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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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4)
  • 신종범
  • 승인 2014.06.2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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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선거

 

신종범 법무법인 더 펌(The Firm)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머릿 속이 복잡하거나 몸이 뻐근하면 근처에 있는 찜질방을 이용하곤 한다. 뜨거운 곳에서 땀을 흠뻑 흘리고 냉탕에 들어가 몸을 식히고 나면 머릿 속이 맑아지고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러고 나서 다시 일을 하면 한결 수월하게 일이 처리되는 것 같다. 그 날도 서면이 제대로 써지지 않아 찜질방을 찾았다. 한참 땀을 빼고 있는데 누가 반갑게 아는체를 한다. 우리 사무실 옆 상가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이셨다. 가끔씩 그 곳에서 회식을 하면서 알게된 분이었다. 내 옆으로 와 앉으시더니 자신이 소송을 당했는데 어떡했으면 좋겠냐고 물어 오셨다. ‘이런 머리를 식히러 왔는데 ㅠㅠ’ 사연은 이랬다. 고깃집이 있는 상가 건물을 입주자대표회의가 입주민을 대표해서 관리하여 왔는데 주변보다 관리비가 비싸게 나오고 관리비 사용내역도 정확하게 고지되고 있지 않아서 관리사무소를 통하여 그 동안의 관리비 사용내역과 상가 건물에 딸려 있는 주차장 운영 수입 등의 자료를 보여 달라고 하자 입주자대표회의는 지금까지 개별 입주민이 그런 요구를 한 적이 없다며 거절하였고, 마침 입주자대표회의 선거가 있어 사장님이 입후보 등록 신청을 하자 이번에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당신은 입주자대표의 자질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등록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통지 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고깃집 사장님은 위와 같은 입주자대표회의의 부당한 행위를 알리는 글을 작성하여 상가 게시판에 지속적으로 게시하였고, 수시로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항의를 하였다. 그런 일이 반복되던 중 고깃집 사장님은 법원에서 온 통지서 한통을 송달 받았다고 한다.

찜질방을 나왔는데 어느새 발걸음은 고깃집을 향하고 있었다. 잠시 머리 식히러 찜질방에 간 것도 잊은 채 나는 술잔을 기울이며 사장님의 이야기를 더 듣게 되었다. 사장님은 법원에서 온 통지서를 보여 주었다. 통지서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사장님을 상대로 제기한 업무방해금지가처분 신청 사건 심문 기일에 대한 통지였고, 신청서 부본이 첨부되어 있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위 신청에서 고깃집 사장님이 관리사무소의 허락없이 게시판에 글을 게시하지 말 것과 관리사무소에 전화하거나 출입을 하지 말 것을 청구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본인이 작성하여 제출한 답변서도 보여 주었다. 분량은 매우 많았으나 법률적 형식과 요건을 전혀 갖추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장님 말씀만 놓고 보면 입주자대표회의의 신청이 너무나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주자로서 관리비 부과 내역과 사용내역 등을 보여 달라는 것은 정당한 권리행사로 보여지고, 이를 거절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작성하여 게시하거나 관리사무소에 전화하거나 방문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되어지지 않았다. 덧붙여 사장님의 이야기를 더 들어 보니 상가건물의 입주자대표회의의 대표들이 몇 년째 바뀌지 않은 채 같은 사람들이 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구분소유자들이 직접 상가를 운영하지 않고 대부분 임대를 해 오고 있어 건물의 관리에 대하여 구분소유자들이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아 몇 몇 사람들이 입주자대표회의를 장악하고 감시와 통제 없이 몇 년째 독단적 운영을 해 오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 날은 그 정도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하고 시간 되실 때 아파트 관리규약 등 관련 자료를 가지고 우리 사무실을 한 번 방문해 주십사 말씀드리고 고깃집을 나왔다. 그 날 상담료는 술 값으로 대신 하는 것으로 하고...

그리고 얼마 후 사장님이 우리 사무실을 방문하셨다. 아파트 관리규약을 가지고 오셨는데 규약 내용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첫째, 최초 입주자대표를 선출할 때를 제외하고 입주자(구분소유자)에게 입주자대표를 선출할 권리가 없었고, 둘째, 입주자대표 임기(2년)가 만료되는 경우 임기가 만료하기 전 마지막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차기 입주자대표를 선출하도록 하며, 셋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자질이 충분한 사람이라고 인정한 사람만이 입주자대표로 등록이 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관리규약을 개정할 수 있는 권리나 입주자총회를 소집할 수 있는 권리마저 입주자에게 부여되어 있지 않았다. 실제로 최소 7년부터 최대 14년 동안 5명이 그 건물의 입주자대표로서 건물의 관리와 운영에 관한 모든 권한을 행사하여 오고 있었다. 그들은 임기 만료 전 마지막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차기 입주자대표를 선출한다는 기묘한 관리규약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임기가 만료되면 자신들 스스로 차기 입주자대표로 입후보한 후 자신들이 자신들을 선출하여 왔던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자질이 충분하다고 인정한 사람들만 입주자대표 후보 등록이 가능하도록 한 규약에 따라 고깃집 사장님처럼 자신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자격이 없다고 하여 후보등록 조차 받아주지 않아 왔던 것이다. 대체 이런 관리 규약이 어떻게 만들어졌다 말인가? 상가건물의 관리에 관하여는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는데 (주택의 관리에 관하여는 주택법이 함께 적용된다) 같은 법률에 의하면 집합건물에 있어서 구분소유자 전원으로 구성되는 관리단이 당연 설립되고(제23조), 관리단을 대표하고 사무를 집행할 관리인을 관리단 집회의 결의로 선출하되 관리위원회를 두는 경우에는 관리위원에서 선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24조). 물론 관리위원회를 구성하는 관리위원은 관리단의 결의로 선출하여야 한다. (제26조의3). 그렇다면 위 상가건물의 관리규약은 집합건물법의 강행규정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구분소유자의 대표자 선출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있어 무효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고깃집 사장님의 업무방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입주자대표회의의 대표성이 문제되는 것이었다.

이제 대대적인 반격이 필요할 때였다. 사장님으로부터 정식으로 사건을 위임 받아 ‘업무방해금지가처분’ 사건에 준비서면과 함께 위임장을 제출하고, 입주자대표 5인을 상대로 ‘직무집행정지가처분’을 신청하였다. 또한 그 본안 소송으로 ‘대표선임결의무효’ 소송도 함께 제기하였다. 법원에서 가처분 사건 2건을 함께 심리하였는데 고깃집 사장님의 업무방해 여부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고 입주자대표들의 대표성이 쟁점이 되었다. 심문 기일을 종료하고도 한참이 지나 가처분 사건에 대한 선고가 있었다. 그 결과 입주자대표회의가 제기한 ‘업무방해금지가처분’ 사건은 대표성이 없는 자가 제기한 것으로 부적법하다고 하여 ‘각하’ 되었고, 입주자대표들을 상대로한 ‘직무집행정지가처분’ 사건은 인용되어 본안 선고시까지 그 직무집행이 정지되었다. 그러자 본안인 ‘대표선임결의무효소송’ 법원에 입주자대표들이 사퇴서를 제출하였고 우리는 더 이상 소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기에 소를 취하하였다.

고깃집 사장님의 대역전극이었다. 그 후 건물 관리가 적법하게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사장님께 구분소유자 총회 소집 절차, 총회 결의에 따른 입주자대표와 입주자대표회장(관리인) 선임 등의 절차를 안내하였고, 다행히 새로운 대표들이 구성되고 규약도 서울시에서 마련한 상가건물표준관리규약에 맞게 개정하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퀴즈 하나.. 위 2개의 가처분 사건에서 소송비용은 누가 부담하여야 할까? 법원은 ‘업무방해금지가처분’ 사건은 신청인(채권자)가 입주자대표회의였지만 대표권이 없는 자가 단체명의로 소를 제기하였기에 그 대표권 없는 자 개인이 부담하라는 결정을, ‘직무집행가처분’ 사건에서는 패소자인 대표권 없는 입주자대표 5인이 부담하라는 결정을 각 내렸다. 결국, 당시 건물의 입주자대표들은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되고 말았다.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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