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진 기자
“법조인력 양성을 대학에 맡겼으면 그 결과를 피드백하고 불합격자 처우 및 향후 재학생들의 교육방향 등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갑작스레 합격자 이름도 공개하지 않고 수험번호만으로 합격자 발표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 최소한 수험번호만이라도 학교에 알려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난 8일, 제3회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발표나자 전국 25개 로스쿨은 비상이 걸렸다. 교수들은 제자들의 합격여부를 알고자, 행정실은 행정업무 차원에서 정보를 수집하느라 발버둥치는 모습이 역력했다. 지난해 제2회시험까지는 수험번호와 함께 성명도 함께 공개됐지만 법무부가 갑작스레 이번 시험부터 명단 없이 응시번호만으로 합격자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일부 수험생들이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인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인격권(명예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이어 민병두 국회의원이 지난 1월 변호사시험 및 사법시험 합격자를 공고할 때 성명공표를 하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하므로 응시번호만 게재토록 하는 개정안을 대표발의한데 따른 것이다.
법무부는 이날 “사법시험과 달리 변호사시험 응시대상은 어느 정도 특정된 집단이므로 합격자명단 공개로 인한 불합격자의 프라이버시 등 침해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을 수용한 결과”라며 “개인정보를 보다 두텁게 보호하는 차원에서 변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변경으로 전국 로스쿨은 ‘애꿎은 우리들만 고생하게 생겼다’며 연일 시험 응시 졸업생들에게 전화를 넣느라 소위 북새통이다. 1월 초 변호사시험 실시 이후 대부분 졸업생들은 전국으로 풀뿌리 흩어진데다 재시, 삼시생들의 연락단절은 이미 오래 전이라는 것. 그렇다고 나몰라라며 손을 놓을 수도 없다. 로스쿨 평가 항목에 당해 연도 학위취득자들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포함됐다는 것. 그나마 일부 로스쿨은 시험직전 수험번호를 확보한 터라 응시생들의 묵인 하에 합격자 명단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한숨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로스쿨 관계자들의 법무부를 향한 볼멘소리가 합격자 발표 수일이 지나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일부 로스쿨들은 변호사시험에 탈락한 졸업생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지만, 불합격자 파악이 불가해 재교육 계획을 차일피일 미룰 수 밖에 없다는 불만이다. 그렇다고 수험생들의 입장에서도 합격이면 몰라도 불합격이라면 좀처럼 먼저 학교에 연락을 취하기가 보통 용기가 아니면 힘든 법. 그래서 일까, 불합격생 중 상당수는 발표 직후부터 어디서 어떻게 다시 일년을 공부해야 할지 갈등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불합격자들을 위한 상담, 멘토가 필요하지만 명확한 합격자 명단을 확보하기 까지는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강변이다.
이번 법무부의 명단 비공개 역시 권익보호 차원에서도 나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따지고 보면 당사자인 로스쿨생들이 공개를 거부했고 결국 헌법소원까지 청구한 마당에 법무부로서는 굳이 반대할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부메랑은 로스쿨과 수험생들에게로 돌아가는 듯하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너무 갑작스럽게 명단비공개가 이뤄져 적지 않은 홍역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법무부는 대학간의 서열화와 과잉 경쟁을 막기 위해 각 로스쿨의 합격률도 공개하고 있지 않다. 이 역시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지사지도 필요하고 건전한 경쟁은 상호 발전을 촉진시키기도 한다. 합격률이 낮은 로스쿨에게는 독이 될 진 몰라도 그 반대의 입장에서는 열심히 가르친 보람이라며 쾌재를 부를 일이다. 로스쿨의 러브콜에 법무부도 이제 답변을 주어야 할 때다. 또 로스쿨을 지원하고자 하는 수험생들의 대학 선택권과 로스쿨에 관심을 가진 국민일반인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일본의 합격자 발표방식을 적극적으로 검토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