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소시민 그를, 불러내지 말았어야 했다, 존경과 경멸 사이
상태바
오시영의 세상의 창-소시민 그를, 불러내지 말았어야 했다, 존경과 경멸 사이
  • 오시영
  • 승인 2014.07.18 16: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박근혜 대통령은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그를 불러내지 말았어야 했다. 교수라는 자신의 지위와 박사학위 심사권력(?)을 적당히 활용하여 제자들의 논문을 마치 자기 논문인 양 둔갑시켜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 약간의 연구비를 타내 그 돈을 살림에 보태고, 그 가짜 논문을 교수 승진 심사자료로 제출하여 적당한 때 표 나지 않게 때맞춰 승진하여 자리를 보전하고, 그냥 적당히 시류에 편승하여 오른쪽이 세보이면 오른쪽 편을 들다가 왼쪽편이 강해 보이면 왼쪽 편을 들기도 하면서 그냥 적당히 자족하며 세상에 특별히 표 나게 드러나지 않은 처세로 모든 사람에게서 칭찬받고 살아온 그를, 김명수 교수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으로 불러내지 말았어야 했다. 그를 불러내 교육과학부장관이라는 보다 막중한 중책을 맡기려다 보니 그의 신상이 털리게 되고, 살아온 과거가 검증의 대상이 되기 전까지는 적당히 교양 있고, 실력 있고, 인품 좋고, 품위 있는 교수였다고 평가받으며 너털웃음 짓고 살아온 그를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비열하고 저급한 학자로, 장관으로서의 지식과 소신을 전혀 갖추지 못한 무능력한 장관이 될 뻔 했다는 치욕을 안겨 주며 나락으로 추락시키고 말았으니, 한 인간을 완전 욕되게 하고 말았으니, 왜 가만히 있는 그를 불러내 국민동물원 원숭이처럼 만들어 버렸는지 알다가 모를 일이다. 인사검증을 사전에 제대로 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대어 김춘수 선생은 작품 ‘꽃’에서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그였지만 시인이 그의 이름을 불러 주자 화자에게 와 꽃이 되고 의미가 되었다.”고 설파하며,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꽃이 되고 의미가 되는 소중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독자에게 속삭였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김명수 그의 이름을 부르자 몇몇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던 그가 전국민의 관심이 대상이 되었고, 과연 그가 우리 국민에게 꽃이 되고 의미가 될 만한, 사표가 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졌고, 결국 그는 꽃도 아니고 의미도 아니며, 단지 잘못된 관행과 부도덕과 부패의 상징적 인물이 되고 말았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 쌓여온 국가적 적폐를 해소하겠다고 호언장담하더니, 그의 장관후보지명자를 적폐의 표본으로 국민에게 보여주고, 스스로 지명한 자를 철회함으로써 적폐라는 것은 이렇게 척결해야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으니, 박근혜 대통령을 이 점에서 칭찬해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에 빠지게 되고 만다. 진즉 살아온 삶의 궤적과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알았더라면, 교육과학부장관이라는 중책에 대한 부름에 대해 사양이라는 미덕을 발휘할 최소한의 양심이 발휘되었을 것인데, 그만 그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김명수 교수의 순진한 결정이 못내 아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는 교육과학부장관이 되어 교육학 전공자로서 꿈꾸어 왔던 교육행정에 대한 청사진을 펼쳐 보이고 싶은 소박한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내가 너를 알았더냐 싶게 박근혜 대통령의 쌀쌀맞은 지명철회로 인해 낙동강 오리알이 되고 말았으니, 지난 며칠 동안 온갖 적폐의 대상으로 내몰려 찢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며 자신을 다독여야 할지 그가 몹시 걱정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성근 문화체육부장관 후보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 청문보고서 불채택에 대해 청문보고서채택 재청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날 후보직을 자진사퇴하였다.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삶의 과정을 볼 때 유력방송국 기자라는 신분을 적당히 활용해 자신의 부정과 비리를 은폐하며 사리사욕을 취하며 살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더 나아가 뻔한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청문회 과정에서 버젓이 의도적 거짓말을 함으로써 국민을 우롱하는 만행을 서슴치 않았다. 그러한 뻔한 거짓말 역시 그가 살아온 삶의 족적에서 볼 때 위기에 처했을 때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잘못된 기지(?)에서 비롯된 교언영색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왜 자꾸 실기를 할까? 며칠 전 여야 원내대표와 청와대 회동 시 그 자리에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총무가 정성근 후보자의 결정적 도덕적 하자에 대해 충분한 암시를 하였음에도 그 언질의 행간을 읽어내지 못한 채 오히려 김무성 새누리당 신임대표에게 정성근 후보자를 문화체육부장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야당에게 협조를 구해 달라고 부탁하고, 청문회 보고서 채택을 재차 국회에 요청한 것은 정말이지 정무적 감각이 없는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청와대에 바른 말을 하겠다며 수평적 당청관계확립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우고 당대표로 당선된 김무성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협조부탁을 그대로 순종하며 집행하다가 졸지에 정성근 후보의 자진사퇴라는 결정타를 맞음으로써 당대표 직무수행 첫걸음부터 비틀거리게 되고 말았다. 사전에 청와대나 정 후보자로부터 어떠한 언질을 받지 못한 채 쪽지 한 장으로 중대사실을 연락받고 말았으니, 마치 찌라시에서 북한엔엘엘 관련 남북정상회담회의내용을 보았다는 황당한 변명을 늘어놓던 그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야당으로부터 일정한 정보가 전달되었고, 그 내용의 중대성을 인식했더라면 선제적 대응책을 마련했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존경과 경멸 사이,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할 국정 최고 행정가들의 상당수가 이러저러한 범죄전력과 비위사실 등으로 인해 국민으로부터 경멸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은 참으로 국가적 비극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권의 2기 내각의 장관 임명장을 받은 신임장관들 역시 이러저러한 비위사실이 청문회 과정에서 상당히 밝혀졌고, 그러함에도 임명이 강행되었다. 많은 국민들은 대한민국에 이렇게 정의롭고 올바른 능력 있는 인물들이 없단 말인가 하고 통탄하고 있다. 공자는 나라에 인의가 사라지면 그건 짐승세계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행정 각부의 장관들 상당수가 그동안 누적된 적폐의 찌꺼기 같으니, 과연 그들과 함께 국가대개조니 국가대혁신이니 하는 국가적 구호(?)들을 제대로 실천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구호가 난무한다. 나치정권의 괴벨스 선전상은 선동정치에 익숙하였다. 맛있어 보이는 구호를 선점하고, 적당히 포장하여 이를 국민에게 퍼뜨리면 모든 국민은 맹목적으로 따라온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다. 국민은 지혜로울 것 같지만, 개인의 지성은 제대로 작동하지만 주체가 모호한 단체의 지성은 선동에 세뇌된 다수에 의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가 많다. 조심할 일이다.

어찌 되었든 박근혜 제2기 내각이 신임장관들 임명과 정홍원 총리의 유임으로 새롭게 출범하였다. 제발 제2기 내각이 국정의 방향타를 올바르게 세워서 콘텐츠가 풍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아젠다를 발굴해서 실행해 나가기를 바란다. 영국 여론조사업체인 입소스모리가 지난 16일 발표한 주요 20개국 대상의 국민 행복수준 조사 결과 우리나라가 19위로 나타났다고 한다. 왜 대한민국 국민은 먹고 살만한(?) 데도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국민들의 욕심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아서 만족치가 낮은 걸까? 교육수준이 평균적으로 높으니, 어느 나라보다 보편적 평등의식이 높은 것이 우리 국민이다. 그러다 보니 평균적 정의가 실현되지 못해 불만이 높게 쌓이는 것은 아닐까? 오죽하면 옛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겠는가? 그것은 지도층 인사들이 편법과 불법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취하며 불평등하게 법을 집행하고, 국민들을 차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이면 좋겠지만, 대부분 맞으니 이를 어찌 하겠는가? 1위를 차지한 스웨덴 국민은 88%가 행복하다고 답한 반면, 우리나라는 64%만이 행복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최하위인 스페인(59%)을 제외하고는 캐나다, 호주, 남아공, 벨기에, 미국, 브라질, 프랑스, 인도 등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제발 국민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주력해 주기 바랄 뿐이다.

지난 9일 필자는 엘에이 다저스 소속의 류현진 선수가 선발로 출전하는 야구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디트로이트를 다녀왔다. 시카고에서 디트로이트까지 고속도로를 편도 4시간 이상 달려야 하는 먼 곳이지만, 일박을 작정하고 그곳까지 먼 길을 달려가는 내내 필자는 아주 행복하였다. 어쩌면 류현진 선수가 전반기 10승을 올리는 현장에 함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10승을 올릴 수 있도록 응원으로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는 작은 행복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경기 시작 1회초 엘에이다저스는 먼저 5점을 선취하였다. 그 동안 매경기 평균적으로 내어준 3점대의 점수를 감안할 때 류현진 선수가 쉽게 10승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어이없게도 2회말 5점. 3회말 2점을 내주고 조기강판당하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 먼 길을 달려가 응원한 보람도 없이 류현진 선수는 3회말 도중에 강판되고 말았고, 결국 경기는 14대 5로 대패당하고 말았다. 오히려 그가 강판당한 후 중간자 입장에서 경기 자체를 즐기며 또 다른 행복감을 맛보았다. 두들겨 맞고, 점수가 많이 나는 경기는 역시 재미있었다.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2회말이 시작하기 전까지 5대 0으로 앞서가던 엘에이다저스가, 류현진 선수가 3회말이 되어 7점을 내주고 지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세상 이치가 그러하지 아니할까?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렇지만 류현진 선수는 5일 후인 지난 14일, 9승 이후 네 번의 도전 만에 전반기 마지막 선발 등판인 샌디에이고전에서 6이닝을 1대 0으로 막음으로써 한국인 메이저리그 최초로 전반기 10승 달성에 성공하였다. 스포츠 경기에서 정정당당한 과정을 통해 승리하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우리사회에 존경의 대상이 많아지고, 행복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정정당당함이 모든 사람에게 믿음으로 작용하는 그 날이 대한민국에도 하루 속히 오기를 소망한다.

적폐의 찌꺼기가 잔뜩 끼어있는 사람들, 그들의 관점은 쓰레기를 관통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은 쓰레기더미 속에서 고고하게 장미꽃으로 살아왔을지 모르지만 그 장미꽃 줄기를 흐르는 피는 쓰레기 악취를 그대로 흡수한 땟국물 냄새에 절어있지 않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김명수 교수를 교육문화부장관후보자로 불러내지 말았어야 했다. 정성근 아리랑 TV 사장을 문화체육부장관으로 불러내지 말았어야 한다. 적당히 이권을 챙기며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불러내 전국민에게 하나의 의미, 하나의 꽃, 바로 적폐의 본보기임을 보여주는 무능한 인사정책을 펴지 말았어야 했다. 모든 국민은 적폐의 꽃잎에서 품어 나오는 독향에 취해 존경과 경멸의 혼돈을 겪으며, 행복해 하지 않고 있다. 이 일을 어쩔 것인가? 아무도 인사실패에 책임지는 이가 없는 이 현실을 어찌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에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대는 아는가, 본인은 알고 있을까?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