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의 '공감'(7)-수험생과 가족의 적절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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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의 '공감'(7)-수험생과 가족의 적절한 거리
  • 이유진
  • 승인 2014.07.23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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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KG패스원 공무원 국어 강사

김래원, 김민희, 하지원, 이요원, 이동욱, 수애, 천정명 등이 한꺼번에 출연했던 어마어마한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학교2라는 그 드라마의 에피소드 중에 《어느 날 심장이 말했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7차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는데 혹시 기억이 나시나요?

 
옛날에 한 청년이 살았다.
청년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여인은 청년에게 별을 따다 달라고 말했다.
청년은 별을 따다 주었다.
여인은 청년에게 달을 따다 달라고 말했다.
청년은 달을 따다 주었다.
이제 청년이 더 이상 그녀에게 줄 것이 없게 되었을 때 여인이 말했다.
'네 어머니의 심장을 꺼내 와...'
많은 갈등과 고민을 했지만
그는 결국 어머니의 가슴 속에서 심장을 꺼냈다.
청년은 부모님의 심장을 들고 뛰기 시작했다.
오직 그녀와 함께할 자신의 행복을 생각하며 달리고 또 달렸다..
청년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청년의 손에서 심장이 빠져나갔다.
언덕을 굴러 내려간 심장을 다시 주웠을 때,
흙투성이가 된 심장이 이렇게 말했다.

"얘야, 많이 다치지 않았니?"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못된 자식’ 중 하나인 저는, 이 글을 처음 보았을 때 작가가 의도한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교훈보다 아들이 느꼈을 무시무시한 죄책감이 먼저 느껴져 몸서리를 쳤습니다. 어머니들은 대체 왜 저렇게 무작정 희생적인 걸까요?
차라리,
“이 후레자식아!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렇게 나와야 자식들도
“전 원래부터 XXX이었어요!”라며 뻔뻔하게 나갈 수 있을 텐데요.

어쨌든 저는 이 이야기를 정말 싫어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가족은 우리가 뭔가에 도전하게 되는 동기가 되기도 하고, 힘들 때 포기하지 않고 버티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존재만으로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수험 생활을 하다 보면 차곡차곡 짜증이 쌓여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화풀이를 하기 쉽습니다. 그러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몇 마디 잔소리라도 날아오면 온 몸이 활활 타오르는 거죠. 가족들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제 동생은 고시 공부를 하는 동안 부모님이 계시는 집에서 나와 언니인 제게 와 있었습니다. 당시 제 오피스텔이 신림에서 더 멀었는데도 말이죠. 저는 애한테 얼마나 스트레스를 줬으면 바빠서 밥도 제대로 못 챙겨줄 언니한테 왔을까 싶어서 진짜 편하게 해줘야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해도 편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요. 종일 공부하고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좀 많이 자는 것 같으면 깨우고 싶었고, 정말 아주 가끔 잠을 안자고 TV라도 보고 있는 일이 있으면 차라리 잠을 자지 시간을 버리고 있다고 잔소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후회가 됩니다. 가끔은 실컷 싸우고는 마음이 불편해 밖에서 밥을 사주면서 또 좋은 목소리로 부모님을 입에 올리며 부담을 주었습니다. 싫은 목소리로 잔소리를 하거나 좋은 목소리로 부담을 준 거지요.

동생이 온 가족의 열망이었던 고시를 포기하고 취업 결심을 했을 때, 한 해만 더 해보라고 설득하고 싶었지만 제가 얼마나 괴롭혔는지 알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인생만으로도 힘들었을 동생을 조금만 더 편하게 해줬다면 이 아이가 한 번은 더 힘내서 해보지 않았을까……. 오랫동안 후회했습니다.

여러분, 사실 이 글은 여러분보다 여러분의 가족이 좀 보았으면 합니다. 집에 가져가셔서 식탁 위에 제 칼럼을 펴 두세요.

수험생의 가족 여러분, 이 학생은 여러분과 같은 공간에 있을 때만 쉬는 거예요. 하루 종일 공부합니다. 정말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쉬지 않고 공부하고 있어요.

사랑하는 가족들 옆에서는 조금은 쉴 수 있게, 불안함과 초조함을 내려놓고 풀어진 얼굴로 있을 수 있게 해주세요. 믿고 계시잖아요.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순간 노력하고 있을 거라고 믿어 주세요.

흙투성이가 되어 "얘야, 많이 다치지 않았니?"라고 말해서 죄책감이나 부담도 주지 마세요. 그냥 말없이 지쳐 돌아오면 시원한 물 한 컵을 내어 주시고 마음으로 응원해 주세요.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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