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집단자살과 중·고령 저임금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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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집단자살과 중·고령 저임금현상
  • 오시영
  • 승인 2014.03.2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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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시도 때도 없이 전국 곳곳에서 자살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매년 15,000명 이상이 자살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올해에는 20,000명이 넘어서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밀려든다. 자살 원인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경제적 빈곤으로, 명예의 흠집으로, 사랑의 실패로, 정신적 질환으로, 조직과 상급자의 견딜 수 없는 가해와 폭력으로, 가정의 불화로 등등 원인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자살 원인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경제적 빈곤으로 인한 자살이라는 점은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국가의 존재이유는 무엇일까?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걷고, 국민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하여 노동력을 걷는다. 그 대가로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국가가 국민을 정당하게 보호하지 못하면 그 국가는 폭력조직일 뿐 더 이상 국가다운 국가라 불릴 수 없다.

대한민국헌법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최고의 천부적 기본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모든 국민에게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국가가 그러한 국민의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학문적으로 “프로그램적 권리”로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실질적 권리”로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다시 말해 선언적 권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가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 가치는 될지 몰라도 국가가 이에 대해 국가가 현실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의무까지는 없다고 할 것인지, 아니면 현실적인 책임까지 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인지에 대한 학문적 논쟁이다. 그렇지만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을 받는 대부분의 인권관련 법률들은 그 위헌 법조항이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위헌결정이 내려지는 것을 보면 헌법상 국민의 행복추구권은 관념적인 권리에 불과하다거나 프로그램적 선언적 권리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힘을 잃은 것이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 국가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현실적 권리로 인정하고 관련 법률을 제정하고 집행할 의무를 져야 한다는 것이고, 만일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직무유기가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며칠 전 미국에서 지인을 만나 저녁식사를 함께 하였다. 이민 온 지 30여년이 지났다는 60대 후반의 그 분은 매월 3천불 정도의 연금을 받는다며 노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면서 자동차부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30여년 넘게 근무하였는데 아직도 힘든 현장근무를 하면서 고액의 월급을 받는다며 자신의 직업을 설명하였다. 정년이 없는 그 회사에서 60대 후반이지만 건강하기만 하면 원할 경우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금을 받으면서 월급도 받아 이중 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연금수령 나이가 되면 직장을 그만 두고 노후를 즐기는 삶을 택할 수도 있고, 자신처럼 건강하게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계속 직장에 다니면서 연금도 타고 월급도 타는 이중소득을 올리는 삶을 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오정이 일상화되어버린 한국의 실정에 비추어 진짜 딴 나라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분이 미국 사는 몇몇 한국이민자분들을 모시고 나로부터 고국소식을 듣고 싶다며 집으로 초대를 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모두들 살아가는 모습이 연금을 받아 산다는 것이었고, 우리나라 모든 이들이 꿈꾸는 바람직한 노후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일부 중에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겠지만, 전체적인 삶의 모습이 폐지나 빈 병을 주우러 다녀야 한다거나 쪽방에 홀로 버려진 채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사는 그러한 궁핍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왜 이 나라에서 가능한 것이 한국에서는 불가능할까?

한국노동연구원은 얼마 전 “중·고령 저임금근로 현황과 특성”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저임금근로자 비율이 25.1%에 달하여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OECD 평균인 16.1%에 비추어 1.6배 정도 저임금근로자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저임금의 기준은 전일제 중간임금근로자의 임금에 비추어 3분의 2 이하의 임금을 받는 근로자를 말한다. 한편 동 보고서는 특히 심각한 문제는 다른 나라와 달리 고령임금근로자의 저임금현상이 “우리나라에만 발생하는 특이한 상황”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동 보고서는 2005년을 기준으로 20대 - 60대 이상의 저임금근로자 비율을 비교하고 있는데, 미국은 연령대별로 37.2%, 19.2%, 17.2%, 16.4%, 28.1%인데 비하여 우리나라는 26%, 16.8%, 24.5%, 34.6%, 65.8%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 보고서를 분석하자면 미국은 직장을 잡는 초기인 20대 때에는 다소 저임금근로자가 높게 나타나지만 안정기인 30대부터 50대까지는 10%대로 감소하여 소득이 점차 높아졌다가 은퇴시기인 60대 때 28.1%로 조금 소득수준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30대 때를 빼고는 전연령층에서 저소득임금근로자의 비율이 미국에 비해 월등히 높을 뿐만 아니라, 특히 50대 때에 이르면 34.6%에 달해 16.4%인 미국에 비해 두 배 가량으로 높아졌다가, 60대 때에 이르러서는 65.8%에 달해 28.1%인 미국에 비해 무려 2.3배 이상에 달할 정도로 급격하게 소득수준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50대 때부터 실직자가 급격히 증가하여 비정규직이나 일용직 등 저소득임금계층으로 추락하기 시작하여 60대에 이르러서는 세 명 중 두 명꼴로 저소득임금자로 전락하여 노후가 가난해져 버린다는 것이다. 50대와 60대는 인생에서 가장 많은 지출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그런데 소득은 가장 낮아지는 조기노령화사회는 분명 문제가 많다. 그런데도 수많은 국가기관을 비롯해서 대기업,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노령자를 문전박대하는 사회고용정책이 일상화되고 있는 대한민국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고, 고용정책에서도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하는 심각한 상황에 도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위 비교자료인 2005년도보다 사회양극화가 훨씬 심각해져 있는 2014년 현재의 대한민국은 위 보고서의 조사통계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에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겠다.

대한민국 경제의 최대문제점은 “소비자의 고갈현상”이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자본주의시장경제의 가장 기본적 틀은 “수요와 공급의 합리적 일치”를 신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이어져서, 그 합리적 교차점에서 시장가격이 형성되고, 그 시장가격이 일치하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공개시장이 이루어지고, 그 속에서 서로 이익의 합치점이 나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시장경제는 수요와 공급이 상호간에 업그레이드되면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감세정책”을 추구하는 레이거노믹스의 등장과 “낙수이론”에 근거한 신자유주의경제론자들이 등장하면서 “수요와 공급의 일치”는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수요의 고갈과 공급의 과잉현상”이 자본주의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감세정책이나 낙수이론은 모두 자본시장을 주무르는 거대기업들을 위한 경제이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거대기업들의 세금을 깎아주면 그 감면받은 돈으로 기업들이 재투자하여 고용을 늘려 경제를 활성화시킨다거나, 잘 나가는 거대기업을 지원하여 그 거대기업에 돈이 넘쳐나게 되면 마치 큰 그릇에 물이 넘치면 그 물이 아래로 흘러가듯 대기업의 여윳돈이 서민의 호주머니로 흘러들어가 서민들의 경제를 윤택하게 해 줄 것이라는 것이다.

비속어를 써서 미안하지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저런 그럴 듯한 감언이설은 “후라이 공갈”이다. 돈 가진 자와 돈맛을 아는 경제학자들이 한통속이 되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돈이 많은 사람은 두 가지 유형으로 갈린다. 하나는 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돈을 어딘가에 투자해 절대파이를 늘리거나, 아니면 내 배 부르고 등 따뜻하니 그냥 놀고 먹자를 택하거나. 그런데 지금 500조 원 이상의 사내여유자금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들은 후자를 택하여 그냥 돈놀이를 하고 있을 뿐이다. 주식투기가 되었든 고리대업이 되었든 그냥 돈이 돈을 버는 돈장사를 할 뿐인 것이다. 신자유주의경제학자들이 내세우는 그럴 듯한 레이거노믹스나 낙수효과이론을 따르지 않고, “아, 나는 돈이 많아. 편하게 살 거야.”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고용이 창출되지 않는다.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는데 근로하겠다는 지원자는 많으니, 당연히 기존 고용시장의 임금까지 낮아지고 있다. 기계자동화를 앞세워 근로자를 오히려 해고하여 근로자 수를 줄이고 있다. 넘쳐나는 인력시장에서 근로자들끼리 서로 하루 일거리를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으니 임금수준이 더 낮아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가진 자들은 이를 악용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악순환이 이제 순환마저 불가능한 꼭지점이나 극저점에 도달해 버린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근로자의 근로를 쥐어짜 고혈을 빨아 마신 결과 “수요와 공급의 일치”가 아닌 “수요의 고갈과 공급의 과잉현상”이 일상화되다 보니 이제 주머니가 텅텅 비어버린 소비자들이 기업의 공급제품을 소비할 수 없는 여력이 상실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가장 큰 상품인 부동산시장이 제일 먼저 붕괴되어 부동산매매가 중단되고 그 여파로 전세대란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행히 고소득층의 고급재 소비가 그나마 경제를 버티어 주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르고, 그 사이 저임금근로자는 더욱 돈줄이 고갈되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국민들이 양산되고, 가장 하층에 있는 불쌍한 이들이 스스로 집단자살의 길을 택하는 사회현상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휴우......” 나도 모르게 이 글을 쓰며 한숨이 나온다. 미국의 사회안전망은 노후를 여유롭게 인간으로 살게 하는데, 한국의 사회안전망은 노후를 불안케 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지 못하게 하니, 저렇게 자살이라는 극단의 길을 선택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까워지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이제 부동산보다 낮은 단가인 생필품에 대한 공급을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다. 이제는 “Man to Man”의 사회복지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고, 정치가 그 일을 하여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 국회의원 중 얼마나 많은 이가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중고령저임금근로현황과 특성”이라는 보고서에 관심 어린 눈길을 주었을까? 모두들 6ㆍ4지방선거에만 정신이 팔려, 염불 아닌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다 정신들이 훼까닥한 것은 아닐까?

경제적인 문제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마음속으로 정치인들을 향해 “야, 이 놈들아, 정치 좀 잘 해 나 같은 사람 좀 살려줄 수 없냐?” 하고 절규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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