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시카고 거지와 무료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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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시카고 거지와 무료음악회
  • 오시영
  • 승인 2014.07.2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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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시카고에서의 생활이 마무리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시카고에서 많은 경험을 했지만 시카고 거지와 무료 음악회는 결코 잊을 수 없을 듯싶다. 시카고는 수많은 미국 영화의 배경도시로 등장한다. 최근 개봉된 트랜스포머4의 배경도 시카고이다. 시카고는 건축의 도시 또는 바람의 도시라고 불린다. 1871년 10월 8일 발생한 대화재로 시카고 시 모든 건물이 불타 버린 폐허 위에 현재의 시카고가 새롭게 건설되었다. 그래서인지 건물의 규모 및 디자인, 도로의 체계화는 가히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해도 무방할 듯싶다. 백년 뒤를 내다보고 새롭게 설계된 시카고는 지하도로인 패더웨이를 통해 건물의 지하층과 도로의 지하층이 상호 연결되어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 많이 이용되고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강남터미널 지하상가 같은 지하통로 및 상가가 도심 전체에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백년 전에 이러한 상황을 내다보고 설계했다는 것이 감탄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아름다운 건물의 코너마다 거지들이 앉아 구걸을 한다. 건물주인도 거지에게 관용을 베풀고 우리나라처럼 내쫓지 않는다. 재수 없다고 소금을 뿌리지도 않는다. 건물 아니면 도로의 교차로 같은 곳에서도 거지가 간혹 빈 깡통 하나를 들고 구걸을 하고 있다. 어떤 거지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어떤 거지는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거지는 그냥 코너에 깡통 하나 놓고 앉아 동냥을 구한다. 그들을 모두 동일한 거지로 분류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지만, 동냥을 구한다는 점에서 모두 거지인 것은 사실이다. 시카고의 낯선 이방인인 필자도 몇 차례 시카고의 거지에게 1불짜리 지폐를 건네주거나 25센트짜리 동전을 건네 준 적이 있다. 눈빛이 선한 거지 앞을 지나가다 보면 주지 않고는 양심이 찔리게 되니 어찌할 수가 없었다. 1달러짜리 지폐를 건네며 한국인인 필자가 부자나라 미국에 와서 미국 거지에게 동냥을 주게 되다니 싶어 혼자 웃었던 적도 있다. 어쩔 때에는 멀쩡한 아가씨들이 거지 옆에 앉아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지나가는 행인 중에도 간혹 가다 거지 옆에 앉아 음악을 듣거나 그림 그리는 것을 구경하기도 하고, 또는 그냥 빈 깡통만 놓고 앉아 있는 거지 옆에 같이 앉아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한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는 생각이 간혹 들기도 하였다. 시카고 거지들은 복장도 단정하고, 모습도 당당하여 필자에게는 비굴하지 않게 느껴졌다. 동냥하는 거지마저 당당한 사회, 그런 사회가 미국사회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참으로 모두 당당하다. 청소부도 우리나라 수위쯤에 해당될 도어맨도, 식당 종업원도 모두 하나 같이 당당하다. 그러한 당당함 속에 사람에 대한 차별이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지난 6월부터 시카고의 도심에 위치한 그랜트파크에서는 매일 밤 무료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거처하는 곳이 가까워 일주일에 서너 번 저녁이 되면 음악회를 찾는다. 어떤 날은 블루스가, 어떤 날은 째즈가, 어떤 날은 대형 오케스트라가, 어떤 때는 대형 합창단이 공연을 한다. 모두가 무료이다. 공연되는 음악수준 또한 대단히 높아, 서울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되는 음악에 비해 결코 그 수준이 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더 낫다는 느낌을 받기조차 하였다. 필자도 매일 같은 건물을 지나가다 보니 어떤 거지와 안면이 트이게 되었고, 지나가면서 “하이” 또는 “헬로우” 하고 인사를 하면 그 친구 역시 “하이, 서” 하고 대답을 하여 서로 싱긋 웃는 정도의 사이가 되었는데, 어느 날은 그 친구가 음악회 도중 청중 속에 보여서 손을 들었더니 그 친구 역시 손을 들어 보이며 아는 척을 하였다.

시카고는 그랬다. 동냥하는 거지조차 훌륭한 음악회에 무료로 초대받아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다. 거지와 부자가 경제적으로는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문화적으로는 차이가 없도록 배려된 도시, 바로 그 매력적인 도시가 시카고인 것이다. 매일 밤 열리는 무료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은 집에서부터 간이조립식의자나 담요 등을 가져와 앉을자리와 식탁을 마련하고, 먹을거리를 가져와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우러져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거나 햄버거를 먹는 등 아주 자유롭게 담소를 나누며 음악을 즐긴다. 거기에는 일곱 살 이하의 어린이는 입장할 수 없다는 엄격한 제한도 없고, 절대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는 강요도 없다. 간혹 비상등을 요란하게 켜고 지나가는 구급차소리나 하늘을 나는 헬리곱터의 프로펠러 소리마저 공연 중인 음악에 흡수되어 아름다운 화모니를 이루기도 한다. 청중은 푸른 잔디밭에 앉거나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보기도 하고, 비가 올 때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음악에 심취하는 모습은, 한국에서는 결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어서 그 자체가 너무 부럽기조차 하였다. 여름철 내내 매일 밤 무료음악회가 열리는 시카고를 떠난다는 것이 못내 아쉽기까지 하다. 이 무료음악회가 시카고 시민에게 안겨주는 행복감을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그랜트파크 옆에 붙어 있는 오대호 중 하나인 미시간호수의 밤바람은 시카고 시민을 음악소리 못지않게 청량케 해준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시끄러운 모양이다. 참 좁은 땅덩어리이다. 지난번 시카고에서 텍사스 휴스톤까지의 긴 여행길은 15시간 가까이 운전을 하고 가는 내내 고속도로 좌우에 펼쳐지는 것은 대평원이었다. 시카고에서 디트로이트까지의 5시간 가까운 여행길 역시 도로 좌우는 대평원이었다. 끝없이 달리고 달려도 산 하나 나타나지 않은 대평야였다. 겨울 여행 때는 온 천지가 하얀 눈으로 덮여 있더니 초여름 여행길에는 대평원은 푸른 녹색 잔디 아니면 옥수수밭이거나 과일농장 또는 야채류를 재배하는 농장이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땅에서 수확되는 그 많은 농산물이나 축산물을 미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소비를 해내지 못하니, 우리나라를 비롯해 수많은 나라에 농산물 수입을 강요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넓다는 것 자체만으로 사람 사이의 간격이 멀어지고, 그 멀어진 만큼 위험을 덜 느끼고, 영역싸움이 없다 보니 덜 시끄럽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원이 너무나 많고, 그 넓은 공원에 잔디축구장이나 야구장 등이 구비되어 있어 누구나 스포츠를 즐길 수 있으니, 구태여 우리나라처럼 박 터지게 싸울 필요성을 못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국민은 너무 교육수준이 높고 머리가 영리하다. 사람은 많고 땅덩어리는 좁다. 그래서 싸움이 많고, 분쟁이 많고 시끄러운지도 모르겠다. 인구에 비해 땅덩어리가 넓지 못하다 보니, 상대방이 가지면 내가 가질 것이 없어져 버려 불안해지는 나라, 그러다 보니 상대방이 가진 것을 빼앗아야만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00일이 지났다. 그런데 핵심책임자인 유병언 전 세모 회장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시신이 부패되어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상태여서, 디엔에이 검사를 통해 간신히 인적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난 6월 12일 시신이 발견되고 거의 40일이 지나서야 간신히 신원파악이 되었다니 황당 그 자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병언을 잡아들이라고 이름까지 거명하여 체포엄명을 내리고, 그 말에 검찰총장, 경찰청장이 발발 떨며 전국의 검찰과 경찰을 총동원하여 체포작전에 나섰지만 아무도 그를 잡아내지 못했고, 결국 그는 부패된 시신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죽은 사람 잡겠다고 동원된 경찰, 군인들에게 들어간 국가예산은 수백억 원이 넘을 것이다. 참으로 돈, 국가 예산을 효율적으로 잘 쓰고 있다. 이럴 때 시중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잘 놀고 있네” 쯤이 되지 않을까?

돈을 위해, 돈을 앞세워 세상을 살아온 사람, 성경해석을 기존 기독교와 달리하는 방법으로 교세를 확장하여 교인들의 헌금을 통해 부와 재력을 축적한 사람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최종 책임자로 지목된 후 도주행각을 벌이다 마지막에 돈 한 푼 없이 낯선 이의 매실밭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인생을 결말짓다니, 문득 시카고의 무료음악회에 참석한 거지의 모습이 클로즈 오버되어 겹쳐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공수래공수거인 것을 진즉 깨달았다면 말년이 이렇게 비참하게 마무리되지는 않지 않았을까? 세월호 참사로 우리 국민은 그 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국가대개조라는 말을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들었다. 한참 쌩뚱맞았지만, 국가대개조를 하려나 보다 싶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후 100일이 지났다. 유병언 회장이 죽고 난 지금, 우리는 무엇이 개조되었는가? 한 마디로 말해, 개조된 것이 전혀 없다. 개조라는 것이 말 한 마디 한다고 해서 이룩될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개조의 첫 단추는 나에게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국가대개조를 말한 박근혜 대통령부터 스스로 개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로 하는 개조가 아니라 행함을 통한 개조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대개조를 부르짖었을 뿐 실재로는 그가 할 수 있는 영역의 개조조차 하나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지고 사퇴서를 제출한 정홍원 국무총리를 그대로 유임시켰고, 온갖 구악과 적폐를 일소하겠다면서도 그런 적폐의 표본이 되는 이들을 장관이나 청와대 비서관으로 임명하는 반개조행동을 나타내 보였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하였지만 첫 단추도 제대로 꿰지 못하고 있다. 물론 입법이야 국회에서 할 일이지만, 최대 쟁점이 되고 있는 수사권 부여의 문제를 여당이 인정할 수 없다고 물고 늘어짐으로써 사고조사를 통한 진실규명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려하고 있다. 사고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주는 것은 형사소송법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는 여당의 변명이 왠지 궁색해 보이기만 한다.

특별검사제처럼 조사위원회 내에 특별검사를 임명하거나 아니면 검찰청에서 현직 검사를 파견하여 수사토록 하여 기소여부를 결정하도록 특별법을 만들면 된다. 이러한 특별검사나 파견검사는 검찰청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 독립검사제로 운영토록 특별법에 명시하면 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원인이 되어 국가대개조를 하겠다고 천명하고서는, 아직 세월호 참사에 대한 특별법마저 만들지 못하고 있음은, 그냥 쉽게 말해 100일이 지나도록 국가대개조를 위해 한 걸음조차 내디디지 못했음을 의미할 뿐이다. 이러다 앞으로 남은 3년 반이 후딱 지나가버리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이러한 내용의 특별법 도입을 반대하는 여당인 새누리당에게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의 수사권과 기소권 포함 주장을 받아들이라고 권고할 만도 하지 않은가 말이다.

시카고의 거지는 오늘 밤에도 무료음악회에 초대되어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이나 드보르작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들으며 행복해 할지도 모른다. 세월호 특별법을 거부하는 새누리당 의원이나 박근혜 대통령은 시카고의 거지만큼이나 행복할까? 무엇이 두려워서 거부하는 것일까? 그러면서 어떻게 국가대개조를 하겠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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