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비정상의 頂上化(?)와 이중 중앙분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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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비정상의 頂上化(?)와 이중 중앙분리대
  • 오시영
  • 승인 2014.07.0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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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미국 90번 고속도로는 시카고 중심을 동서로 관통하고 있다. 마치 서울 강남지역을 경부고속도로가 관통하듯 말이다. 그런데 차이가 하나 있는데, 시카고 도심을 관통하는 90번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와 달리 중앙분리대가 두 개라는 점이다. 고속도로에서 중앙분리대는 경계를 의미한다. 중앙분리대는 진행하는 방향과 반대방향의 차들을 분리시켜 교통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차량 소통을 원활하게 할 목적으로 설치되어 있다. 중앙분리대는 다른 한편으로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삶의 경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 민족에게 가장 커다란 중앙분리대는 남북분단이라는 경계일 것이다. 남북분단의 경계야말로 우리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권 집단은 이러한 남북분단의 경계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다. 여당은 자칭 보수임을 주장하면서 민족 분단의 경계를 반대세력을 억압하는 종북좌빨의 기본개념으로 삼아 야당을 공격하고, 야당은 이에 반발하며 국가안보를 불순한 정쟁의 목적으로 삼아 야당을 탄압한다며 그래도 북한을 한민족으로 품고 가야 한다며 여당에 맞서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이러한 남북분단을 넘어 영남과 호남으로 대별되는 동서분단의 갈등은 남북분단에 버금가는 경계의 벽이 되어 선거철만 되면 동쪽은 새누리당으로 상징되는 빨간색으로, 서쪽은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상징되는 푸른색으로 한반도 지도가 도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 사이에도 소득 간, 지역 간, 세대 간 경계의 벽이 견고하게 높아져 우리 모두를 벌집에 갇혀 있는 초라한 자화상으로 얽어매고 있다. 하나의 중앙분리대에만 익숙하게 살아온 필자로서는 시카고 도심을 관통하는 90번 고속도로를 거의 매일 이용하면서, 두 개의 중앙분리대가 주는 메시지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두 개의 중앙분리대를 통해 고속도로는 세 개의 큰 흐름으로 나누이게 된다. 좌우 양쪽 차선은 언제나 각각 우측방향의 진행만 허용하면서, 두 개의 중앙분리대를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 중앙 차선은 차량 통행량에 따라 우측차선이 되기도 하고 좌측차선이 되기도 하는 등 교통량에 따라 가변차변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에도 한때 가변차변이라 하여 중앙 한 차선을 시간대에 따라 우측차선이나 좌측차선으로 활용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차선은 단지 선 하나만을 그어 놓고 도로 위에 직진방향이나 금지방향표시등을 켜는 불완전한 방법이어서 오히려 교통소통을 방해하기도 하여 지금은 흐지부지되고 만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시카고 90번 고속도로는 설계 때부터 아예 두 개의 콘크리트 중앙분리대를 통해 가운데 만들어진 차선이 가변적으로 운용되도록 되어 있어 공간활용도가 대단히 높게 되어 있다. 두 개의 중앙분리대 안쪽에 형성된 가변차선은 2차선 또는 3차선으로 출퇴근시간 등 교통량에 따라 하루 종일 가변적으로 활용되고 있어 대단히 유익하게 이용되고 있다. 가변차선 입구에는 열 개의 차단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안전을 위해 열 개의 차단장치를 차례대로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안전사고를 예방할 뿐만 아니라 전자신호를 통해 사전예고를 함으로써 차량운전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시카고 90번 고속도로의 두 개의 중앙분리대는 분단을 향한 경계의 벽이 아니라 소통을 위한 공존공생의 벽이라 할 것이다. 이 곳 두 개의 중앙분리대는 하나의 중앙분리대만으로 살아온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중앙분리대가 단절과 고립을 위한 절벽이 아니라 너와 내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서로가 서로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되고 수용할 수 있는 아량과 관용의 공동의 터전임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육군 제22사단 임 모 병장의 총기난사사건에 대한 실체가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에 의하면 임 모 병장은 고참병장임에도 부대 내에서 소위 관심사병이라는 이유로 장교와 사병들로부터 집단왕따를 당해 왔음이 밝혀졌다. 엄연히 존재하는 실체가 유령처럼 없는 사람으로 무시당하면서 분노가 내재되기 시작했고, 경계근무 중 자신을 비하하는 듯한 그림과 낙서를 보고 결국 잠재되어 있던 분노가 폭발하여 총기난사라는 끔찍한 사고를 유발한 것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그 참사의 뒤끝에는 왕따가해자뿐만 아니라 오히려 임 병장에게 친절하게 했던 사병까지 피해자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니, 가해자와 피해자가 엄격하게 분리될 수 없는 이 혼돈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통탄할 일은 이러한 임 병장의 가해행위에 대해 일부 인터넷 댓글 중에는 임 병장이 오히려 참지 않고 분노한 것이 잘 한 일이었다는 칭찬성 글까지 있는 것을 보면서 이 참담한 가치전도의 현상 앞에서 필자는 다시 한 번 하나의 중앙분리대에 고착된 우리의 갈등구조가 심각한 상황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시카고 관통 90번 고속도로처럼 두 개의 중앙분리대를 통한 중앙차선이 왜 우리에게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모든 것은 관점이 우선 제대로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점이 잘못 되어 있으면 어떠한 평가가 내려진들 그 평가는 잘못된 결과를 도출할 뿐이다. 평가가 깊어지면 질수록, 넓어지면 질수록 결과는 점점 더 큰 잘못이 될 뿐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한 개의 중앙분리대로 살 것인지, 아니면 두 개의 중앙분리대로 살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하겠다.

대한민국은 지금 비정상의 정상화(?)로 질주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일 일박이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박근혜 대통령과 한중정상회담을 가졌다. 북한에 앞서 우리를 먼저 국빈 방문한 사실을 놓고 남북 외교전의 승리라는 자화자찬성 보도가 난무하지만, 양국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데다가 박근혜 정부의 국내 이미지 쇄신을 통한 자가발전을 위한 긴박한 정치적 필요에 의해 급하게 추진된 면이 있음 또한 사실이다. 지난 1일 일본 아베정권은 새로운 일본헌법 해석을 통해 전쟁가능국가로 자위대의 법적 성격을 재해석하는 결론을 내렸다. 이제 일본은 언제든지 대동아전쟁을 일으켰던 제2차세계대전 이전으로 회귀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일본의 급박한 상황변화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이 슬프지만 현실이다.

일본의 이러한 전쟁가능국가로의 회귀는 근본적으로는 미일안보협정에 근거하고 있다. 미국이 자국의 군사비지출을 줄이면서 대중국, 대러시아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일본의 군사력증강을 은연중 묵인하고 있는 틈을 이용한 아베정권의 발 빠른 우경화현상을 우리는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국으로서는 이러한 일본의 제국주의적 첫 발걸음을 묵인하지 않을 수 없지만, 나중에 이러한 정책선회가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러한 와중에 시진핑 주석의 우리나라 방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북한에 대한 억지력 증가를 가져오는 측면과 한중 공조에 의한 일본의 역사왜곡과 우경화에 대한 견제의 의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호적 한중관계가 한미동맹체제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어떻게 불식시킬 것인가 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수출시장이 되어 버린 중국, 중국 수출의 세계 3위 수입국가가 되어 버린 한국은 이제 경제적으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경제협력상태에 놓여 있다. 두 나라는 언젠가 지금의 한미관계이상으로 돈독한 우호국가가 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5천년 역사 속에서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 이상으로, 지난 한 세기 멀어졌던 중국이 다시 대한민국 역사 속 중국으로 귀환하게 될지도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이 非正常의 正常化를 국가개조의 화두로 내세운 지 오래 되었다. 지난 1년 4개월 간의 집권기간 동안 보여준 박근혜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 비정상의 정상화(?)가 상당 부분 진척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를 축하하고 함께 기뻐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슬프다. 그 정상화가 “비정상의 正常化”가 아니라 “비정상의 頂上化”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추구하고자 했던 비정상의 正常化는 반대로 非正常의 頂上으로 치닫는 잘못된 길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상이 대한민국 최고의 꼭짓점, 극정상에 올라와 “대한민국이 염치부재의 몰염치국가”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 비정상의 정점에 문창극 총리후보 지명과 그의 자진사퇴가 있었다고 하겠다. 세월호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사표를 제출한 정홍원 국무총리를 “국회청문회를 통과할 만한 유능한 인물을 총리로 모실 수 없다”는 황당한 설명과 함께 유임시킨 데에서 극정점을 찍고 말았다. 행정부에서 일인지하요 만인지상의 관직이라 할 수 있는 유능하고 결함 적은 국무총리를 임명할 수 없는 대통령은 어찌 보면 더 이상 대통령이라고 할 수조차 없다고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국무총리를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이는 오직 대통령뿐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임명할 수 없다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국무총리를 임명할 수 있겠는가? 친일사관과 편향적 가치관을 가진 이를 총리후보자로 잘못 지명한 것에 대한 사과 한 마디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모든 책임을 국회청문회와 여론재판 때문이라고 호도하는 것은 이미 정상적인 대통령의 사고라고 할 수가 없다. 국민과 대한민국에게는 대단히 슬픈 사실이지만 비정상의 최고 비정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국가개조를 하겠다며, 제2기내각을 구성하겠다며 청와대 수석 개편과 일부 장관들에 대한 임명과정에서, 특히 김명수 교육부 장관과 이병기 국정원장에 대한 임명 또한 비정상의 정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치유될 수 없는 하자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음에도 이 모든 문제를 여론재판과 야당의 발목잡기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正常의 非正常化”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국가를 이렇게 비정상의 길로 끌고 가는지,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 중 과연 몇이나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최근 전국대학생을 상대로 한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의 여론조사결과에 의하면 불과 1.2%만이 새누리당을 지지할 뿐이며, 젊은이들이 새누리당을 선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멸의 단계까지 이르렀다고 자조하는 김상민 새누리당의원의 자책성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등교육집단인 대학생들이 왜 이렇게 새누리당에 등을 돌리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가 비정상의 頂上에 도달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은 아닐까? 불과 42% 수준에 머물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민지지가 30%대로 내려가면 새누리당 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탈당요구가 나오게 될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들의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될 최악의 경우에 말이다.

우리는 모두 이제 시카고를 관통하는 90번 고속도로의 두 개의 중앙분리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좌우가 공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중앙 부분의 차선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때이다. 말장난 같지만 비정상의 頂上化가 아닌 진정한 正常化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군대 내 생활이 정상화되었다면 임 모 병장의 총기참사도 미연에 방지될 수 있었을 것이고, 국가공권력이 정당하게 집행되었다면 세월호참사도 충분히 예방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모두 함께 더불어 이용할 수 있는 중앙가변차선이 모두에게 공개된 세상, 신뢰와 화합의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열 때이다. 정말 마음을 열 때이다. 다 가지려고 하지 마라. 하루 밥 세 끼 이상 더 먹으면 그건 돼지일 뿐이다. 비교된 돼지야,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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