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39 / 집합건물 상가의 과세, 불합리함의 극치를 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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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39 / 집합건물 상가의 과세, 불합리함의 극치를 보이다
  • 이용훈
  • 승인 2014.04.2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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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치즈 매장 자리를 알아보던 후배가 임대인이 부르는 ‘권리금’에 아연실색했다. 월세와 보증금은 예산 범위 내에 들어왔는데 ‘목’ 타령하며 관행적으로 요구하는 권리금이 보증금 범위를 한참 넘어섰기 때문이다.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중요한 통로의 좁은 곳을 ’목‘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자주 오가서 장사하기 썩 좋은 곳은 ‘목이 좋은 곳’, 특정한 날 장사가 크게 잘 되는 경우는 ‘대목’으로 부른다. 그런 곳에 위치한 상가는 입지의 수혜자다. 못 쳐도 3할 타자는 된다.

요즘은 영화 예매 시에 좌석까지 선택할 수 있다. 뒤늦게 예매에 나서면 그나마 남아 있는 좌석은 대부분 스크린 맨 앞자리, 목 뻣뻣하게 쳐들고 봐야 하는 이코노미석이다. 동일한 공간 내에서 점유 위치에 따른 선호도는 분명 존재한다. 영화관처럼 선점의 논리에 따라 동일한 가격을 내고 후미진 곳을 피해 목 좋은 곳을 고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목 좋은 만큼의 웃돈을 요구한다. 어느 지역 어느 위치에 있는 부동산인지에 따라 지가 수준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동일한 건물 내에서도 공간의 위치에 따른 가치의 차이는 무시하지 못한다.

수평적 공간의 제약을 수직적 고밀화로 타개한 건 공간을 활용할 줄 아는 인간의 지혜다. 얼마 전 202층짜리 중국 스카이빌딩이 6개월 만에 완공될 예정이라는 뉴스가 실렸다. 만약 성냥갑처럼 일자로 올라간 건물이라면 수평적 좌표가 동일한 각 층별 공간의 가치는 동일할까 아니면 격차가 있을까. 이는 수직적 공간 가치, ‘목’에 대한 문제다. 간단히 15층 아파트를 생각해 보자. 1층과 9층은 분양가, 매매가, 전세가, 월세 모두 차이가 있다. 일반인들은 방범 문제 등으로 1~2층은 가급적 기피하고 소위 로열층을 선호한다. 딱히 로열층에 대한 정의는 없지만 공동주택 공시가격 산정을 맡고 있는 한국감정원에서는 최고층의 절반 높이부터 최고층 바로 밑층까지를 로열층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고 수직적인 ‘목’이 확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층간소음문제 때문에 이전보다 저층의 선호도가 조금 개선됐고, 난방비의 우려를 조망가치로 상쇄한 최고층의 인기는 더 올랐다. 이처럼 수직적 공간에 대한 ‘목’은 이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선호도 및 만족감을 나타내며, 집합건물 내 각 층별 가치를 평가할 때 ‘효용비율’이라는 수치로 반영된다. 상업용 부동산은 주거용에 비해 층별 효용비율이 각 층별로 큰 편차를 보인다. 수직적 공간의 ‘목’은 고객의 접근편의성과 관련되며 입점한 상가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좌우하므로 층별 분양가, 임대료에 고스란히 녹아든다. 괜히 지하상가를 1층 임대료의 1/3도 안 되는 금액에 임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집합건물은 수직적 공간의 위치 못지않게 수평적 공간의 위치에 따른 가치차이도 확연하다. 특히 상업용 부동산이 그렇다. 흔히 말하는 전면, 후면 상가는 고객이 접근하는 주 도로변과 주 출입구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한 보금자리주택지구 내 아파트 상가 1층 1개호가 한동안 분양, 매각이 되지 않은 적이 있었다. 필자가 해당 상가의 매각 평가를 담당했었는데 이미 3차례 평가를 받고 공개매각에 나섰어도 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매 번 평가 때마다 공매가격을 조금씩 낮췄을 터. 4번 타자로 평가에 들어간 필자도 현장을 보고는 매물 가격을 계속 낮춰도 입질을 하지 않는 이유가 이해됐다. 후면 상가에다 상가의 외부 출입구 코앞을 공용 화장실이 선점했던 것. 흔히 주(主)도로에서의 접근성 등으로 전·후면의 효용비율을 고려하지만 위치적 유·불리는 인근 선호 혹은 혐오시설에 의해서 가중된다. 정리하면 수평적 위치 효용비율은 해당 공간의 위치적 ‘매력도’라고 말할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 내 좌석등급을 S석, R석으로 나누는 근본 이치가 그렇다.

그렇다면 집합건물의 가치를 평가할 때 층별 효용비율, 위치별 효용비율의 값은 정형화되어 있을까. 일정한 범위를 나타내는 건 맞지만 고정된 값은 아니다. 성숙한 상업지대 내 10층짜리 집합건물에서 2층 상가는 대략 1층의 절반 가치를 보인다. 그러나 아파트상가는 2층에 좀 더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 이는 아파트 단지 내 주민이 해당 상가의 층별 업종과 상호를 숙지하고 있어 접근성 측면에서 1층 대비 2층의 효용비율 열세를 완화시키기 때문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상권이 고도화될수록 1층의 매력은 돋보여 위층의 매력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이런 경우 전면과 후면의 격차 역시 더 벌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집합건물에 있어 수직적 혹은 수평적 효용비율은 공간의 단위면적당 매력도를 나타내며 시장가치의 차이로 반영된다. 특히 용도상 상업용 건물에서 그 격차가 확연하다. 그러나 이들 공간의 재산적 가치에 과세를 함에 있어서는 효용비율의 격차 곧 몸값의 고저(高低)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왜일까. 과세 목적의 재산 가치 산정 논리가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현재 산식은 집합건물의 건물가치와 대지권가치를 별도로 추계해 합산하고 있는데, 전자는 국세청 기준시가 후자는 개별공시지가를 적용한다. 공간면적이 같다면 동일건물에서 구조와 경과연수가 동일하므로 층별로 건물가치는 차이가 없다. 또한 집합건물에서 층과 위치에 관계없이 공간면적이 같다면 대지권면적은 동일하게 배분되므로 대지권가치도 격차가 없다. 공간의 매력도는 깔아뭉개지고 규모만이 반영되는 과세 구조인 셈. 극단적으로 1층 슈퍼 100㎡와 지하층 창고 100㎡는 동일한 재산세를 납부하고 있다. 전자는 부당한 혜택을 누리고 후자는 불합리한 피해를 입는다.

효용비율이 고려되지 않는 과세구조를 개선하려면 재산 가치 산정 논리를 바꾸면 된다. 매년 단독주택에 대한 공시가격을 공시하듯이 이런 비주거용집합건물에 대한 공시제도를 도입하면 될 것. 이 제도에 의한 공시가격에는 수직적, 수평적 공간 매력도가 당연히 반영될 수 있다. 시범사업 기간을 가졌고 2015년 도입목표를 밝히고 있는 ‘비주거용공시제도’는 번만큼 가진 만큼 차등 과세하는 공평 과세 원칙이 지켜지기 위한 합리적 대안이다.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비주거용 집합건물에 대한 현 과세제도는 차량 크기 비슷하다고 비싼 외제차와 국내 소형차의 자차보험료를 동일하게 책정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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