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대한민국을 대충민국으로 만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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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대한민국을 대충민국으로 만들지 말라
  • 오시영
  • 승인 2014.07.11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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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등산이나 조깅을 열심히 하며 건강을 챙겼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머리는 빌리면 되지만 건강은 빌릴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머리 좋은 것으로 평가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비교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했던 말이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옛말 그르지 않게, 지금 그도 노환으로 입원 치료 중이니 건강도 종내 빌려 올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본인이 머리가 영리하지 않으면 결코 남의 머리를 쉽게 빌릴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공부머리는 좀 그렇지만 다른 쪽 머리는 잘 돌아가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다른 것은 제대로 못하면서도 시험만은 잘 봐 높은 학점을 받는 학생이 있는 것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사람의 능력도 참모형이 있는가 하면 리더형이 있기에 서로 영역이 다르다. 어떤 모임에서 총무 역할을 맡기면 아주 잘 하다가도 회장에 취임하게 되면 모임을 말아 먹어 버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처럼 사람은 능력이 다를 뿐만 아니라 그 능력에 따라 맡아야 할 역할도 각기 다르다고 하겠다. 노래 잘 하는 이가 반드시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잘 수행할 능력이 있는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참극이 계속 되고 있다. 문창극 후보가 친일파 논란으로 자진사퇴한 후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낸 정홍원 국무총리를 그대로 유임시킴으로써 인사 참극의 정점을 찍고 있다. 사표에 조건을 붙이거나 일정한 절차를 밟도록 되어 있지 않는 한 사표는 임명권자에게 도달되는 순간 효력을 발생한다는 것이 우리 대법원 판례의 일관된 입장이다. 그런 까닭에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표를 제출하자 박근혜 대통령도 후임자를 물색하였고, 안대희 전 대법관,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 등을 후보자로 정식 임명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홍원 국무총리의 총리직은 법적으로 소멸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그를 다시 총리로 임명하려면 국회의 청문회를 다시 거친 후 인준절차를 밟아야 할 사항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절차에 대한 설명이나 양해 없이 사표제출을 아예 없었던 것으로 치부한 채 유임하겠다고 해 버렸으니 황당한 것이다. 더군다나 청와대는 현재 청문회가 진행 중인 장관들을 발표하면서 사표를 제출한 정홍원 총리가 제청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신임 총리로 지명되었된 문창극 후보와 상의하여 제청에 준하는(?) 사전 절차를 밟았다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었다. 그런데 장관 제청권을 행사했다는 문창극 후보가 자신의 인사청문회에 나가 보지도 못한 채 낙마하고 말았으니, 그렇다면 현재 청문회가 진행 중인 장관들은 유령 총리가 제청한 꼴이 되고 만 꼴이니 이들이 임명된다면 유령 내각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는 총리의 제청에 따라 장관을 임명해야 한다는 헌법 규정을 유린한 것이라 할 것이다. 이래서 적법절차를 밟아야 하는 민주주의는 복잡한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한나라를 세운 유방과 그의 신하 육고(陸賈) 사이의 대화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학식이 부족했던 유방이 배움이 많은 신하들에 꿀리지 않기 위해 자주 한 말이 “천하를 말 위에서 얻었는데 내 어찌 ‘시경’이나 ‘상서’에 구애받겠는가?”라는 말이었다 한다. 직접 몸으로 전쟁터에서 싸워서 얻는 왕조로 힘이 있으면 되었지, 어찌 학문 했다는 신하들에게 장애를 받겠느냐는 것이다. 그러자 육고가 “居馬上得之, 守可以馬上治之乎(거마상득지 수가이마상치지호)”라며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 있을지언정 어찌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를 현실에 빗대어 보면,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을 수 있을지언정, 선거만으로 어찌 국가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쯤 되지 않을까 싶다.

아마 주말쯤이나 다음 주쯤 장관들에 대한 청문회가 끝난 후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는 김명수 부총리 겸 교육과학부장관과 이병기 국정원장에 대한 임명이 강행될지, 아니면 보류될지 말이다. 아마 박근혜 대통령의 종전 스타일대로라면 국회 인사청문회의 보고서 채택 여부와 상관없이 임명이 강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두 명의 총리후보야 국회에서 인준되지 않으면 총리로 임명할 수 없게 법제화되어 있기 때문에 낙마를 감수할 수밖에 없지만, 장관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더라도, 부정적으로 보고서가 채택되더라도 청문회 회부 후 일정기간이 경과한 후에는 대통령이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도록 법이 되어 있기 때문에 강행 쪽을 선택할 개연성이 높다. 그전에도 부적격자로 보고서가 작성되어도 임명된 사례는 종종 있어 왔다. 어쩌면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박근혜 스타일” ? “부적격자도 내 편이면 임명한다.”는 새로운 스타일이 확고하게 굳어질지도 모르겠다.

이런 박근혜 대통령의 심리적 배경에는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겠다.”는 트라우마가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다. “믿는 이로부터의 배신 공포감”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하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배신은 언제나 심복이나 가족에게서부터 비롯되는 것이지, 적으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찌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도 커다란 배신의 삶을 살아왔다고 볼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도 좋아하는 듯해 보이는(지난 해 9월 30일 하이야트 호텔에서 열린 한미동맹 60주년 경축행사장에서 백선엽 장군을 보고 환하게 웃는 박근혜 대통령의 표정을 보면서 느낀 것입니다) 백선엽 장군의 술회에 의하면 소위 여순사건 이후 좌익분자 색출 과정에서 남로당 가입사실이 밝혀져 1948년 11월 11일 체포된 박정희 당시 소령은 함께 체포된 최남근 중령, 오일균 소령 등이 모두 사형을 당했지만 당시 명동 소재 옛 증권거래서 건물 지하에 갇혀 있던 중 남로당 조직책을 모두 밀고하여 배신함으로써, 백선엽 장군이 구명운동을 벌여 살려주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것도 민주주의를 배신한 것이고, 헌법에도 없는 무력으로 국회를 정지시킨 후 유신시대를 선포하고 장기집권에 들어간 것도 국민을 배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배신을 해본 사람은 심복의 배신을 항상 경계하고 2인자를 두려고 하지 않는다. 언제 2인자에 의해 자신이 제거될지 모른다는 불안심리에 내몰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 대한민국 정치는 어느 정도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고 할 것이다. 어떤 미친놈이 나와 또 다시 쿠데타라는 황당한 일을 벌일지 모르겠지만, 이제 우리는 그런 반역사적 폭거가 대한민국에서 자행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고 있다. 그런 폭거가 용인되지 않을 민주사회에 우리는 들어서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아버지의 그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조언을 측근들이 해주면 좋겠지만, 그런 조언을 해 줄 측근을 기대하는 것은 현재의 상황으로 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인다. 까닭에 이렇게 밖에 있는 이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누군가 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방에게 육고가 조언했듯이 “居馬上得之, 守可以馬上治之乎”라고, 이제 인재를 천하에서 골고루 얻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으로 국민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으니 민심이 천심이니 국민의 마음을 다시 돌려 민심을 얻기 위해서라도 대탕평책을 써야 한다고 조언하는 측근이 없어 보이는 상황이 어찌 보면 슬픈 현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육고 같은 신하는 없고, 진시황 시절의 환관 내시 조고 같은 이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신의 죽음이 임박함을 깨달은 진시황제가 큰 아들 부소에게 황위를 물려주고자 했으나, 구중궁궐에서 황제가 사망 후 혼자 이 사실을 알게 된 환관 조고가 둘째 왕자인 호해에게 황위를 물려준다는 거짓 유언장을 작성해 모략을 꾸미지만, 그로 인해 진나라는 얼마 가지 못해 스스로 패망의 길을 걷게 되고 만다. 스스로 영생불사를 꿈꾸며 불로초를 찾아 헤맸던 진시황제는 자신이 영원히 살 것이므로 후임자가 필요 없다며 후임자를 제대로 양성하지 않은 데다가 상간신인 환관 조고의 말에만 귀를 기울여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제 한 가지를 깨달았으면 한다, 자신의 말이 “요술방망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림 형제의 동화 ‘요술 식탁’ 속의 주인공 3형제처럼 요술 식탁도, 요술 당나귀도, 요술 방망이도 자신에게 없음을 겸손히 인정했으면 한다. 그래서 말 한 마디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인 양 쉽게 말을 하지 말 것과, 통일대박이니 창조경제니와 같은 말장난 같은 헛구호가 아니라 콘텐츠가 넘치는 내실 있는 정책을 구체적으로 펴기 위해 노심초사했으면 싶다. “박근혜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이들을 주변에 포진시킨 채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떠난 민심, 지지율을 회복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마따나 머리라도 제대로 빌려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지난 대통령선거 이전부터 많은 국민들이 우려한 대로 “꿀벌과 벌꿀”의 용어선택의 혼선, “지하경제 양성화와 지하경제 활성화”의 잘못된 표현, “전화위복과 전화위기”의 상반된 언어사용에서 황당해했던 결과를 대통령 당선 후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러운 것이다. 언어는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된다. 앞으로 남은 3년 반이라는 임기는 굉장히 긴 기간이다. 까닭에 제대로 다 잡고 도덕성과 전문성을 갖춘 이들과 손을 잡고 사심 없이 국정을 수행해 나간다면 무엇이든지 이뤄낼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도덕성에서 흠집이 많은 이는 이미 관점이 잘못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면 점점 더 문제가 커지게 된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도덕성이 높다는 것은 그동안 잘못 살아오지 않았다는, 행함에 있어 잘못이 적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옳은 것이 아니면 하지 않고, 그른 것이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도덕성에 흠결이 있는 이는 더럽게 적당하니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이고, 까닭에 앞으로 더 큰 권력이 주어지면 더 크게 더럽게 살 개연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도덕적 흠결이 있는 자를 높은 자리에 앉혀서는 안 되고 권력을 크게 쥐어주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이는 마치 앞의 육고와 조고의 차이에서 보듯 결과가 극명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트라우마에 갇혀, 머리조차 빌리지 못하는 대통령이 될까 봐 걱정이다. 관점이 세상을 바꾼다. 제발 좀 “대충 합시다”라며, 대한민국을 “대충민국”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청문회 통과가 어려우니 청문회절차를 바꾸고,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니 교육감직선제를 폐지하고, 해경이 구조를 제때 못하니 해경을 해체하고 등등 말도 안 되는 편의주의적 발상을 접었으면 한다. 진지하게 좀 고민하라, 뼛속 깊이 통증을 좀 느끼라, 그리고 남의 머리를 좀 빌리라. 세상에 지혜로운 자가 얼마나 많은데, 인재가 없다고 황당한 소리를 하는가? 속된 말로 “청문회를 통과할 인재가 없다고 사표 낸 유령총리를 유임시키는 것은 개 풀 뜯어먹는 소리”임을 알았으면 싶다. 인재가 넘쳐나는 대한민국을, 대한민국 국민을 이보다 더 비하하고 우롱하는 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 시중에는 “머리가 미련하면 몸이 고생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걱정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고생할까 봐. 지혜로운 자를 청빙해 국사를 맡기라. 그것도 머리가 있어야 할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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