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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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
  • 신종범
  • 승인 2014.05.23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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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법소년과 어머니

 

 

 

 

 

 
 

신종범 법무법인 The Firm 변호사

얼마 전 필자가 법률상담을 하고 있는 기관에 젊은 아주머니 한분이 오셨다. 다른 분을 먼저 상담하고 있는데 뒷 자리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쓰고 계셨다. 이윽고 차례가 되자 아까 열심히 쓴 것으로 보이는 종이를 보여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을 하셨다.

“변호사님 저희 아이가요 화폐를 위조해서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어요” 하는 것이다. 종이를 보니 그 동안의 사건 경위가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아이가 몇 살이지요?” “첫째는 딸이고 13살이구요, 둘째는 아들이고 10살이에요”

사건의 경위는 이랬다.

아들이 아빠에게 용돈으로 받은 오천원권 1장과 천원권 1장을 집에 있는 칼라복사기를 이용하여 복사한 후 크기에 맞게 오려 앞, 뒷면을 붙였다. 아들은 이렇게 복사한 돈을 가지고 다니던 태권도장에 가서 친구들에게 보여주자 친구들은 진짜 돈과 똑같다며 가게에 가서 한번 써보라고 했다. 몇 일 후 아들은 누나와 함께 학원을 가던 중 편의점에 들러 사탕을 산 후 복사한 오천원을 주고 거스름돈을 받고 나왔다.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남매는 편의점 앞을 지나다 편의점 주인에게 잡혀 경찰서로 인계되었다. 누나는 동생이 지폐를 복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선 둘 다 형사미성년자이고 누나의 경우는 지폐를 복사한 사실을 모르니 문제될 것이 없고 무엇보다 10살짜리가 복사하여 만든 것을 형법상 위조지폐로 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연신 안절부절 했다. 아주머니에게 걱정하시는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말씀드리며 안심을 시켜 드렸다. 몇 일후 그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경찰에서 아이들을 조사하였고, 곧 법원으로 넘길거라는 이야기였다.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변호사님이 꼭 도와 달라는 것이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주머니 목소리는 눈물로 젖어 있었다. 처음에 내가 예상했던 상황과 달리 사건이 처리되고 있었다. ‘그냥 훈방으로 처리될 일 아닌가?’, ‘경찰에서 사건을 검찰이 아니라 법원으로 직접 넘긴다?’ 혼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아주머니께 도와 드리겠다고 말한 후 안심을 시켰다. 그래도 아주머니는 안절부절 했다. 나를 만나서 직접 얘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그 날 오후에 재판이 있었지만 다른 변호사를 보내고 아주머니를 만나기로 했다. 아주머니에게 5천원권과 함께 복사했던 1천원권이 집에 있냐고 물으니 있다고 하여 오실 때 가져 오시라 했다. 전화를 끊고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촉법소년’...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소년’... 아이들은 소년법 제4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촉법소년이고, 경찰에서 소년 보호사건으로 조사를 마친 후 법원 소년부에 송치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이가 만든 화폐가 형법상 처벌 대상이 되는 ‘위조’에 해당하여야 촉법소년으로 의율할 수 있을텐데 10살짜리 아이가 객관적으로 진짜 화폐로 오인할 정도의 화폐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약속한 시간에 아주머니께서 오셨다. 아이가 오천원권과 함께 복사하여 만든 천원권을 가지고 오셨다. 순간 깜짝 놀랐다. 진짜 화폐와 너무나 유사하였다. 자세히 보고, 만져본 후에야 가짜 화폐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아주머니 말씀이 편의점에서 사용한 오천원권은 그 보다 더 정교하다고 하였다. 그 돈을 보니 경찰이 촉법소년으로 의율하려는 것이 이해되었다.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이의 아빠가 IT업체에서 근무하여 집에 고성능 복사기가 있고, 아이가 아빠를 닮아 손재주가 무척 좋아 만들기를 잘하고, 과학발명품 대회에 나가 상을 받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 학생생활기록부를 보여 주는데 학급에서 회장을 하고 있었고 선생님들의 평가가 한결같이 좋았다. 아이가 참 맹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호기심으로 실수한 이번 일이 아이의 장래에 잘못된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호기심 많고 창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 앞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 일이 그 아이의 호기심과 창조적 생각을 꺾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커졌다.

더욱이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아이가 걱정되어 몇 날을 잠 못 이루고 내 앞에서 눈물 흘리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이번 일을 잘 처리되도록 해 보자는 의욕이 강해졌다. 아주머니에게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안심시켜 보낸 후 참으로 오랜만에 소년법을 살펴보았다. 아이는 경찰에서 법원 소년부로 송치될 것이고 법원은 심리 개시 여부를 결정하여 심리 개시 결정을 내리면 심리를 개시한 후 불처분결정이나 보호처분을 내리게 될 것이었다. 소년법은 보호처분이 내려져도 “소년의 보호처분은 그 소년의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경찰 조사만 받은 것으로도 무척이나 놀라 있었고, 법원에 출석하고 보호처분을 받게 되면 더 큰 상처를 받아 자신감을 많이 잃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번 사건의 나의 미션을 ‘심리불개시결정’으로 정했다. 곧바로 보조인 선임서와 함께 피해자인 편의점 사장의 탄원서, 아이의 학교생활기록부, 부모의 훈육 및 양육계획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이 사건의 경위, 아이의 성장과정, 가정환경, 보호처분의 필요 여부에 대한 보조인 의견서를 제출했다.

편의점 사장의 탄원서의 문안은 내가 작성해 주었지만 그 탄원서를 받기 위해 아주머니는 몇 번을 찾아가 애원을 해야 했다. 부모의 훈육 및 양육계획서는 볼펜으로 꾸욱꾸욱 눌러 쓴 흔적 역력했고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제출할 수 있는 서면을 모두 제출하고 아주머니에게 이제 마음 편안히 하고 기다리시라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경찰이 법원에 사건을 송치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주머니께서 법원에서 통지서가 왔다고 했다. 난 기일이 통지되었나 하고 내심 불안하였다. 아주머니가 사진으로 찍어 메신저로 보내 준 통지서에서는 ‘심리불개시결정’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미션은 성공하였다. 아주머니에게 이젠 다 끝났으니 아이 훌륭하게 잘 키우시라고 말씀드렸다. 아주머니는 내게 너무나 감사하다고 또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원하던 결과를 얻을 수 없었을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 후 아주머니를 만났던 그 상담기관에 다시 상담을 하러 갔을 때 그 아주머니가 다시 오셨다. 아주 똘똘하게 생긴 아이와 함께...난 흐뭇하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중에 이 아이가 커서 한국의 스티브 잡스가 되어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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