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졸시 “나중에, 아주 나중에”와 낙서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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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졸시 “나중에, 아주 나중에”와 낙서천국
  • 오시영
  • 승인 2014.03.28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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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필자의 미발표 졸시 “나중에, 아주 나중에”를 본다. “페루 리마에 가면/ 1층 붉은 벽돌집 지붕마다/ 철근뿌리꽃이 피어 있다/ 페루 사막지대를 지날 때도/ 철근뿌리꽃은 집집에 피어/ 백년초 선인장인 양/ 온 몸 가시로/ 하늘 향해 기도하고 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돈 벌어 이층 올릴 때/ 연결고리로 쓰겠다는/ 페루인의 소박한 꿈줄 이다// 철근뿌리꽃 싹둑 잘라/ 깔끔해진 서울 고층건물 사이/ 지하계단을 사람들이/ 무심히 걸어내려 가고 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를 잃은 채/ 오늘에 푹 빠져” (‘나중에, 아주 나중에’ 전문).

현대는 낙서의 시대이다. 낙서는 창조적 인간이 제일 먼저 행하는 예술이다. 하지만 간혹 잘못된 낙서로 인해 혼이 나기도 한다. 어린 아이는 누구나 벽에다 낙서를 한다. 쓸 수 있는 도구만 있으면, 색연필이 되었든 매직 볼펜이 되었든 크레용이 되었든 창조를 꿈꾸는 아이는 방바닥에 낙서를 하고, 벽에 낙서를 한다. 늙어 치매가 와도 인간은 낙서를 한다. 부모가 새 벽지를 바르고 나면 아이는 이를 언제 알았는지 곧바로 벽에다 낙서를 한다. 호시탐탐 낙서를 노리는 아이는 번개 같다. 낙서는 매를 맞으면서 하는 내면의 고백이다. 낙서에는 거짓이 없다. 인간은 사랑할 때도 낙서를 하고 무료할 때도 낙서를 한다. 중요할 때도 낙서를 하고 무의미할 때도 낙서를 한다. 모든 낙서에는 진실이 숨어 있다. 낙서자 내면의 심리가 고백되고 있다. 낙서는 범죄의 결정적 단서가 되기도 하고 심리치료사의 중요한 단초가 되기도 한다. 낙서를 하던 인간이 어느 순간 낙서를 멈추고 정서를 하게 되면 무의식 진실은 자취를 감추고 자기검열에 의한 가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지혜로운 엄마는 아이가 낙서를 시작할 때 한 쪽 벽을 아주 낙서칠판으로 허락하여 아이를 자꾸 낙서토록 하게 하거나, 하얀 백지를 붙여 주며 아이 내면의 자아를 표출하게 한다. 하지만 어리석은 엄마는 아이가 낙서를 하면 회초리를 들어 아이로 하여금 낙서하지 못하도록 얽어매고 작은 도화지 한 장을 던져주며 그 안에다 그림 속 질서를 가르치려 한다. 낙서에서 멀어진 인간도 나중에 늙어 치매에 걸리면 그 어린 시절 낙서했던 본능으로 돌아가 오만천지에 낙서를 한다. 낙서자를 벌하는 자는 인간 내면의 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자연발생적으로 분출되는 본능의 소리를 내지르지 못하게 하는 억압자가 되기도 한다.

페루를 여행하였다. 페루 서민들 집은 대도시가 되었든, 작은 촌락이 되었든 대부분 벽돌집 평평한 지붕이다. 그런데 지붕마다 하나 같이 몇 가닥의 철근들이 기둥자리를 따라 하늘로 뻗혀 있다. 흉물스러워 보이기조차 하여 그 연유를 물었더니 나중에 돈을 벌면 이층집 올릴 때 기초철근을 연결하기 위해 일층을 지을 때 지붕 위로 삐져나온 철근을 자르지 않고 그대로 놓아둔다는 것이었다. 아뿔싸, 여행객에게는 정리정돈이 되지 않아 지저분해 보이거나 건물을 짓다 만 것처럼 무질서해 보이는 철근뿌리였지만, 그것이 페루인들에게는 나중에 돈을 벌어 이층집을 올리겠다는 소망의 뿌리였던 것이다. 설명을 듣고 유심히 관찰하니 어떤 지붕은 철근만 훵그런 지붕도 있지만, 철근뿌리를 잇대어 벽돌을 서너 줄 더 쌓은 지붕, 십여 줄 더 쌓은 지붕, 열 댓 줄 더 쌓은 지붕 등 다양한 높이의 벽돌쌓기가 진행 중인 건물도 많았다. 내 눈에는 마치 지붕이 폭격을 맞은 것처럼 보이는 미완성의 건물들이 모두 일층을 지어 입주한 후 나중에 번 돈으로 한 줄의 벽돌, 두 줄의 벽돌을 꾸준히 쌓아올리는 페루인들의 기도탑이었던 것이다.

페루인들의 철근뿌리꽃을 이해하고서야 비로소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 중의 하나라는 마추픽추를 조금은 이해할 듯싶기도 하였다. 해발 2,057미터의 깊은 산꼭대기에 3,000개가 넘는 계단과 수많은 돌들로 축조된 마추픽추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언제 누가 어떻게 건축한 것인지 모른다고 한다. 오죽하면 신이 하늘에서 내려와 하룻밤 사이에 인간 몰래 지어놓고 올라갔다는 말이 회자되겠는가. 1,500여 년 전에 그 높은 산에 그렇게 무거운 돌을 정교하게 조각하여 2,000여명의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 건축시설을 축조할 수 있었는지, 잉카인들의 건축술은 참으로 놀랍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 돌들을 하나하나 쌓았을 유전자가 페루인에게 지금도 유전되어 일층집을 지으면서 철근뿌리꽃을 남겨 이층집을 짓는 꿈을 꾸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일층 지을 때 썼던 철근을 자르지 않고 이층, 삼층으로 연결 짓는 그들의 소통정신은 오늘 보기에 조금 흉물스럽다고 사정없이 철근을 잘라버리며 이층 지을 때 가서야 다시 고민에 빠지는 우리에 비추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페루의 “나스카문명지”는 마추픽추보다 훨씬 더 신비로웠다. 약 500평방킬로미터의 산악 고원지대에 그려진 수많은 도형들이 좌우대칭의 정확성과 직선의 정확성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던 것이다. 길이 100미터가 넘는 각종 동물모양의 그림을 비롯하여 수많은 도형 등을 보면서 1,500여 년 전 인간들이 어떻게 이렇게 정확한 기하학적 도형들을 이처럼 크고 길게 그려낼 수 있었는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항공기 위에서 내려다보자니 비로소 도형의 모습이 제대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도형들을 무슨 연유로 나스카인들이 1,500여 년 전에 이 고지대에 그렸는지는 수수께끼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렇게 500평방킬로미터나 되는 어마어마한 넓이의 대자연 위에 상상 속의 우주인 모습의 이티라든지, 원숭이, 불새, 거미 등의 동물 모습이라든지, 산을 깎아 만든 수 킬로에 이르는 직선 활주로 모양이라든지, 좌우 대칭 및 직선 등이 거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수많은 기형적 도형들을 보면서 여행객인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도대체 그들 문명의 깊이와 넓이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단 말인가.

페루의 면적은 남한의 열세 배에 이른다. 인구는 불과 3천만 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땅덩어리는 열세 배나 넓으니 우리에 비해 실질적으로는 이십 배 이상의 공간면적을 가진 국가이다. 해안 길이만 3천 킬로미터가 넘는다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대자연의 공간 위에 나스카 도형 및 라인을 그리며 대자연에 낙서를 즐겨했던 그들 조상 때문인지 페루의 대부분 건물 벽에는 낙서가 난무하고 있다. 중남미 대부분 국가들이 보이는 공통점인데, 청소년들이 그렇게들 벽에다 낙서를 한다는 것이다. 건물주가 깨끗하게 페인트를 칠해 놓으면 청소년들이 그날 밤에 습격(?)하여 스프레이 등으로 수많은 낙서를 하고 도망(?)을 가는 바람에 건물주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 도시 전체가 낙서를 방치한다는 것이다. 낯선 여행객인 나로서는 수많은 벽과 깨끗한 건물에 그렇게 난잡하게 낙서를 해대는 그들의 문화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찌 보면 그들의 유전자 속에는 마추픽추를 지었던 선조들의 한층벽돌쌓기와 나스카라인과 도형을 그렸던 선조들의 낙서습관이 지금까지 면면히 흘러 여전히 그렇게 낙서를 즐겨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였다. 낙서를 통한 삶의 일탈이 자유로움의 경지를 넓혀주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때 아닌 낙서범 색출작업이 한창이다. 광주시 동구 금남로에 소재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사 현장 외벽과 5·18 아카이브센터 공사장 등 12곳에 붉은 색 스프레이로 ‘박근혜 정권 물러나라’, ‘한국엔 자유의 적이 있다. 그 이름은 종박주의자’, ‘12·19 부정선거 박근혜 처단하라’ 등의 내용을 낙서한 범인을 찾아내 건물주에 대한 재물손괴죄나 대통령에 대한 모욕 및 명예훼손죄 또는 국가보안법 위반(이 부분은 철회한다고 한 모양이다)으로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첩보를 통해 용의자가 기초생활수급증 소지자임을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신원을 특정하기 위해 광주 지역 기초생활수급자 3,800여명의 명단과 사진제공을 담당공무원에게 요청한 경찰에 대하여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인권침해라며 투망식 수사에 대한 반발이 심한 모양이다. 벽에 낙서한 것을 지나치게 침소봉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여론이 거세지만, 경찰이 범인을 반드시 잡아 처벌할 모양이니 어찌 보면 대통령에 대한 과잉충성의 발로가 아니겠는가 싶어 씁쓸해지기도 한다.

인터넷 댓글은 현대판 낙서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낙서천국이다. 페루 등 중남미는 보이는 건물 외벽에 낙서하여 도시 전체를 낙서천국으로 만들었지만, 한국은 인터넷 댓글을 통해 낙서천국을 만들었다 할 수 있다. 낙서가 난무하는 곳에는 창조와 무질서가 공존한다. 어린 아이의 낙서는 창조의 시발점이고 인성 발전의 출발점이지만, 인터넷 악성 댓글은 사람을 죽이고 인성을 황폐케 하는 저주의 지옥이다. 조선시대에도 벽서라고 하여 수시로 낙서사건이 발생하였다. 벽서가 원인이 되어 1547년 조선 명종 때에 정미사화가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죽기도 하였고, 1604년 선조 때에 정언선 등의 유생이 재상과 환관들의 비위사실을 폭로한 벽서를 써 붙였지만 선조가 “불명한 죄상으로 유생을 처벌할 수 없다.”고 하여 너그러이 불문에 부쳐 모두가 산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벽서는 더 이상 언로가 소통되지 않을 때 마지막 수단으로 벽서를 통해 의견을 공포함으로써 공론의 장을 만들고자 함에 있다 하겠다.

낙서란 그런 것이다. 웃고 말아버리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지만, 죽자 살자 달려들면 사람 목숨을 날아가게도 한다. 검찰은 지난 대선 때 인터넷 댓글질로 악명 높았던 좌익효수라는 필명의 국정원 직원을 형사처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의 댓글 내용은 좌익효수라는 닉네임에 맞게 살벌할 뿐만 아니라 성폭력,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비하의 정도가 너무 악랄해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었다. 국정원 직원이 아니라 발뺌하던 국정원도 결국 그가 국정원 직원임이 밝혀지자 상투적 면피수법인 개인적 일탈일 뿐이라며 한 발 물러서고야 말았다. 앞의 광주 지역 낙서범의 낙서형태는 일종의 벽서라 할 수 있다. 벽서가 나타났다는 것은 낙서장이의 분노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무언가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픈 충동이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낙서에 대해 죽자 살자 달려드는 경찰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아이들의 낙서에는 귀여운 동물도 나오고, 하늘 향해 손들고 있는 천진난만함과 밝음이 있다. 페루인들의 낙서 속에는 나스카라인을 그렸던 선조들의 영혼과 규격화된 도시건물에 대한 자유분방한 반항이 숨어 있다. 한국인의 인터넷 댓글 속에는 어느 쪽이 되었든 살의에 가까운 적개심과 분노와 저주가 비수처럼 번뜩이고 있다. 참으로 슬픈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부터인지 철근뿌리의 “나중에” 대한 소망이 상실되어 버린 대한민국, 낙서의 천진난만함이 사라지고 누군가에 대한 저주와 분노만이 표출되는 인터넷 댓글 낙서장을 지켜보며, 당신들도 한 번쯤 페루, 저 지구 반대쪽에 가서 마추픽추와 나스카라인을 구경해 보고 오라고 하고 싶다. 저 역사 속의 신비로움 앞에 당신의 악의에 찬 낙서질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아느냐고 일층 지붕 위 철근뿌리로 등 한 번 콕 찔러주고 싶다, 약간 아플 정도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낙서가 그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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