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새내기 법학도의 희망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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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새내기 법학도의 희망 찾기
  • 성낙인
  • 승인 2014.03.0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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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서울대 법대 헌법학 교수

긴 겨울잠을 깨고 이제 개학이다. 캠퍼스에는 떠나는 이들에 대한 아쉬움과 새내기들의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어두운 경제사정 때문인지 떠나는 이들이나 새내기나 다 같이 그리 밝은 표정이 아니다. 떠나는 이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하여 사회가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새내기들까지 그 불안을 떠안고 출발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새내기들의 밝고 희망에 찬 모습들이 대학에 자유와 평화를 알리는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

학부 신입생들은 그야말로 ‘프레쉬 맨’이다. 질곡의 수험생활을 끝내고 이제 대학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대학에서 향유하는 자유의 공기는 때로는 형식이 실질을 지배할 수도 있고, 때로는 실질이 형식을 압도할 수 있다는 명제에 충실해야 한다. 대학이라는 학문적 공동체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그 지식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해 낼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대입 수험생이라는 속박의 틀을 벗어났다고 해서 그것이 곧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자유가 자칫 방종으로 치달으면 오히려 속박이나 예속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법학은 학문의 특성상 인간의 삶 모든 측면과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따라서 신입생 때 무엇이 인간의 삶인가? 무엇이 바람직한 삶인가? 삶의 목적과 방향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통해서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지식인으로서의 성체를 쌓아 올려야 한다. 그래야만 향후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미래의 자신을 일궈 나갈 수 있다. 그것이 법학적 소양의 토대위에 사회과학도들이 널리 진출하고자 하는 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법률전문가가 되기 위해 법학전문대학원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택과 그 선택의 성공 여부는 이제 그대들의 몫이다.

로스쿨 입학생들의 새 출발은 더욱 갈등적인 상황이다. 법학전문대학원은 이미 미국식의 school 용어를 차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전문적인 직업교육의 특성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스쿨이라고 해서 직업교육으로만 이해해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적 로스쿨은 미국식 로스쿨과 그 지향점이 반드시 동일할 수는 없다.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 자격시험은 하나의 외관으로서 그쳐야 하는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그 때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시작된다. 로스쿨의 특성상 절대다수가 실무 법률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로스쿨 3년을 통해서 전문법률가가 양성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욱 심화된 이론과 실무를 통해서 보다 완성된 법률가로서 재탄생돼야 한다.

이제 한 법률가가 법의 모든 영역에서 만물박사가 되는 시대는 끝났다.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개발해야 한다.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비즈니스에 중점을 둘 경우에도 그 영역은 천차만상이다. 국내 비즈니스에 안주할 수도 있지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명제처럼 국제관계 내지 해외관계 업무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국제관계에서는 전 세계 유수의 로이어들과 치열한 경연의 장이 펼쳐진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법률가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알려야 한다. 예컨대 서울대 법대의 신희택 교수, 장승화 교수, 태평양의 김갑유 변호사 같은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국제거래, 국제분쟁, 국제중재의 대가로 자리 잡아 이들 영역에 관한 한 이미 경제대국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다들 이 분들처럼 성공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 분들이 한국인으로서 쌓아올린 소중한 업적들은 후학들에게 소금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개학 이후 갑자기 차지는 봄기운은 법학도들의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는 듯하다. 지난 2월 온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친 소치 동계 올림픽이 열린 러시아는 문호들의 보고이다. 일찍이 러시아의 대시인 알렉산드르 푸쉬킨은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올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우울한 날들을 견디고 믿어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라고 음유했지 않았는가? 다가올 세계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설계하는 자들의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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