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7.30 보궐선거와 기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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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7.30 보궐선거와 기다리기
  • 오시영
  • 승인 2014.08.0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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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어제 저녁 미시간호수를 따라 길게 뻗은 시카고의 산책로를 걸었다. 많은 시카고 시민들은 자주 그 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한쪽은 끝 모르는 미시간호수이고, 다른 한쪽은 넓은 잔디공원이다. 그 자유스러움 속에 모두들 평화롭다. 종종 권총을 찬 경찰이 시민들처럼 자전거를 타고 순찰을 돌기도 한다. 차량출입통제구역이다 보니 순찰경찰도 경찰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공평하다. 이제 며칠 후면 필자는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되면 그전처럼 바쁘게 살면서 삶의 여유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이곳에서의 평범하지만 평화로웠던 생활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시카고 생활 말미에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의 “화내지 않는 연습”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는 위 저서에서 ‘옳은 것만 좋다는 것은 일종의 병이다’라는 한 꼭지를 통해 ‘옳은 것이 좋고, 옳지 않은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을 일종의 병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이런 병에 걸린 사람들은 지나치게 사소한 것에 에너지를 많이 낭비한 결과 진정 옳은 것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거짓말을 하거나 속임수를 쓰는 경우가 많다고 담담히 밝히고 있다. 나름 옳은 것이 좋다고 종종 주장해왔던 필자에게는 가히 충격적 논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일응 수긍이 가지 않는 바도 아니다.

마침내 7.30 국회의원보궐선거가 막을 내렸다. 세월호 참사 및 청와대의 인사실패 등이 국민의 심판을 받아, 보궐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한 정치평론가들이 많았었다. 여당인 새누리당 역시 한 번만 살려달라는 읍소형 선거구호를 선거기간 막바지에 외쳐야 할 정도로 고전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고 보니 새누리당은 11대 4라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감추어져 있던 국민의 의견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이번 선거의 최대이변은 무엇보다도 새정치민주연합의 아성이라고 여겨져 왔던 순천,곡성 지역선거구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야당 대권주자군으로 분류되어 온 손학규 전 국회의원,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등이 줄줄이 낙마를 한 사실 또한 이변이라면 이변이라고 할 것이다. 야권 단일후보로 승리를 주장해 온 노회찬 후보가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에게 패배한 동작을 선거구 역시 이변이라면 이변이라고 할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의 뜻은 명확해진 듯하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그 지역을 위해 일하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자가 아니면 유명한 중앙정치인 어느 누가 와도 당선시켜 주지 않겠다는 것이 진정한 민심이라는 사실이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중앙정치무대에서 이름이 널려 알려져 있지만 지역적 기반이 전혀 없는 김두관을 김포에, 손학규를 수원병에, 기동민을 동작을에 전략공천하였고, 새누리당은 나경원을 동작을에, 임태희를 수원정(영통)에 각각 전략적으로 출마시켰다. 국민에게 널리 이름이 알려진 중앙정치인이기에 주로 정치신인들이 등장한 상대 당에 비해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그 중심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 동작을에 출마한 새누리당의 나경원 후보만이 같은 중앙정치인이었던 정의당 노회찬 후보에게 신승하였을 뿐, 나머지 정치인들은 모두 줄줄이 낙마하고 말았다. 이러한 현상은 예전의 고정된 관점에서 보면 이변이겠지만, 이제는 이러한 중앙정치의 일방적 독주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그래서 지역에서 오랫동안 지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면서 준비해 온 지역일꾼을 더 신뢰하고 그에게 지역 살림살이를 맡기겠다는 지역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변이 아닌 당연한 것이고, 그러한 주민의 지혜가 발현된 것은 오히려 고무적 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변화를 국민들이, 주민들이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의 순천,곡성 지역에서의 국회의원 당선은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호남은 새정치민주연합, 영남은 새누리당이라는 지역구도의 공식이 마침내 깨어지는 기념비적인 정치혁명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지난번 선거에서도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대구시장선거에서의 선전, 무소속 오거돈 후보의 부산시장선거에서의 선전을 통해 잘하면 앞으로 지역구도 타파가 가능하겠다는 희망을 보았는데 마침내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듯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의 순천,곡성 지역에서의 당선이 이루어져 지역구도타파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으니, 만시지탄이지만 박수를 보내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다음 선거에서는 영남지역에서도 그러한 깨어짐이 일어나, 망국적인 지역주의가 극복되고 훌륭한 인재라면 출신당파를 떠나 국민의 심부름꾼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 이러한 지역구도파타야말로 무모한 부산지역에서의 지역구도타파를 내세운 전 대통령 노무현정신의 성공이라고도 할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옳은 것이 승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통분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인사정책의 실패, 지난 대선에서의 국민을 위한 경제민주화, 복지정책의 후퇴를 가져온 경제복지정책의 포기, 세월호 참사로 상징되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국가의 존재의의 상실, 국정원 댓글조작사건과 유우성 서울시 공무원에 대한 간첩조작사건 등 정부 여당의 잘못에 대한 심판을 위해서는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후보들이 이번 국회의원선거에서 다수 승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온 상당수 국민들은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분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전체적인 국민의 뜻임을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국민의 뜻이 반영되는 것이고, 선거에서 승리하면 그것을 국민의 뜻으로 존중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니 말이다. 그러면서 무엇이 문제점인지에 대해 곰곰이 음미해 볼 필요도 있다고 하겠다.

‘옳은 것만 좋다는 것은 일종의 병이다.’라는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의 말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우리 모두는 옳은 길을 가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설령 옳은 길일지라도 항시 승리하는 것만은 아니므로, 아니 오히려 패배할 때가 더 많다는 사실 앞에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이번 선거결과 앞에서 가장 많은 반성을 해야 할 이들은 현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권을 행사한 이들이라고 하겠다. 상당히 유리한 선거조건이 갖추어졌음에도 무기력하게 새누리당에게 참패를 당하게 후보자를 잘못 공천하고, 선거공약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지도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이 새롭게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성경말씀을 깊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낡은 사람들을 과감하게 배제하고, 새로운 인물을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묵묵히 참고 길러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무와 사람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하나의 거목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비바람을 견디는 수고가 필요하듯,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할 일꾼을 길러내는 것 또한 수많은 노력과 헌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지역에서 적절한 인물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물을 주고, 영양을 공급하여 주는 것이 중앙당에서 해야 할 이라 하겠다.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은 또 다른 책 “생각 버리기 연습”에서 ‘기다리기’라는 칼럼을 통해 기다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문제를 지적하며, 그런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면 “명상”을 해보도록 권유하고 있다. 그러면서 명상에 잠겨 ‘마음을 편안하게, 편안하게’라고 기도하듯이 속으로 되풀이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이번 선거결과에 승복하기 힘든 이들에게 명상에 잠겨보도록, 기다리는 훈련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전에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고,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되돌아보며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자신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라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이번 선거결과를 통해 배운 것, 지역구도타파를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고, 지역구를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이들이 그 지역의 대표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 등을 겸허히 받아들여 다음 선거 시에 반영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번 선거결과를 지켜보며, 권력욕에 사로잡혀 능력이 부족한 이들이 야당의 지도자가 되어 여당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끝까지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를 실천할 수 있도록 결연한 의지를 구체화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자신이 없다면 스스로 물러나는 결단도 필요한 시점이다. 새누리당 역시 이번 선거결과에 자만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안정적 집권을 위해 새누리당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내 주었지만, 이번 선거결과를 지나치게 자신하게 되면 새누리당 내부는 친박계열과 비박계열이 내부권력투쟁에 치중할 우려마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국민들이 다시 등을 돌리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여당이 되었든 야당이 되었든, 끊임없이 변하는 국민의 여론에 귀 기울이며,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제 8월이다. 뜨거운 폭염이 대지를 달구고, 우리의 마음을 달굴 것이다. 풍요로운 가을을 향해 아낌없이 태양은 제 몸을 불태울 것이다. 태양의 불태움 없이 어찌 이 땅의 풍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이번 보궐선거를 통해 국민들은 많은 것을 실험하고 있다. 자신들을 위해 진심으로 일을 해 줄 수 있는 이들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번에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자신을 불태우는 태양이 되어 지역의 풍요를 위해 봉사하고, 대한민국의 정치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데 진력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야당은 내부의 힘을 기르고 다음 선거를 기다리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명상의 기간을 갖기 바란다. 그게 국민의 뜻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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