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월드컵은 추억을 싣고
상태바
[칼럼] 월드컵은 추억을 싣고
  • 최성배
  • 승인 2014.06.20 12: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성배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4의 배수가 아닌 짝수 해마다 6월이 오면 지구촌은 월드컵에 매력 속에 빠져듭니다. 우리나라도 1986년부터 8회 연속 본선진출을 이루어낼 만큼 월드컵의 단골손님이 되었고, 이제는 단순한 참가를 넘어 16강 및 그 이상을 꿈꾸는 설렘 속에서 장맛비 오락가락 하는 6월을 보내왔습니다. 1990년 월드컵에 처음 선수로 참가한 이후 이번 월드컵까지 한번도 거르지 않고 선수, 코치, 감독으로 참가하는 분도 있는 만큼, 저 역시 커리어가 쌓임과 동시에 어깨에 얹혀진 삶의 무게를 피해갈 수 없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40대 중반 나이인 제가 시간을 거꾸로 4년씩 건너 뛰어가며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의 경기를 앞두고 며칠 동안 조마조마해 하고 경기가 시작되면 플레이 하나하나에 기쁨과 탄식이 교차하였지만, 그 출렁이던 감정의 조각들은 어느덧 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덤덤함으로 가라앉는 대신 각 대회 때마다 저와 주변의 생활모습이 어떠했는지 추억의 물결로 다가옵니다. 마치 1980년대부터 90년대 사이의 노래들에 청춘의 추억이 배어 있어 향수에 빠져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 열렸던 1978년 월드컵과 1982년 월드컵은 아시아에 주어진 티켓이 한두 장 밖에 없어 우리나라가 지역예선도 통과하지 못하였지만, 마땅히 즐길 거리가 없던 당시로서는 월드컵 지역예선 경기가 열리는 날은 동네에 TV가 있는 집을 중심으로 기대감과 긴장감이 가득하였습니다. 중계 아나운서는 한국팀이 상하의 모두 붉은색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다고 말하였지만, 흑백TV와 흑백신문만 볼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한국팀의 유니폼은 그저 약간 짙은 회색이었습니다. 원정경기를 라디오나 TV로 위성중계할 때에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 같은 음색으로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으로 시작되는 멘트도 귀에 생생합니다. 한국팀의 승리로 경기가 끝나면 “우리들은 대한건아, 늠름하고 용감하다...”로 시작되는 웅장한 군가풍의 “이기자 대한건아” 노래가 나오면서 선수 개개인의 사진들이 슬라이드처럼 화면을 채웠습니다. 그런 날은 그림일기에 무얼 쓸까 고민할 필요가 없는 날이기도 하였습니다.

월드컵은 남의 나라의 잔치라고만 여겨지던 초등, 중학생 시절을 지나고 고등학생 때인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우리가 나가게 되었을 때, 한국축구의 영웅 차범근 선수(초등학생들은 차범근이 그렇게 대단한 선수였냐고 묻곤 하지요)가 마라도나와 같은 세계적 스타와 함께 뛴다는 자체가 신기했었습니다. 그 대회의 아시아예선에서는 그동안 한국의 본선진출을 막아 왔던 호주와 중동을 배제한 채 동아시아권에만 별도의 티켓이 주어졌고 당시만 해도 일본에게는 상대전적에서 월등한 우위를 보여 왔기에, 국민들은 32년만의 본선진출의 꿈에 부풀었습니다. 1985년 7월 그 지역예선 4강전이었던가, 저는 개장한지 얼마 안 된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리는 인도네시아전을 보고 싶어, 용돈을 모아서 당시 유일하게 티켓예매를 하던 모 은행 본점에 가기 위하여 오후 수업이 끝나자마자 시내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너갔는데, 몇 정거장 앞두고 장맛비 때문인지 차가 막히는 것이었습니다. 은행업무 마감시간은 다가오는데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그길로 내려서 빗속을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물에 빠진 생쥐꼴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티켓을 사러 온 저에게, 창구 아저씨께서는 “학생! 그런 열정이면 이다음에 무얼 해도 성공하겠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구한 티켓을 들고 실제 경기장에 가서, TV로만 보던 ‘총알’ 선수와 ‘야생마’ 선수의 활약을 보며 뿌듯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해 11월 초 드디어 일본을 꺾고 32년만의 본선진출이 확정되자마자, TV에서는 정규방송 대신에 축하 쇼프로그램이 이어졌습니다.

그 이후로도 제가 법원에 들어오기 전까지 1990년과 1994년 두 번의 월드컵이 있었습니다. 1990년 6월에는 사법시험 1차시험 발표를 앞둔 밤 우루과이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보며 불면의 긴장을 잠시나마 달래던 일, 1993년 10월 사법연수원 마지막 시험공부를 하며 힘들어할 때에 ‘도하의 기적’이라 불리며 극적으로 아시아예선을 통과하던 일, 1994년 6월 본선 때에는 군법무관 단체교육을 받으며 동기들끼리 스코어내기를 하던 일 등이 떠오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이렇게 역대 월드컵은 그때그때 대표팀의 스코어나 성적을 넘어 저마다의 추억과 그리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노신사가 되어 가는 왕년의 스타들이 경기하던 장면을 인터넷 덕분에 젊은 시절 모습 그대로 다시 눈앞에 불러올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당시 저의 주변에서 함께 왕성하게 활동하시던 어르신들이나 아는 분들 중에 이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분들이나 건강이 많이 쇠약해진 분들은 더 이상 옛날 모습으로 우리 앞에 보여질 수 없다는 점에 생각이 이르면, 문득 서글퍼지곤 합니다.
이번 월드컵이 열리는 2014년 6월은 훗날 우리에게 어떤 추억으로 남아 있을까요? 사람에게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설사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더 좋은 일로 상쇄되어, 이 때를 떠올리게 되면 저절로 미소가 머금어지는 6월로 남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 소통광장 법원칼럼 중에서>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