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변호사강제주의, 때가 무르익었다고?
상태바
[기자의 눈] 변호사강제주의, 때가 무르익었다고?
  • 안혜성 기자
  • 승인 2014.05.16 1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혜성 기자

지난 14일 대법원 사법정책위원회는 변호사를 선임해야만 소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필수적 변호사 선임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 약자의 사법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소송구조를 확대하고 이와 연계해 보다 실효성 있는 재판청구권 보장을 위해 필수적 변호사 선임제도를 연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수적 변호사 선임제도, 즉 변호사 강제주의를 도입하기 위한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법무부는 지난 2000년 고등법원 이상의 법원에서 진행되는 민사소송에 대해 변호사 강제주의 도입을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시기상조론의 벽에 부딪쳐 무산되고 말았다.

사법정책위원회는 이날 “변호사 강제주의를 도입할 제도적·사회적 여건이 성숙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말 때가 무르익은 것일까? 변호사 강제주의를 도입하는 경우의 장점으로는 먼저 신속하고 효율적인 재판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법원의 업무과중을 덜 수 있다는 장점이 도출된다. 도입론자들이 주장하는 또 다른 장점은 실질적 재판청구권의 보장이다.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의 조력을 받으면 소송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억울하게 패소하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 또 법원의 업무과중이 경감되면 보다 충실한 심리가 가능해진다는 것도 변호사 강제주의의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반면 이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제시하는 근거는 소송당사자의 선택권 제한과 높은 수임료를 감당하기 어려운 서민의 경제적 부담이다. 현재 민사소송의 경우 70% 이상이 변호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임료가 저렴한 전문자격사의 도움을 얻거나 자력으로 소송을 수행하고 있다. 인터넷 등 각종 전문 정보와의 접근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본인 소송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것이다. 만약 변호사 강제주의가 도입될 경우 이들의 선택권이 침해된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또 고가의 변호사 수임료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제한하는 규제가 없고 현재의 소송구조제도가 극히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서민의 재판청구권 침해라는 오명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법정책자문위원회와 대한변호사협회 등은 과거 시기상조의 이유로 지적된 변호사 수의 부족도 로스쿨제도의 도입을 통해 해결이 됐고 소송구조제도의 개선 및 확대와 병행한 점진적 도입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일정 소가 이상의 재판 또는 고등법원 이상의 법원에서 진행되는 소송 등으로 한정하는 방법이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국민 누구나 큰 어려움 없이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여건과 변호사 강제주의는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서민들이 비용에 대한 부담 없이 재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 먼저 이뤄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변호사 강제주의 도입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는 말이다. 당사자의 선택권 보장 문제도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변호사 강제주의를 도입하더라도 스스로 소송을 수행하고자 하는 당사자의 선택권 제한이 최소한에 머물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해 내야 할 것이다.

아직도 다수의 국민들은 필수적 변호사 선임제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결국 변호사들의 ‘밥그릇 챙기기’ 아니냐는 말이다. 이번 사법정책위원회는 물론 지속적으로 변호사 강제주의의 도입 필요성을 주장해 온 대한변협도 변호사의 과잉공급에 대한 해결책으로서의 의미도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정말 변호사가 과잉공급되고 있는지는 차치하고, 이같은 상황에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신중한 고려 없이 필수적 변호사 선임제도가 도입된다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국민의 권리를 도외시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desk@lec.co.kr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