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죽은 자의 도시에서 탱고를, 당신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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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죽은 자의 도시에서 탱고를, 당신을 초대합니다.
  • 오시영
  • 승인 2014.04.0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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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필자의 미발표 졸시 “레꼴레따(Recoleta)”를 본다. “누가 말 했었나/ 죽은 자들은 말이 없다고/ 한낮, 산 자들의/ 침묵이 아우성이다/ 죽은 자들의 도시*에서/ 낯선 이국의 여인과/ 구레나룻 수염의 남자를 만나/ 한 잔의 커피를 마신다// 죽어서조차/ 화려한 도시 대리석 저택에 사는 당신은/ 참 대단한 인물인 모양이요/ 가난한 산 자의 어색한 미소 앞에서/ 잠에서 깨어난 영혼들이/ 아니야, 아니야 손사래를 친다// 죽어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석관 속에 가둔 채 돌집을 지어 준/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랑하는 자들이/ 미워, 미워/ 산 자들의 웅성거림 사이로/ 유령들의 침묵이 합창한다// 죽은 자들의 도시에는/ 지옥과 천국으로 향하는/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아니, 아예 없다” (전문, “쎄멘떼리오 데 라 레꼴레따(Cementerio de la Recoleta), 죽은 자들의 도시”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미니아쳐 형식의 수많은 대리석 건물로 된 공동묘지이다).

탱고의 나라, 아르헨티나를 여행했다. 인구 4,300만 명인 아르헨티나는 남한 면적의 28배에 달하는 거대한 영토를 가진 남미국가이다. 1914년 당시 한때 세계 4대 경제대국이기도 했던 아르헨티나는 지난 100년 동안 별다른 경제성장을 하지 못한 결과 최근 외환위기를 겪고 있다고 한다. 연간 국민 1인당 국민소득이 12,000불 정도 된다니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이다. 좋은 공기라는 뜻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소나기가 잠시 내리더니 아름다운 쌍무지개가 약 30분 넘게 떠 낯선 이방인을 환영해 주었다. 좋은 공기 속에 하늘이 맑아서인지 무지개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아르헨티나가 지난 100년 동안 경제가 부흥하지 못한 것은 페론 정권 등 좌파정부에 의한 퍼주기정책 때문이라는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한국 교포는 아르헨티나가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이 실시되어 너무 좋다고 하였다. 또한 노동법이 엄격해 근로자들이 여가시간 등을 잘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이 사회복지혜택을 골고루 받고 있어 한국처럼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하고 좋다고도 하였다. 이에 대해 함께 한 여행객들 중 일부는 그러니 나라가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지 하면서 이 좋은 환경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발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질책성 비난을 가하였다. 긍정과 부정의 팽팽한 대립을 보면서, 필자는 문득 여기가 에덴동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넓은 땅덩어리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곡식, 목축업의 발달로 소고기 같은 육류 등의 식료품 가격이 극히 저렴할 뿐만 아니라 실업 수당 등 최저생활 유지를 위한 사회보장 및 무상의료에 무상교육이 실시되고 있어 국민이 살아가는데 전혀 걱정할 것이 없다니, 이곳이야말로 에덴동산이 아니겠는가 싶었던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가난 속의 풍요와 여유를 보면서 “Don’t cry for me Argentina”라는 노래, 에바 페론과 페론 대통령의 러브스토리와 빈민구제정책, 마라도나로 상징되는 축구강국, 포에버 탱고 정도의 단편지식밖에 없었던 필자로서는 이번 여행을 통해 아르헨티나를 다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땅덩어리가 넓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싶었다. 현대사회는 풍요와 빈곤이 공존한다. 절대물량이 넘쳐나는 데도 물량배분의 상대적 불균형으로 한쪽에서는 비만으로 병들어가고 있고, 한쪽에서는 기아와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 어찌 보면 이러한 세계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야말로 아르헨티나식 경제정책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까지의 무상교육과 죽을 때까지의 무상의료, 최저한의 식생활보장을 위한 실업수당지급 내지 생활보호급여의 지급은 인간을 빈곤으로부터 탈출케 한다. 주택문제만 해결될 수 있으면 족하다. 이것도 미국처럼 일정한 조건 하에서 거의 무료에 가까운 소형주택을 보장해 주면 된다. 열심히 버는 자들은 더 가져도 되고, 그에 상응한 세금만 내면 된다.

지나친 경제발전은 후대의 생명을 앞당겨 갉아먹는 고갈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60억 인구가 일상생활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의 물자를 지구로부터 빌려 쓰고 더 이상 갈취하지 않도록 자제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탐욕은 죽어서 가져가지도 못할 재물을 쌓아두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도심 한복판에는 “죽은 자들의 도시”로 불리는 “쎄멘떼리오 데 라 레꼴레따”라는 공동묘지가 있다. 150여 년 전부터 지어지기 시작했다는 레꼴레따는 중앙을 중심으로 팔달로로 펼쳐진 계획도시형 공동묘지이다. 유럽형 대리석 건물로 으리으리하게 지어진 일종의 가문묘라고 할 수 있다. 각 건물들의 모양이 모두 다를 뿐만 아니라 각종 조각품 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종교적 장식품들이 치장되어 있는 일종의 석조미니도시라 할 수 있겠다. 지금 짓는다면 한 기당 5억 원 정도의 건축비가 들 것이라니 묘지의 화려함을 능히 상상할 수 있으리라. 가톨릭 신자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아르헨티나는 산 자들도 급할 것이 없었고, 죽은 자들도 급할 것이 없는 듯 했다.

150여 년 전 레꼴레타를 시작한 아르헨티나인의 정신이 현대에 이르러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살았을 때 성공한 자들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죽은 후 짓기 시작했다는 레꼴레타, 거기에 다른 성공한 자들이 뒤질세라 가세하여 수천 명의 죽은 자들이 안장된 죽은 사람들의 도시는, 역설적으로 잘 살기 위해 약한 자들을 착취하며 아등바등 살아 봤지만 결국 죽고 보니 한 줌의 재 이상은 아니더라는 것을 후대에게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등의 국가정책을 실시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보다 더 좋은 정책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지난 2일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연설이 국회에서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공약으로 제시한 기초지방자치단체 후보자들에 대한 정당공천폐지 선거공약을 폐기한 이유를 질문하는 국회연설 도중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가 “너나 잘해”라고 막말을 한 것을 둘러싸고 여야 간에 시끄러운 비방전이 전개되고 있다. “너나 잘해”는 “내가 잘 하고 있을 때” 상대방을 향해 던질 수 있는 마지막 말이다. 내가 잘 하지 못하면서 남을 향해 “너나 잘해”라고 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황당한 막말이다. 기초지방자치단체의 공직 후보자들에 대한 정당공천폐지는 여야 모두의 선거공약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이 공약을 실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야당대표로서는 국회연설을 통해 이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면 여당에서는 왜 그 공약을 폐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여당과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총무는 그런 설명은 고사하고 “너나 잘해”라는 막말을 늘어놓는 막가파식 폭언을 퍼부었다. 필자는 그 동안 수도 없이 정치인들을 향해 “언어순화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정치는 곧 말에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당의 원내대표라는 이가 야당대표의 국회에서의 공식적인 대표연설 도중에 끼어들어 곧바로 “너나 잘해”라는 신경질적 막말을 한다는 것은 그의 인품의 저급함과 인격의 몰상식함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학교에서 교수들도 제자인 학생들에게 “너”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아주 친근하게 된 사적인 대화에서는 간혹 어찌할지 모르겠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제자들에게조차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너라는 낮춤말을 국회 공식 대표연설과정의 야당대표를 향해 “너나 잘해”라고 폭언을 퍼붓는다는 것은 인격의 밑바닥을 드러낸 것이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정치인이라면 듣기 싫은 말을 이를 악다물고 들어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올바른 의견을 개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정치인들도 정말이지 말을 조심해서 하고 언어순화를 통해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로부터 진짜 “너나 잘해”라는 꾸중을 들게 될 것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죽은 자들의 도시에 가면 애칭 에비타로 불리기를 좋아했다는 에바 페론의 가족묘가 있다. 사생아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십대부터 창녀생활 비슷한 삶을 살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면서도 가수로서의 삶을 살아오다가 성공하여 페론을 만나 나중에 대통령의 부인이 되었던 에바타는, 어렵게 살았기에 아르헨티나의 빈곤층을 위한 복지정책에 노력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모든 사회복지시스템이 에바 페론 때 기초가 다져졌다니, 가난하고 약한 자를 돌보는 한 사람의 실천은 대단한 영향력을 갖는 것이다. 서른 셋의 젊은 나이에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난 에비타에 대한 애증은 사후 60년이 지난 지금도 아르헨티나인을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에비타 그녀가 즐겨 췄다는 아르헨티나 본고장의 탱고, 두 남녀 댄서의 밀착된 하나됨을 보며 탱고의 강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몇 주 전 김연아 선수의 소치동계올림픽 프리스케이팅 배경음악인 아디오스 노니노에 친숙해진 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유명한 탱고공연장 사보라 탱고에서 만난 탱고는 역시 화려하고 강렬했다. ‘만지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탄게레(tangere)에서 비롯되었다는 탱고는 남녀 댄서의 황홀한 밀착의 춤이다. 1999년 포에버 탱고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를 예술의 전당에서 당시 관람하며 느꼈던 탱고의 화려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15년 전 방한했던 한 남자 댄서를 사보라 탱고장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다른 댄서들에 비해 키가 작고 살집이 통통한 나이 많던 한 댄서를 유독 기억하게 되었던 것은 그의 체형이 다른 댄서들에 비해 열악했기 때문이었는데, 그 남자 댄서를 다시 보게 되었던 것이다. 더 잘 추는 댄서들은 기억이 안 나는데, 그 키 작고 통통한 나이 많은 댄서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였다.

우리 여야 정치인들이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방문하여 죽은 자들의 도시를 거닐며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정책을 배워갔으면 좋겠다. 죽으면 별 것 아닌 세상, 살아생전 탱고의 어원대로 남녀가 서로 사랑으로 만지며 하나 되듯 여야가 상대방을 존중하며(이는 스스로를 존경받게 하는 것이다) 서로 손을 맞잡고 국가의 백년대계 정책을 수립해 갔으면 한다. 만지니 닭살 돋는다고? 자, 자, 그래도 좀 만지고 탱고를 한 번 땡겨 보시죠, 반도네온의 반주에 맞춰 김연아가 춤을 추듯 말이죠. 짠짠짠짠, 짜자잔 짠짜잔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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