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36 / 자투리를 대하는 감정평가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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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36 / 자투리를 대하는 감정평가사의 자세
  • 이용훈
  • 승인 2014.04.0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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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자투리는 덤으로 얹어 주세요.’ 전통시장을 제 집 드나들던 우리네 어머니의 상투적인 흥정멘트다. 그럴 때면 꼬깃꼬깃 지폐 몇 장을 손에 쥐고 경우에 따라서는 안 살 수도 있다는 으름장 섞인 제스처가 동반된다. 일정한 용도로 쓰고 남은 나머지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인 ‘자투리’는 한 무더기로 취급되기에는 부족한 소량의 무언가를 지칭할 때 쓰인다. 상추 예닐곱 개 혹은 토란 서너 대일 수 있다.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덤’이라는 말도 있다. 물건을 팔고 살 때, 제 값어치의 물건 외에 조금 더 얹어 주고받는 다른 물건을 가리키는데, 본류(本流)에서 떨어져 나온 지류(支流)성격의 자투리와는 달리 원 물건에 딸려가는 부속품 신분쯤 된다.

‘자투리’는 대체로 천대받는 편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의외의 몸값을 부여받기도 한다. 그래서 자투리로 취급받는 이런 자산의 가치를 평가할 때 감정평가사는 자투리가 처한 상황이 어떤지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물건의 자투리와 별반 차이 없는 대접을 받는 대표적인 경우는 담보가치를 추계할 때다. 완만한 구릉 형태의 10,000㎡ 임야를 창고부지로 활용하기 위해 개발행위허가를 받는다면 자투리는 예외 없이 등장한다. 이 중 수 십 내지 수 백 제곱미터는 허가면적에서 제외되는 게 다반사니까. 이들은 달리 ‘(허가)제외지’라고 불린다. 제외지 신분이 된 이유는 급경사 혹은 빽빽한 입목밀도 등의 자연적 요건이 태반이다. 토지 전체에 대한 개발 계획을 세우다 보면 이런 토지 특성에 의해 부득이 ‘알땅’에서 빠지는 자투리가 나오기 마련인 것이다. 이들은 예외 없이 홀대(忽待)를 면치 못한다. 푸대접의 결과는 뻔하다. 이 토지를 담보로는 돈을 빌려 줄 수 없다는 것. 감정평가서에는 ‘단독효용가치 희박’이라는 사유로 가치가 없다고 기재된다. 택지로 바뀔 ‘알땅’에 묻어가긴 하지만 별도 값어치는 못하는 셈. 회계에서 말하는 ‘중요성의 원칙’과도 일맥상통한다. 단, 취급은 이렇게 받지만 근저당설정의 굴레는 벗어나지 못한다. 볼모로 잡은 왕족의 수발을 드는 몸종 정도로 대우받는다고 보면 될 듯.

위와 달리 ‘자투리’가 융숭한 대접을 받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공터로 방치된 수 제곱미터 국·공유지가 일반에 매각 대상으로 공고될 때다. 얼핏 먼저 소개한 제외지보다 상황이 그렇게 나아보이진 않는다. 길고 좁다란 땅이거나 삼각형 형태가 일반이니까. 더구나 이런 땅은 규모가 협소해 뭘 어떻게 활용할 방안이 없다. 그런데 진흙 속 진주를 보듯 하는 이가 있다. 바로 옆 필지 소유자다. 손 짜장 전문점으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는 식당이라면 차 한 대 더 댈 공간, 밀가루 한 포 더 쌓을 수 있는 자투리땅도 감지덕지다. 더 나아가 두 필지가 합병된다면 지류(支流)는 본류(本流)에 합세하는 모양새다. 그러니 합병 즉시 옆 필지와 동일한 몸값이 형성된다. 이런 행복한 시나리오가 예정되어 있으니 대지 옆에 붙은 이런 ‘자투리’는 일반 자투리땅과는 대접이 다르다. 이 토지의 매각을 위한 감정평가 시, 수의계약형태로 인접필지 소유자가 매수자로 특정된 경우라면, 매각가격에는 이 자투리 토지가 인접 필지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이 어느 정도 반영된다.

귀한 대접은 재개발구역 내 자투리땅도 마찬가지다. 이런 토지를 제 값 이상으로 매수하려는 조합원이 꽤 되니까. 관련규정에 재개발구역 내 조합원 간 분양 우선순위를 구역 내 종전자산 가치 순으로 결정한 것이 결정적이다. 어차피 모두 다 아파트 한 채 씩 분양받는 건데 별 차이가 있을 성 싶지만, 선호하는 평형대 공급이 많지 않고 해당 평형에 분양신청이 몰리면 상황이 달라진다. 토지 몇 ㎡, 금액으로 몇 백 만 원 차이 때문에 원치 않는 대형 평형이 배정될 수 있다. 이런 걸 미연에 방지하려는 눈치 빠른 조합원은 서둘러 자투리땅 임자를 만나 웃돈 주고 사겠다고 흥정한다. 물론 한창 아파트 경기 좋았을 적 얘기다.

위 2가지 경우, 자투리에 대한 홀대나 융숭한 대접은 각각 자투리땅의 현재 혹은 장래 토지특성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자투리가 되기 전의 과거 신분으로 대우받는 토지도 있다. 공익사업 때문에 토지일부가 편입되고 남은 토지인 ‘잔여지’는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예전 지위를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74조는 ‘동일한 소유자에게 속하는 일단의 토지의 일부가 협의에 의하여 매수되거나 수용됨으로 인하여 잔여지를 종래의 목적에 사용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할 때에는 해당 토지소유자는 사업시행자에게 잔여지를 매수하여 줄 것을 청구할 수 있으며, 사업인정 이후에는 관할 토지수용위원회에 수용을 청구할 수 있다.’ 고 규정하고 있다. 1필지 토지 대부분이 편입되고 남은 일부 토지가 대지로서 면적이 너무 작거나, 부정형(不定形) 등의 사유로 건축물을 건축할 수 없거나 건축물의 건축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 농지로서 농기계의 진입과 회전이 곤란할 정도로 폭이 좁고 길게 남거나 부정형 등의 사유로 영농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 공익사업의 시행으로 교통이 두절되어 사용이나 경작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 등이라면 ‘그 쪽 때문에 아무 쓸모없게 된 땅 사가세요’ 라고 요청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망가뜨려 놓은 자전거 가져가는 대신 새 자전거 값 내 주듯, 사업시행자는 잔여지의 현 상태가 아닌 잘려 나가기 전 온전한 상태로 보상해 주어야 한다. 물론 공익사업 때문에 잘려 나간 모든 토지가 이런 혜택을 보는 건 아니다. 먼저는 법률 요건에 부합해야 하고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서 내부적인 재결기준으로 정한 면적 요건(ex. 농경지인 경우 잔여지 면적 330㎡ 이하일 것)등을 충족해야 한다.

이렇듯 볼품없는 자투리땅에 대한 대우가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들에 대한 몸값을 책정할 때 이들이 처한 상황을 예의주시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황에 따라 몸값이 출렁인다는 사실에 우리 역시 익숙해 질 필요가 있다. 스스로의 효용을 입증해 가치를 구축하는 유(類)가 있는가 하면 외부의 환경에 연동되며 경제적 가치를 부여받는 유(類)가 있지 않은가. 내면적인 가치가 전자라면, 감정평가를 통해 경제적 가치를 지적당하는 모든 유·무형의 자산은 바로 후자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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