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38 /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은 어떻게(그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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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38 /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은 어떻게(그 두 번째 이야기)
  • 이용훈
  • 승인 2014.04.1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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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응답하라’ 시리즈가 묘사한 1997년과 1994년은, 현재 중년층 문턱 앞에 대기번호 받고 줄서있는 이들이 캠퍼스에 발을 들여놓았던 시기다. 요즘세대가 PC방과 스마트폰으로 무료함을 달래고 있다면 저네들의 코흘리개 적 놀이는 뭐였을까. 드라마에선 학창시절에 포커스를 맞춰 딱히 유년기놀이문화가 소개되지 않아 처음 들으면 생소할 것이다. 놀이 이름 한 번 촌스럽지만 적나라하다. ‘딱지치기’, ‘구슬치기’, ‘비석치기’ 소위 ‘치기’ 놀이가 성행했다. ‘술래잡기’, ‘깡통치기’ 등 여타 놀이 명(名)도 거의 네 글자였다.

여기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땅따먹기’란 놀이를 잠시 소개하고 싶다. 일명 최고의 부동산투자 무상 교육 프로그램이자 스릴 있는 실전 투자 대회였다. 일단 가로세로 3m인 정사각형을 땅에 그린다. 참가하는 선수는 모퉁이에 일정한 크기의 땅을 공평하게 분배받는다. 이어 바둑판에서 집을 집듯 서로 간 영역을 차지하기 위한 혈투를 개시한다. 규칙은 단 한 가지. 미 서부 개척 시대 황무지를 차지할 때처럼 땅을 선점하면 된다. 각자 처음 분배받은 아지트에서 출발한 돌이 세 번 만에 출발지로 원대 복귀하면 점유요건은 충족. 돌아가면서 잘 다듬은 돌을 엄지 혹은 검지로 세 번 튀기는 시도마다 탄식이 절로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조금씩 영역을 넓히는 와중에 아무래도 야금야금 반경을 넓히는 상대방에게 밀리겠다 싶으면 특단의 모험을 걸 수밖에 없다. 소위 갈라치기 전략이다. 세 번 튀겨 본거지에서 가까이 혹은 먼 곳에 위치한 정사각형 외곽선까지 정확히 도달, 관통하게 되면 갈라 친 내 쪽 영역 모두가 내게 넘어온다. 소규모 매집에 나서든, 대규모 택지를 한 방에 확보하는 계획이든 참가하는 선수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전투의 양상은 유동적이다. 그래서 더 흥미진진하다.

공익사업 중 택지개발사업은 일단의 넓은 지역을 한꺼번에 수용해서 공동주택 등을 공급하는 개발 사업이다. 특정 지역 전체의 토지를 취득하다보면 어떤 토지는 사업 구역 경계에 걸려 일부만 잘라 편입한다. 잘리고 남은 토지인 ‘잔여지’는 도저히 종전대로 사용하지 못할 정도면 매수 혹은 수용을 청구할 수 있고, 도로 등의 개설이 필요하면 그 비용을 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아쉬운 대로 ‘잔여지’를 쓰겠다면 모양이 안 좋아지고 접근성이 악화된 것에 따른 가치하락 보상을 받는 방안도 있다. 그러나 면(面)사업과 달리 선(線)형 사업은 거의 모든 토지를 관통하며 띠 모양으로 잘라 가 버린다. 이 사업이 지방도 개설 사업이라면 나름 괜찮다. 포장도로가 바로 옆을 지나게 돼 ‘잔여지’가 혜택을 볼 여지가 다분하니. 그런데 관통하는 게 고압선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송전선 주변 일부만 손실보상을 해 주고 나 몰라라 하기 때문이다. 눈앞에 떡하니 있는 송전탑과 고압선의 존재는 ‘잔여지’와 그 지상에 있는 주택 입장에서는 심각한 가치하락 요인이 된다. 일말의 사용 또는 거주의 욕구를 느끼지 못하는 토지와 주택이지 않은가.

밀양 송전탑 사태에 맞닥뜨려 서둘러 입법된「송ㆍ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크게 보상의 ‘공간’과 ‘대상’의 범위 확대 그리고 잔여지의 손실에 상응할 만한 ‘지원 사업’ 추진의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보상의 ‘공간’을 <재산적 보상지역>으로 구체화시키고 있다. 종전 규정과 비교해 달라진 점을 살펴보자. 송전선이 통과하는 부분, 즉 선하지 면적은 보상의 직접적인 대상 구역으로 공중 부분 영구 사용에 따른 구분지상권이 설정되는 영역이다. 종전 규정은 전선 두 개가 나란히 통과하고 있으면 전선 최 외측으로부터 3m씩 보폭을 넓혀 둘러싸인 면적을 1차적 기준으로 삼고 여기에 전압별 이격거리만큼 보폭을 넓혔다. 35,000v를 넘는 10,000v마다 15cm를 가산할 수 있도록 했는데, 765kv 송전선이라면 약 11m 폭이 넓어진다. 그렇다면 최종 선하지면적은 전선 양 측에서 수평으로 각각 14m만큼 벌린 직하면적이 될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송전선에서 수평으로 14미터밖에 위치한 토지는 이 송전선으로 인한 손실보상을 거론할 원고적격도 인정받지 못하는 셈. 새로이 제정된 법률은 지상 송전선로의 건설로 인하여 재산상의 영향을 받는 지역을 <재산적 보상지역>으로 규정하고 전압별로 보폭을 이전보다 꽤 넓혔다. 765kv 송전선인 경우 송전선 양측 가장 바깥 선으로부터 각각 33m, 345kv인 경우 각각 13m만큼 외곽선을 확장할 수 있다. 최소한 종전보다 손실 보상의 공간적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다만, <재산적 보상지역> 전체 공중부분에 영구적 사용에 따른 구분지상권을 설정할지는 의문이다. 구역만 넓혀 보상하고 구분지상권 설정 면적은 기존대로 갈 지, 손실보상을 해 줬으니 보상 지역 전체 등기사항전부증명서에 구분지상권 등기를 경료할지는 이 법이 최초 적용되는 사업의 진행 사항을 봐야 분명할 듯하다. 전자라면 기존 선하지 면적과 재산적 보상지역으로 추가되는 면적 간 재산상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달리 볼 여지도 있다. 그렇다면 보상금도 차등 지급될 것이다.

신설된 법률에서 보상의 ‘대상’을 확대한 것은 <주택매수 청구지역>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상 송전선로 건설로 인하여 주거 및 경관상의 영향을 받는 지역을 정해서 그 안에 있는 주택 소유자의 청구가 있으면 의무적으로 사업자가 주택을 매수하도록 한 것이다. 이 지역은 재산적 보상지역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765kv 송전선인 경우 송전선 양측 가장 바깥 선으로부터 각각 180미터, 345kv인 경우 각각 60m로 경계를 삼는다. 축사 혹은 공장과 달리 이 정도 거리 이내에 위치한 주택 소유자라면 거주의 불쾌함을 충분히 항변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매수 금액(토지+건물)은 보상평가기준을 준용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으며, 현황 평가 원칙이 예외 없이 적용되므로 노후화 정도가 반영되는 건물 매수 금액은 대부분 신축 비용에 크게 못 미칠 것이다. 그래도 고압선 아래 살기 싫어 떠나고 싶은 자에게 뾰족한 수가 없었던 종전 상황보다는 나아졌다.

이렇게 재산적 보상지역을 확대하고 주택매수 청구 자격을 부여해도 여전히 지원이 필요한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이들 구역 밖에 살고 있는 같은 동네 이웃 사람들이다. 피해의 직접성을 입증하긴 그렇지만, 혐오시설이 부근에 있는 건 사실이라 기분 좀 꺼림직 하고, 땅값도 왠지 좀 떨어질 것 같고, 밭 갈러 가려면 고압선 밑을 매일같이 왕래해야 한다면 뭔가 좀 쥐여 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765kv 송전선(옥외변전소)인 경우 송전선(옥외변전소)양측 가장 바깥 선(외곽경계)으로부터 1,000m(850m), 345kv 송전선(옥외변전소)인 경우 700m(600m)이내 지역을 <송ㆍ변전설비 주변지역>으로 지정했다. 간혹 이렇게 정한 주변지역의 경계가 마을을 관통할 수 있다. 그러면 내 집과 앞집이 경계선 하나로 희비가 엇갈린다. 이럴 땐 ‘주변지역 지원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주변지역의 범위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 주변지역 내 주민에게 제공하는 당근은 어떤 게 있을까. 주택 전기세를 일부 보조해 주는 등의 직접 지원 방법은 ‘주민지원 사업’에 속한다. 편의증진 혹은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인 ‘주민복지 사업’으로 공원이나 체육시설 등을 설치해 줄 수 있다. 마을공동 농산물 가공 공장을 설립해 운영할 수 있도록 이모저모 지원하는 ‘소득증대사업’도 고려할 만하다. 저소득 가정을 위한 장학기금 적립 또는 기숙사 지원 같은 ‘육영사업’도 선택 사항 중 하나다.

여태 배상 혹은 보상의 문제에 맞닥뜨린 적이 없다면 곱게 살아온 것이다. 사익은 대못박혀 찢겨나가고 공익은 흩뿌려지는 것이 세상지사 아닐까. 찢겨나가는 입장에 우리 중 누군가가 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입법자는 선하지 보상의 문제에 빈틈이 보이지 않도록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갈등의 현장에서 입법의 흠결을 메워 보려고 발 벗고 나서는 적극성 이전에, 뒷북치는 땜질 처방을 미연에 방지하는 사전 입법의 농익은 결과물이 더욱 절실하다. ‘제발 반값이라도 팔고 나가고 싶어요.’ 송전선 주변 보상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외침은 오늘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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