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32 / 수익과 직업윤리, 병행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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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32 / 수익과 직업윤리, 병행 가능한가?
  • 이용훈 감정평가사
  • 승인 2014.03.0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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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살고 있는 아파트 주변이 쾌적한데 비해 편익시설은 열악해 살짝 아쉬움이 있었다. 얼마 전 정문 앞 쪽 공터에 뚝딱뚝딱 상가 건물이 하나 들어섰다. 그 흔한 병원, 식당 건물 하나 없던 터에 괜찮은 근린생활시설을 기대하고 있었건만 기대는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어림잡아 상가 10개호 들어올 만한 곳에 1~2층 통째로 중고가구센터가 입점한 것. 그 목 좋은 곳에 소매점이 들어서야 남는 장사건만 물정 모르는 건축주 같았다. 출퇴근 때마다 시야에 들어오는 건물을 보며 건축주 타박에 열 올리다 최근 상가 입구에 떡하니 붙은 신선한 문구를 접하게 됐다. ‘최고가 매입, 최저가 판매’

병행, 양립. 이것도 하고 저것도 놓치지 말아야 할 때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그렇지만 방금 소개한 중고가구센터처럼 중고가구 살 때 최고 대접을 해 주고 팔 때는 떨이수준이라는 건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다. 손해 보고 판다는 장사치의 사탕발림 흥정붙임 아닌가. 쉼표 위치에 가림 막 치면 최선의 선택인데 연결시켜 조합하면 부자연스러운 문구쯤 돼 보인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 농작물 보상과 농업손실보상이 양립한다는 표현에서 등장하는 ‘병행’, ‘양립’의 단어가 전문자격자의 하나인 감정평가사에게 통용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병행, 양립의 대상은 ‘수익’과 ‘직업윤리’. 쉽게 말해 돈 잘 버는 것과 전문직의 양심을 지키는 것은 나란히 세우기에 버겁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회계법인의 감사 문제가 심심치 않게 기사화되는 걸 본다. 분식회계 연루 의혹이나 손실 과다 계상 등의 문제로 국내 굴지의 대형 회계 법인이 곤혹스러워 한다는 것. 금융당국이 회계 법인의 감사 과정을 수시로 검사해 대형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감독·관리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란다. 최근 회계법인의 기업 감사가 부실하다는 비판에 따른 대책 성격이 짙어 보인다. 그렇지만 회계 감사 주체가 처한 상황도 딜레마다. 대기업 회계 감사 비용으로 연 수 억 원을 벌게 해 주는 발주자의 치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만 하는 현실이 그렇다. 

보상평가에서의 소유자추천제 역시 양날의 검이다. 제도 자체는 얼마나 좋은가. 소유자 입장에서는 강제로 땅을 빼앗은 주체가 선정한 감정평가사의 보상평가금액이 헐값이 아닐까 의혹을 품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위압적인 검사 역할로 보이는 사업시행자에 맞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변호인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소유자가 추천한 감정평가사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취지야 이렇듯 좋지만 여태까지의 운용은 심히 실망스럽다. 주관식 답안지 채점자가 합격문턱 이쪽저쪽에 걸쳐 있는 답안지에 합격 커트라인 50점을 줄 지 간발의 탈락점수 49.5점을 줄 지 고민하는 정도에서 그쳤다면 뭐가 문제겠는가. 쌍방 과실 접촉사고에서 과실 책임을 40:60 또는 50:50으로 인정하기 위한 양 보험사의 줄다리기 정도면 괜찮다. 그러나 소유자 추천 평가사는 훨씬 난감하다. 추천권을 가진 소유자는 실질적인 평가수수료 지급 주체이자 고가 보상평가를 요구하는 발주자다. 요즘은 한 술 더 떠 소유자 추천 감정평가사 면접을 보는 대책위원회 사무소가 있다 하니, 돈과 양심을 다 챙기겠다는 건 중고가구센터 광고문구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우리들 아버지 역시 병행, 양립의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이었음을 발견한다.  평범한 가장이, 능력 있는 남편과 가정적인 아버지의 역할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 얼마나 부대꼈을까. 요즘 젊은 감정평가사가 업무 수주의 치열한 현장에 들어서면서 겪게 될 난감한 입장을 생각하면 맘이 짠하다. 기존 점유자로부터 업무를 떼어먹는 데 그저 열심 하나로 족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들의 간을 보는 발주자의 탐욕과 젊은 평가사의 다급함이 조합하면 ‘수익’과 ‘양심’의 양립 가능성을 현저하게 낮춘다. 이런 현실을 당장 획기적으로 개선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절충안이라도 제시하고 싶다.

감정평가사가 자신의 치부를 자진해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외부에서는 전문 자격자의 치부가 선명하게 보이진 않는다. 그러니, 또 다른 평가자의 검토를 거치게 하되 검토자에도 책임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재무건전성을 개선해야 하는 다급한 상장 기업의 사정에 붙들려 다소 무리하게 평가한 보고서가 있다면 곧바로 재무상태표에 반영하지 말고 연륜, 도덕성, 전문성 면에서 두루 칭송을 듣는 심사 평가자로부터 재차 검토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간헐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부실 채권이 된 담보부채권의 목적물에 대한 검토보고, 외국에 상장된 기업의 자산재평가 보고서에 대한 제3기관의 검토보고서 용역이 이것이다. 다만, 검토보고서 작성 수행자에게도 철저히 막중한 책임을 부가해야 한다. 또 다른 전문가가 적용 자료의 신빙성, 산출과정의 합리성, 평가 결과의 적정성 여부에 대해 독립적인 감사 기관이 되는 것이다. 수수료는 원 평가 수수료의 10~20%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100% 수수료에 위험을 감수하는 평가사와 10% 수수료에 남의 빚보증 서는 검토자는 입장이 확연히 다르지 않은가. 평가업계는 수수료 시장이 확대되는 효과가 있다. 의뢰자와 평가 결과의 신뢰성이 필요한 제 3자는 소액의 보험료로 전세금 떼일 염려를 줄일 수 있다.

‘수익’과 ‘직업윤리’는 어깨동무 하며 걷기 힘들다. 이를 양립시키려는 자는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는 곡예사가 되어야 함을 직시해야 한다. 여전히 유리천정인 우리 사회에서 성공하려는 커리어우먼이 가정과 직장 모두에서의 치열한 삶을 외면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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