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자격증]어느 꿈쟁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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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자격증]어느 꿈쟁이 이야기
  • 법률저널
  • 승인 2003.10.2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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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학도에서 법학도로
- 사법시험이라는 열차로 바꿔 타고 떠난 긴 여행


박지영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법과대학 졸업
사법시험 42회
사법연수원 32기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합격수기라는 것은 어쩜 존재하지 않는 실체에 대한 기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만약 제가 시험에 불합격했다면, 저의 그간의 수험생활은 고스란히 불합격수기라는 제목 하에 후회와 자책 일관으로 묘사되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우연히, 아니면 너무나 깊은 섭리에 의해, 그 못난 일상이 합격생의 수험생활이라고 이름 붙여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연히'라서 그 '우연'을 아직 못 누리고 있는 분들께 한없이 미안하고, '너무나 깊은 섭리'라서 과람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자신의 성공은 남들이 기억하지만, 자신의 실수는 자신이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저는 합격기를 쓸 근거자료를 제 생각의 창고 속에 많이 저장해 두지 못했습니다. 다만, 수험기간 내내 제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위로로써 현재 위로가 필요한 분들을 위로해야 한다는 사명만은 분명히 감당해야 할 것 같아, 잘 나가지 않는 펜대를 들어 봅니다.

저는 5살에 피아노를 시작하여 예원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학도였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그 부득이한 사정은 이 글에서는 생략함을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15년 동안 제 삶의 전부였던 피아노를 내려놓고, 남들보다 2년 늦게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이론과에 입학하여(91학번) 졸업한 후, 1995년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하였습니다. 1998년 1차 시험에 처음으로 합격하고, 같은 시기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3학년에 학사편입을 했으며(96학번), 1999년 면제자로서 2차 시험에 떨어진 후, 2000년 1차와 2차를 동시에, 이른바 '헌 동차(同次)'로 합격하였습니다.

이 범상치 않은 경력 때문에 '맨 땅에 헤딩' 그 자체로 지내온 수험생활이었고, 정보의 부재, 같이 공부하고 격려해 주는 친구의 부재, 위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하여 저 혼자 겪어야 하는 고통 등으로 인해 고시서적 만큼이나 무거운 부담감 속에 지내온 지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웃을 수 있는 것은, 음악이든 법학이든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 그것들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내 인생 최종목표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약하고 부족한 저로 하여금 그 최종목표의 꿈을 이루시려고 그 수단을 이제 막 제 손에 쥐어 주셨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즈음도 많은 분들로부터 음악에서 그렇게 급선회하여 법학으로 들어섰는데 지금 하는 변호사 일이 마음에 드느냐, 후회는 없느냐 등의 질문을 받습니다. 그 질문에 일일이 영민하게 대답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어 항상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만, 지금이라도 대답을 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제게 있어서 법학은 수단이요, 도구(tool)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리 통탄할 후회나 실망은 없습니다. 법학은 바꿔 탄 열차이고 이 열차가 가고자 하는 종착역을 향해 잘 달려갈지 여부는 앞으로 저의 몫으로 남아 있으니까요."

어차피 남들과 그 시작도, 과정도 달랐기 때문에 결과도 남들과 단순 비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몇 학년에 붙어야 좋다느니, 좋은 성적으로 붙지 못하느니 한 해 늦는 게 낫다느니, 어느 정도 공부해야 하느니 하는 그 수많은 통설도, 어차피 인생 자체가 소수설인 저한테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단지, 수험기간 내내 두려운 게 있었다면 제 스스로가 목표를 가장하여 수단을 맹신하는 오류에 빠지는 것이었고, 피하고 싶은 게 있었다면 부득이한 사정으로 피아노를 일순간에 깨끗이 포기하고 떠나야 했던 - 불가항력이라는 것을 겪어 보았던 - 저를, 속도 모르고 욕심 많은 적극적 사고방식의 소유자로만 바라보는 몇몇 곱지 않은 시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안으로부터의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극해 주는 손길이 있었고, 곱지 않은 시선을 희석해 주는 고맙고 따뜻한 시선이 있었기에, 이기고 견딜 수 있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공부시작 해서 3년이 넘도록 입 밖으로 '대리', '법률행위'라는 말조차 별로 내뱉어 본 기억 없이 혼자 공부했던 제게, 하나님은 그야말로 '참 좋은 나의 친구'이셨습니다. 언제나 뒤돌면 빙긋이 웃고 계시는, 그래, 그래, 알고 있다, 나만은 너의 고통을 알고 있다고 등 두드려 주시는 내 하나님, 네 고통이 진정 의미와 가치가 있으려면 지금의 어려움을 이긴 후, 고통 당하는 다른 이웃들에게 용기를 선사해야 한다고 등 떠미시는 우리 하나님이 계셔서 지금까지, 여기까지 왔다고 밖에 달리 표현이 되지를 않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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