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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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5)
  • 신종범
  • 승인 2014.07.0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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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노역” 판결의 이면

 

 

 

 
 

 

 

신종범 법무법인 더 펌(The Firm) 변호사

지난 2014. 3. 22.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벌금 254억원을 내지 않고 해외로 도피하였다가 귀국하여 미납 벌금에 따른 노역 집행을 위해 광주교도소 노역장에 유치되었는데 노역 일당이 1일 5억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른바 ‘황제노역’판결이라 불리며 연일 언론의 뭇매를 맞은 사건이 있었고, 그에 따라 환형유치에 관한 형법의 개정도 있었다.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2007년 허회장은 508억여원의 탈세를 지시하고 100억원을 횡령한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 위반(조세포탈),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로 기소되었고, 당시 검찰은 피고인인 허회장에게 벌금 1016억원을 구형하면서 재판부에 선고유예를 요청하였다. 제1심 법원은 허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원을 선고하면서 벌금 미납시 1일을 2억 5천만원으로 환산한 기간 노역장 유치를 명하였다. 항소심은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으로 제1심 판결보다 형을 감경하면서 벌금 미납시 1일을 5억원으로 환산한 기간 노역장 유치를 명하였으며,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되었다.

당시 언론은 법원이 허회장에게 1일 환형유치금액 5억을 판결한 것을 두고 ‘황제노역’판결이라 이름 붙이고, 이러한 판결이 전형적인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판결이고, 더 나아가 이 판결이 향판(鄕判)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하면서 향판(鄕判)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일반인들이라면 많아야 1일 10만원 정도인 환형유치금액이 허회장에게는 그 5,000배에 해당하는 5억원이 인정되었으니 그 판결 결과만을 놓고 보면 이처럼 부당한 판결이 있을 수 있을까? 실제 재판장이 향판이어서 지역 경제인 봐주기 차원에서 이루어진 판결은 아니었을까?

나는 허회장에 대한 판결이 정당했다는 주장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판결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드러나지 않은 이면을 살펴보고 다른 문제점은 없었는지 말하고자 한다.

먼저, 허회장에 대한 판결에서 드는 의문점이 있다. 검사가 허회장을 봐주고자 했다면 적정한 벌금형을 구형할 것이지 왜 1016억원이라는 엄청난 벌금을 구형하면서 이례적으로 재판부에 선고유예를 요청하였을까? 법원도 허회장을 봐주기로 했다면 아예 적정액의 벌금형을 선고하지 왜 고액(1심 : 508억, 2심 : 254억)의 벌금형을 선고하면서 비정상적인 환형유치금액(1심 : 2억 5천만원, 2심 : 5억)을 선고하였여만 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허회장에게 적용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이라고 한다) 제8조 제2항에서 찾을 수 있다. 동 법률 규정은 포탈세액이 5억원 이상 이면 징역형 외에 필요적으로 포탈세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에 해당하는 벌금을 병과하도록 하고 있다. 특가법에 따라 검사는 허회장을 508억 탈세 혐의로 기소하였으니 징역형과 함께 최소한 포탈 세액의 2배인 1016억을 구형할 수 밖에 없었고, 다만, 허회장이 포탈한 세금과 가산금을 모두 납부하고 상당액의 사재를 출연하여 지역 경제 회복에 힘쓴 상황 등을 고려하여 재판부에 벌금형에 대한 선고유예를 요청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벌금형에 대한 선고유예를 하지 않고 여러 가지 감경 사항을 참작하여 판결을 하였는데 제1심의 경우 작량감경을 통하여 벌금액 508억(환형유치금액 1일 2억 5천만원)을, 항소심은 자수감경까지 하여 254억(환형유치금액 1일 5억원)을 선고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특가법 제8조 제2항에 의하면 포탈세액의 2배 이상을 필요적으로 병과하여야 하니 피고인에게 감경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검사는 최소한 포탈세액의 2배 이상의 고액의 벌금을 구형하면서도 비정상적으로 선고유예를 요청할 수 밖에 없고, 법원은 감경하더라도 최소한 포탈세액에 해당하는 고액의 벌금을 선고하든지 그 형의 선고를 유예하든지 사이의 결정을 할 수 밖에 없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허회장의 경우, 법원은 254억원을 선고할 것인지 그에 대한 선고유예를 할 것인지(선고유예와 254억원의 사이의 간격은 너무 크다) 사이에서 조세포탈죄에 대한 엄벌의지를 가지고 벌금 254억원을 선고하면서 어쩌면 1일 5억원이라는 무리한 환형유치금액으로 범죄와 형벌간의 균형을 맞추고자 했을지도 모른다.(그렇더라도 1일 5억원은 너무 과하긴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하여 특가법 제8조 제2항에 대해서는 위헌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즉, 조세포탈의 경우 포탈된 세금은 즉시 강제 환수할 수 있고, 가산세와 가산금 등으로 이미 재산적 징벌을 가하고 있음에도 다시 포탈세액의 2배 이상의 벌금을 필요적으로 병과하는 것은 이중의 제재를 가함으로써 책임주의에 반하고, 범죄 정도와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적절한 벌금형을 과할 수 있음에도 오직 포탈세액이라는 기준만으로 벌금액을 필요적으로 병과하도록 함으로써 법관의 양형재량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조세포탈자 엄벌을 통한 납세윤리 확립이라는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법관은 정상에 따라 벌금형의 감액을 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벌금형만의 선고유예도 가능하므로 과잉처벌이 아니라는 결정을 하여 왔다. 그러나, 특가법 제8조 제2항에 의하면 감경한다고 하더라고 최소한 포탈한 세액만큼은 벌금을 병과할 밖에 없고, 그러한 고액 벌금형에 대하여 선고유예를 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일 수 밖에 없다. 또한, 법관에게 적절한 벌금형을 부과하도록 양형권을 인정하지 않고 선고유예와 고액의 벌금형 선고 사이의 결정만을 하도록 함으로써 양형재량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더 나아가, 허회장 사건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무리한 환형유치금액을 선고하는 것과 같은 왜곡된 판결을 초래할 수 있고, 같은 금액의 세금을 포탈한 사람 사이에 선고유예를 받은 자와 고액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자 사이의 이익형량의 차가 너무 커 판결에 대한 불신을 가져올 수 있는 등 많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비정상적인 허회장 판결에는 특가법 제8조 제2항이 그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는바, 환형유치제도에 대한 개선과 함께 위 특가법 조항에 대한 개정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드는 궁금증이 있다. 만약 허재호 회장에게 훨씬 유리한 벌금 254억원에 대한 선고유예 판결이 나왔다면 언론에서 이에 대한 비판이 있었을까? 특가법 조세포탈 사안에서 수백억원에 대한 선고유예 판결이 있어왔지만 그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접해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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