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한 마리 학과 꽃이었던 김연아,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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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한 마리 학과 꽃이었던 김연아, 그녀
  • 오시영
  • 승인 2014.02.2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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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우리에게 시간은 언제나 찾아온다. 어쩌면 우리가 시간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시간이 언제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존재하는 시간 속에서 그 어떤 시간을 우리가 맞이할 수 있음은 축복이리라. 피겨스케이터 김연아 선수는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안겨준 고마운 이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선물하였다. 삶에 찌들고 아름다운 세상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순간이나마 아름다운 행복감을 안겨주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 어떤 시간, 그녀와 같이 할 수 있었던 우리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어쩌면 죽는 날까지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 비오는 창가에 앉아 음악을 들을 때, 가을햇살 들이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나 눈 내리는 겨울산사에서 따끈한 차를 마시며 그녀의 이 날을 꺼내어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장의 그녀는 한 마리 고고한 학이었고, 무념무상의 나비였고, 창공을 가로지르는 위용의 독수리였다. 경기가 펼쳐지는 그 짧은 순간 그녀는 현장에서 또는 티브이중계를 통해 그녀를 지켜보는 수많은 세계인들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압도했고 긴장케 했다. 그녀의 눈짓, 손짓, 발짓, 입가의 미소가 그대로 보는 이에게 전달되었고 그녀의 춤사위가 끝나자 모두 함께 탄성을 자아내었다. 그리고 다들 행복해져서 쉬지 않고 감동의 박수를 보냈다. 앞으로 그녀의 은반 위 춤사위를 떠올리려면 눈을 감아야 하고 귀를 열어야 할 모양이다.

그녀가 스케이트장의 한가운데에 정지한 순간 아르헨티나 출신 작곡가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아디오스 노니노(안녕, 할아버지)”가 반도네온 연주로 흐르고, 장내는 쥐 죽은 듯 정적에 잠겼다. 피아졸라는, 뜨거운 정열의 춤곡 탱고 선율에 자신을 각별히도 사랑했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잘 녹여내고 있다. 저 곡을 작곡해 자신의 아들과 함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들었을까? 선천적으로 오른쪽 다리가 뒤틀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피아졸라는 아버지로부터 여덟 살 생일선물로 받은 악기 반도네온을 가지고 놀면서 악기에 친하게 되었고, 그 후 세계적인 반도네온 연주자 겸 작곡가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까지 하류층 음악으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던 탱고를 춤곡에서 “감상을 위한 음악”으로 발전시켜 당당히 음악의 한 장르로 편입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는 탱고의 대가이다. 아디오스 노니노의 도입부에 흘러나오는 전자피아노 소리 같기도 하고 아코디언 소리 같기도 한 것이 바로 반도네온 연주음이다. 반도네온은 주로 탱고 연주에 사용되는데 무언가 애잔하면서도 뜨거운 느낌의 연주음을 만들어 낸다. 일반적으로 탱고 하면 왠지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 옷의 무희와 함께 격렬한 사랑의 몸짓이 연상된다. 하지만 아디오스 노니노를 듣다 보면 차분함과 열정이 적절히 분배되어 있어 희노애락이 함께 느껴져 온다.

김연아, 그녀는 피아졸라의 아디오스 노니노에 맞춰 피아졸라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주려는 듯 은반 위를 춤추기 시작했다. 어쩌면 선천적 장애로 탱고 음을 그리도 많이 연주하고 작곡하였으면서도 탱고를 직접 몸으로 추지 못했던 피아졸라의 한을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김연아, 그녀는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난 공주이듯 우아한 몸짓으로 한 마리 학처럼 은반 위를 구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는 “내게 탱고는 발보다 귀를 위한 음악”이라고 말했다는 피아졸라를 향해 “아니에요, 당신의 탱고는 귀를 위한 음악에 머물지 않고 많은 이들의 눈을 위한 음악이 되었어요, 나를 한 마리 학으로, 나비로 만들어요.”라고 속삭이는 듯 했다.

그녀가 햇살을 향해 화살처럼 빙판 위를 솟구쳐 오르며 트리플 러츠 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을 성공시킬 때 우리도 함께 그녀를 따라 허공을 향해 솟아올랐다. 그녀가 발 끝에 힘을 주는 순간점프력으로 허공에서 삼 회전을 연속으로 펼쳐 보일 때 그녀는 진정 한 마리 나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을 끌어당기는 지구의 중력을 무시하듯 빙판 위를 솟구쳐 올라 지구의 자전속도보다 더 빠른 느낌으로 회전하는 그녀는 중력의 법칙을 벗어난 우주 속의 신비로운 꽃이었다. 그녀가 솟구쳐 오를 때 스케이트 날에 깎여 그녀의 발밑에서 반짝거리며 함께 비상하는 저 많은 은빛 얼음조각들은 또 얼마나 황홀한 아름다움인지? 그녀의 착지 동작 속에 들려오는 얼음 가르는 소리에 우리 모두 지구 전체의 무게를 묵중함과 가벼움으로 동시에 느끼지 않았던가? 그녀의 플라잉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에 이르면 마치 송곳처럼 빙판을 뚫고 들어가려는 듯한 그녀의 화려한 회전 앞에 스스로 바람이 되어 돌고 도는 바람개비를 보게 되지 않던가? 마치 연꽃 속 심청을 보는 듯 하지 않던가?

러츠가 되었든 토루프가 되었던, 악셀이 되었든 살코가 되었든 그녀의 동작은 완벽했고, 그러한 동작하나하나를 연결하여 펼쳐 보이는 연기는 피아졸라의 음악에 완전 녹아들어 있었다. 그러한 아름다운 동작 하나하나가 다른 피겨스케이터들의 설익은 실력에 비추어 볼 때 상대적으로 아름답게 돋보였고, 그러한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우리는 모두 그 순간 행복하였다. 

스케이트장, 그 빙판 좁은 공간에서 그녀는 얼음 위를 지쳤고, 얼음 위를 날았다. 얼음 위에서 그녀는 두려움이 없었고, 거침이 없었고, 망설임이 없었다. 오히려 얼음 위의 그녀는 능수능란했고, 편안했으며 아름다웠다. 학처럼 고고했다가 나비처럼 가벼웠으며, 독수리처럼 날카로웠다가 누군가를 사모하는 애절한 여인이 되기도 하였다. 모든 서 있는 자들을 주눅 들게 하는 얼음판, 우리 모두는 오늘도 얼음판 위를 걷는 아이처럼 하루하루 미끄러지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피겨의 여제라는 애칭대로 그녀는 그 얼음판 위에서 인생을 즐겼고, 보는 이들에게 기쁨과 아름다움을 선물했다.

올림픽 은메달을 딴 그녀, 금메달을 딴 러시아의 소트니코바 선수에 대한 심판판정의혹을 제기하는 수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메달에 연연하지 않고 예정했던 대로 은퇴를 선언하였다. “더 간절히 금메달을 원했던 사람에게 주었다고 치자.”는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최고인 자의 여유를 본다. 하지만 그녀는 20년 가까운 얼음 위에서의 피눈물과 땀방울에 대해 경기를 마친 후 남몰래 혼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최고에 오른 자가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오며 흘리는 그 눈물은 또 다시 우리를 감동케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칭찬의 눈물을 흘리는 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오직 실력으로 평가한다는 올림픽경기에서도 채점을 둘러싸고 불공정한 판정이 개입되었다는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쿠베르탱 남작은 1896년 근대 올림픽 경기를 재개하며 “올림픽의 진정한 가치는 승리가 아닌 참가”에 있다고 밝혔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힘차게!”의 올림픽 정신은 체육을 통해 국가 명예를 드높이겠다는 정치가들과 체육계 관련자들의 불순한 목적으로 인해 퇴색되고 있다. 그렇지만 올림픽 경기 속에 설령 부정과 불의가 있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들은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 의해 또 다시 정당하게 평가되고 그 실력이 검증되고 있다. 모든 것이 타락해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그래도 올림픽만큼 정당한 평가가 내려지는 곳도 그리 많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은 막을 내렸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가 빅토르 안이 되어 금메달 세 개를 목에 걸었다. 그리고 전문가들이 김연아 선수가 받아야 한다고 평가한 금메달을 러시아의 소트니코바 선수가 가져감으로써 러시아는 금메달을 가장 많이 가져간 나라가 되었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에 올 수도 있었던 네 개의 금메달이 러시아로 갔고, 그 덕으로 러시아는 1위가 되고 우리나라는 13위가 되었다. 쇼트트랙 강국이라고 불리던 우리나라 남자 쇼트트랙팀이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하는 참패를 당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들은 안현수 선수를 비난하기 보다는 그를 이해했다. 그리고 김연아 선수가 빼앗겼다고 생각한 금메달에 대한 이의제소를 해야 된다고 하면서도 차분하다.

1976년 양정모 선수가 올림픽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레슬링에서 땄던 날, 대한민국은 온통 흥분의 도가니였던 때가 있었다. 금메달 하나에 전 국민이 흥분을 했다. 미국에 머물면서 미국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그들이 동계올림픽에 대해 그다지 많은 관심을 표명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국민들처럼 밤을 새워가며 김연아 선수의 중계방송을 시청한다든지 하는 일이 별로 없는 듯했다. 나라가 워낙 커서 그런 것인지, 다른 재미있는 프로경기가 발달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작은 개인적인 일조차도 모든 국민의 관심사가 되어버리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빙속 500미터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딴 이상화 선수의 독보적 속도감, 쇼트트랙 여자 3,000미터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 네 명의 선수들이 보인 협동심과 남자 추발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세 명의 선수들이 보인 일체감, 피겨스케이팅에서 은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의 아름다움이 함께 어우러지는 대한민국이라면 모든 일을 제대로 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김연아 선수의 동영상을 몇 번이고 되돌려보고 피아졸라의 아디오스 노니노를 수없이 들었다. 보면 볼수록 아름다움과 감동의 정도가 깊어간다. 음악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인간이 얼음 위에서 표현해 낼 수 있는 최고의 동작 앞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국민에게 아름다운 감동을 안겨 준 김연아, 은퇴한 그녀의 앞날에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소원한다. 그리고 피겨프리스케이팅에서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완벽한 연기를 펼친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의 한 서린 눈물에도 따뜻한 위로를 보낸다. 땀 흘려 노력하는 모든 이가 제대로 평가받는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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