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칼을 맞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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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칼을 맞는 사람들
  • 오시영
  • 승인 2014.06.2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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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스티브 잡스는 현대를 촌철살자(寸鐵殺自)의 시대로 만들었다. 그는 아이폰을 개발하여 “현대인은 잊혀질 수 없는 인간” 혹은 “현대는 잊혀지지 못하는 세상”이 되게 만들어 버렸다. 어쩌면 이러한 사회현상은 그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말 한 마디로 사람을 감동시키거나 논점의 핵심을 표현할 때 우리는 촌철살인의 묘미를 만끽한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과거에 한 자신의 말로 인해 스스로 목이 쳐지는 촌철살자의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이처럼 “자신의 말에 의해 칼날을 받는 세상”에서 말 구설수에 오르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져가고 있다. 인터넷 모든 기록은 남아서 비수가 되어가고 있다.

필자는 그 동안 일관되게 “인간은 과거의 인간으로 미래의 인간을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오늘의 인간으로 그 인간의 미래를 평가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오늘의 인간으로 내일의 인간을 평가해서는 결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오늘의 인간은 과거의 인간을 감춘 채 내일의 자신을 포장하는 거짓말쟁이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의 인간은 오늘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음을, 거짓말을 할 수 없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인간의 기억과 기록에는 한계가 있어 과거를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또한 예전에는 인간에게 망각이라는 편리한 축복(?)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틈새를 비집고 “어제의 인간을 거짓으로 포장된 오늘의 인간으로 둔갑시켜, 환상적인 미래의 인간으로 창조”되는 조작이 가능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기록으로 남는 세상, 잊혀질래야 잊혀질 수 없는 스티브 잡스의 시대는, 어제의 인간은 영원히 어제의 인간으로 고정되어 있을 뿐 새로운 오늘의 인간으로 위변조가 허용되지 않게 되어 점점 미래의 인간에 대한 객관화가 가능하게 되어 가고 있다. 평생을 일관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현재 환장할 만한 한 판의 슬픈 창극(唱劇)이 벌어지고 있다. 그 창극의 주인공은 두 말할 것 없는 문창극 총리후보지명자이다. 그가 수십 년 동안 중앙일보 기자, 논설위원, 주필 등의 지위에서 써온 기명칼럼의 내용을 둘러싼 논쟁이다. 그의 칼럼 내용이 식민사관에 기초한 친일사대주의, 친미사대주의였다는 것이었다는 점에 대한 찬반논쟁이 그렇고, 대한민국 국민성에 대한 폄훼 및 종군위반부 내지 독도 문제를 둘러싼 잘못된 역사인식 등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참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중앙일보 기자로서 그런 내용의 글을 썼을 당시 어느 누구도 그의 글과 강연에 대해 가타부타 시비를 걸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그런 글을 써 오면서 축적된 그의 이력과 관록이 최고봉에 이르러 대한민국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의 일인지하 자리인 국무총리에 내정되었을 때 국민들로부터 폭발적 비난이 일어나는 것일까?
어쩌면 문창극 총리후보는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폭발적 비난을 국민들로부터 받으며, 왜 이러나 싶을 것이다. 여태까지 자신이 대기자(나는 언론사에서 몇 몇 기자들에게 붙이는 대기자라는 명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중기자, 소기자도 있다는 말인가? 기자면 진실을 보도하면 족한 것이지, 기자를 대기자와 대기자 아닌 기자로 구분하여 대기자의 말에 보다 더 무게중심이 두어져야 한다는 인위적 작위가 그냥 조금 낯간지러울 뿐이다. 大記者가 아닌 待期者로 몇 번 혼자 읽혀 웃었던 적도 있다)로서 존경받아 왔는데 갑자기 하루아침에 왜 이러나 싶을 것이다. 그 동안 자기의 칼럼이 한 쪽 진영의 견해(어쩌면 소수를 제외한 국민 전체의 의견으로 혼자 착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를 강하고 정확하게 표현하여 대한민국의 여론을 주도해 온 것에 대해 성공한 언론인으로서 자부심도 대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다 이루었다” 싶은 순간, 대한민국의 국무총리후보로 지명되는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하게 여기저기에서 갑자기 매국노 또는 친일파라는 비난을 받게 되니 그 분함과 억울함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 동안 수많은 칼럼을 써올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칼럼 내용을 칭찬하며 어쩌면 그렇게 앓던 이빨 뽑듯이 속 시원하게 자신의 생각을 대변해 주느냐,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을 그렇게 대신해 주니 기뻤다는 등의 공치사를 들어 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우물 밖 세상으로 나오니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는 사실, 보수라는 우물 안, 탑 안에 갇혀 세상을 보편타당하게 보지 못하고 어느 한쪽에 치우쳐 편견과 편파적 가치관에 사로잡혀 살아 왔는지 뒤늦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가 이처럼 비난받음은, 그의 이러한 비난받을 칼럼을 일관되게 게재하도록 허용한 중앙일보의 견해 역시 잘못된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중앙일보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기야 중앙일보보다 더 한 편향적 내용의 칼럼을 부지기수로 싣고 있는 발행부수가 더 많은 언론사들이 잘 나가고 있는 현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하지만 문창극 총리후보의 이번 사태를 통해 언론도 중립적, 객관적 시각에서 국민을 통합시키고 상생의 길을 갈 수 있는 합리적 보수, 합리적 진보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되면 참 좋겠다는 바람이다.

이번 문창극 총리후보의 “하나님의 뜻”이라는 온누리교회에서의 강연 내용이 기독교인, 비기독교인을 떠나, 심지어는 일본과 중국 등 국제적 문제가 되는 등 모두의 커다한 화두가 되고 있다. 평생을 기독교도로 살아온 필자로서도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에 대해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며칠간 묵상하며 고민하다 필자가 내린 “하나님의 뜻”에 대한 작은 결론은 “하나님의 뜻은 착한 일을 하는 이에게 은혜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나쁜 일을 한 이에 대한 벌 내림은 사탄의 뜻”이지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성경 속의 하나님은 한 번도 인간에게 나쁜 짓을 하라고 가르치거나 강요한 바가 없다. 그런데 인간이 그렇게 착하게 살라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의 탐욕과 사탄의 유혹으로 나쁜 짓을 하여 벌을 받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쁜 짓인가, 좋은 짓인가의 판단은 행위자, 즉 가해자의 행위를 기준으로 하여 판단해야지 억울한 피해자를 중심으로 판단해서는 아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일본의 조선 침략 역사는 가해자인 일본이 탐욕적 제국주의에 사로잡혀 선한 조선을 침탈하여 수탈하고 억압한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뜻을 어긴 사탄의 뜻일 뿐이고, 탐욕적인 인간의 뜻일 뿐인 것이다. 그 속에서 조선인이 반성하고 회개하며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독립투쟁을 벌이고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항하여 오다가 독립한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것은 이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며 나쁜 가해행위나 잘못된 결과까지 싸잡아 하나님의 뜻이라고 정당화시켜서는 아니 되며,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임을 명심해야겠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이러한 하나님의 본질적 뜻을 외면한 채 일부 정치 목사를 비롯하여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어, 많은 교인이 모이는 교회, 헌금이 많이 걷히는 소위 대형교회를 성공한 목회의 모델로 숭배하기 시작했고, 왜곡된 설교를 통해 헌금을 많이 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기복신앙이 횡행하기에 이르렀다. 교회의 대형화를 통해 목회자의 세속적 권력이 강화되면서 권력과 금력을 바탕으로 한 세속적 타락의 길로 내닫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성경적 진실이 외면되고 예수 당시의 초대교회 정신이 쇠퇴해 가면서 일부 몰지각한 목회자들이 교회 조직의 수장이 되고자 돈봉투를 돌리는 부정타락선거를 통해 총회장이나 대표 등이 되어 교회의 참된 정신을 왜곡하는 타락현상이 심각한 상황에 이른 것이다.

불법정치자금을 전달한 죄로 형사처벌을 받은 이병기 전 주일대사의 국정원장 후보자, 제자들의 논문을 표절하여 자기 연구 실적으로 둔갑시켜 제자들의 연구비를 착복한 김명수 교육과학부장관 후보자와 역시 제자 논문을 표절한 송광용 교육문화수석, 검사 시절 술좌석에서 술이 취해 따지도 않은 맥주병으로 기자의 이마를 까부순 깡패 같은 전력이 있는 김영한 민정수석(야간에 맥주병을 가지고 사람의 이마를 폭행하는 것은 살인죄에 버금가는 범죄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3조 제1항에 해당하여 벌금형도 없이 징역형만 선고되는 중죄로서 당시 문제가 되었다면 더 이상 검사로 재직하지 못할 전과자가 되어 민정수석 임명을 받을 출발선에 아예 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등등 이번 청와대의 인사는 참으로 가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우물은 벌써 물이 말랐는가? 필자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아쉬웠던 점 중의 하나는 바로 너무 늙어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총기가 넘쳐나던 사람이 너무 늙어 대통령이 되고 정권 말기에 아들이 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되는 등으로 심신이 노쇠하여 총기를 잃음으로써 국정을 제대로 수행해 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참화는 박근혜 대통령 자신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인사검증과정에서 이를 제대로 골라내지 못하고 문제가 많은 인사들을 추천한 김기춘 비서실장의 책임이 제일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김기춘 비서실장을 해임하는 것이 맞는데, 이렇게 될 경우 박근혜 대통령의 마지막 의지처가 붕괴되어 박 대통령의 판단력, 예지력이 고갈되어 상황이 악화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참 힘든 상황이다. 우리는 모두 내일을 모른다. 하지만 과거는 모두 알고 있다. 인간이기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잘못된 과거를 고쳐 미래로 나갈 수 있는 생명길이 그나마 우리에게는 남아 있다. 우리는 그 길을 찾아내 걸어가야 한다. 그 첫 번째 방법은 마음을 비우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물 안 개구리는 정점에 도달할 때 자신의 말로 칼을 맞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루 빨리 우물 밖으로 나와 넓은 세상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다른 우물도 좀 들여다보고, “아 여기에 다른 세상이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일관되게 살아온 삶을 부정하며 자신의 뜻이 왜곡되었다며 변명하는 문창극 총리후보의 엉터리 창극판이 아닌, 진정한 판소리 춘향전의 ‘사랑가’를 듣든 심청전의 ‘수궁가’를 듣든지 간에 신명나는 창극 한 편을 모든 국민은 보고 싶어 한다. 멀리 브라질에서 월드컵축구경기장에서 “대애하안민국~” 응원의 함성이 들려온다. 멋진 창극 한 판이다. 그 사이로 2억 원의 불법공천헌금을 받은 혐의로 새누리당 유승우 의원이 새누리당에서 강제출당을 당하고, 박상은 의원이 자가용기사에 의해 3천만 원의 불법자금 수수와 선박협회관련비리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참으로 대책 없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 와중에 다시 김무성 의원에 대한 집요한 당대표 반대 여론이 인위적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파고가 느껴져 온다. 초록은 동색이라 했던가. 갑자기 5공 시절 드라마, 일본군에 비행기를 헌납한 친일파 공주갑부 김갑순을 각색한 “거부실록”에서 입에 달 듯 김갑순이 내뱉던 “민나 도로보데스(모두 도둑놈!)”라는 유행어가 떠오른다. 민나 도로보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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