들어 주시는 소라 된장찌개도 먹고 마루에서도 좀 뒹굴뒹굴도 하다가, 어머님께서 시장에 같이 가자고 하셔서 아직은 땅거미가 비치지 않을 저녁 무렵 어머님과 함께 집을 나섰다.

 
시장에 가서 뭐 그리 대단한 것을 사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냥 소소한 것들을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난 어머님을 따랐다. 그러던 차에 어머님께서 ‘갈비탕이 먹고 싶다’라고 하셨다.

학생시절이라 돈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갈비탕 정도는 사드릴 수 있겠다 싶어 어디를 가야 하나 생각하다 그 때 마침 시장 쪽에 새로 개업한 ‘회관’을 본 기억이 떠올라 - 왜 우리나라는 ‘회관’과 ‘가든’이 고기류를 파는 식당이름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 나는 어머님을 모시고 그 식당에 가서 갈비탕을 주문하고 앉았다.

그런데 갈비탕을 기다리다가 문득 어머님께서 무언가 한 가지를 깜빡하고 안사셨다며 안타까워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기억에 없지만 그 역시 소소하고 시시한, 뭐 그런 생활용품이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식사하고 계시라고 말씀드리곤 벌떡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

물론, 어머님께서는 안그래도 된다고 하시며 한사코 만류하셨지만, 식사 후에 다시 시장을 도시면 어머님께서 피곤하시리라는 생각에 그냥 젊은 제가 금방 다녀오겠다고 하며 서둘러 식당을 나왔었다.

하지만 뭐 아무리 시시한 것이라고는 해도 그 ‘회관’의 바로 옆에서 파는 것은 아닌지라, 시장 쪽으로 가서 물건을 사야 했기에 시간이 그리 금방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별 것 아닌 물건을 사온 것은 우리가 식당에 들어갔던 때부터 제법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고 나는 다시 어머님이 계시는 식당의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알았다. 내가 얼마나 철없고 어리석고 바보 같았는지를.

식당입구에서 바라본 어머님은, 완전히 텅 빈 갈비탕 그릇을 당신 앞에 덩그라니 놓으시고 쓸쓸히 앉아 계셨다. 그렇다. 어머님께서 바라셨던 것은 맛있는 갈비탕이 아니셨으리라.

그것이 갈비탕이어도 좋았고 아니었어도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어머님께서 진정 원하셨던 것은 오랜만에 집에 찾아온 아들래미와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으셨던 것이었겠지.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난 무엇보다 소중했을 인생의 한 시절을 바보같이 놓쳐버렸던 것이다. ‘보다 빨리, 보다 편리하게’를 외치면서.

어머님 곁으로 쭈뼜쭈뼜 다가섰다. 어머님께서는 ‘사왔니?’하시면서 슬쩍 일어나셨다. 적잖이 실망하신 모습이셨다. 아마 되도록 천천히 드셨을 것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렇게 갈비탕 한 그릇을 국물 한 방울도 남지 않도록 숟가락질을 하시고도, 아들이 오지 않아 아마 텅 빈 그릇을 앞에 두고 무안한 시간을 삼키시며 혼자 앉아 기다리셨으리라.

나는 그 모든 것을 모른 척하며 ‘다 드셨어요?’라고 웃으며 말씀드리고 계산한 후 나왔다. 어머님께서도 짐짓 모른 척 하시며 다시 함께 집으로 향하셨지만, 그 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으셨으리라.

그렇게 몇 분을 아낀들, 그렇게 몇 걸음을 아낀들 사실은 그 효율성과 경제성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 마주 앉아 그 자체를 함께 하는 것이었으므로. 나중에 다시,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에는 꼭 그 순간이 아니면 안되는 때가 있다. 나중이 아니라, 바로 그 순간이어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다. 나중은, 바로 그 순간일 수 없기 때문에.

어려서 몰랐던 탓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나는 이 기억이 아직도 서럽다. 혼자 똑똑하게 시간을 쓰겠다며 어머님께서 식사를 하시는 동안 시장으로 달려가, 혼자 빈 그릇을 마주하시게 한 그 시절의 내가 참 밉다.
왜 그 때는 그 순간의 소중함을 몰랐을까. 왜 그 때는 가치를 보지 못하고 결과만을 생각했을까. 아마도 헛똑똑이 애송이라 그랬으려니 싶지만, 과연 지금의 난 그때보다 얼마나 더 성장했을지 가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인터넷뉴스에서 초등학교 시절에는 어린이용 책을 하루에도 서너권씩 경쟁적으로 읽다가, 중·고등학교에 가서는 논술용 요점정리서적 이외엔 읽지 않고, 대학생이 된 후에도 수험서 외의 독서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선 창조성을 강조하면서도 이율배반적으로 결과만을 요구하는 효율성과 경제성에 중독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들 헛똑똑이 철부지 바보만 되라고 강요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책을 읽는 그 자체의 즐거움과 과정의 행복은 모두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결과는 중요하다. 평생 준비만 하면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고 징징대면서도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사람도 난감하니까.

하지만 인생을 마주하며, 자신도 모르게 순간의 의미나 가치를 보지 못하고 결과에만 천착해 버리는 사람도 슬프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얼마나 소중한 것들을 상실했는지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무섭다.

어쩌면 나의 이 낙서에 가까운 글은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 수험생은 합격을 해야 하고, 취준생은 취업을 해야 한다. 직장인은 돈을 벌어야 하고, 환자들은 건강을 되찾아야 한다. 그래서 다들 바쁘다.

지금은 모두 힘들고 지나가야 하는 과정일 뿐이니까. 연애초기에나 ‘지금 이 시간이 멈추어 버렸으면 좋겠어.’라는 소리를 할 뿐, 모두가 ‘빨리 빨리’를 외치며 결과만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가치는 쓰레기라며 경멸한다. 그렇게 빨리 빨리 달려간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느 순간, 경쟁을 위한 경쟁만이 남았을 뿐, 그 끝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닐까 하고.

사람들은 모두들 ‘이것만 되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결국 ‘지금 이 순간’은 늘 불행해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효율성은 중요하다. 경제성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이로서 도출해 내는 결과는 더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네 인생의 순간은 효율과 결과를 떠나 과정 그 자체로 소중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들일지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천천히 느리게 가야 할 때도 필요하다. 모든 순간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다. 우리의 청춘도 사랑도 기회도.

고등학교 시절에는 시간이 너무나 더뎠다. 너무나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 이대로 평생 고등학생이면 어쩌지? 하고 고민한 적도 있었다.

군대에 있을 때도 시간은 너무나 답답했다. 특히 마지막 일주일은 아마 무한에 가까운 정체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이 귀했고 쏜살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과정을 힘들어 한다.

그러나 과정 또한, 그 소중함을 보지 못하고 지나쳐서일지는 모르지만 희망을 향해 가는 여정의 희열이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친구를 만나며 희노애락을 마주한다.

우리는 영웅이 승리하는 결과만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역경을 이겨내며 전진하는 영웅을 만나고 싶어한다. 이야기는, 결과의 문제가 아니라 의미의 문제이다. 과정의 이야기가 좋아서 우리는 극장에 가고 TV를 보고 책을 편다.

사계는 가을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봄은 봄이기에 싱그럽고, 여름은 여름이기에 설레이고, 가을은 가을이기에 풍요로우며 겨울은 겨울이기에 아름답다.

창밖에 볕이 비추이면 그 볕의 따사로움에 감사해하고, 창밖에 비가 내리면 그 빗소리에 행복해 하는 순간의 축복들을, 우리는 잊은 것이 아닐까.

지금 이 순간의, 오늘을 살자. 꽉 꽉 눌러 담은 열정과 진실로서, 후회없이 가치있게, 오늘을 살자. 그래서 매 순간 지금 이대로 행복하게 빛나자. 너는, 지금 그 자체로서도 충분히 아름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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