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간접살인이 넘쳐나는 사회는 개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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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간접살인이 넘쳐나는 사회는 개선되어야 한다.
  • 오시영
  • 승인 2014.02.2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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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2014년 2월, 대한민국은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장과 무척 닮아 있다. 111.12미터의 좁은 쇼트트랙을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돌고 돌아야 하는 스케이터들은 출구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다 승자와 패자로 나뉜다. 누군가는 스스로 미끄러지고, 누군가는 밀려서 넘어지고, 누군가는 앞서 나가다 뒤처지고, 누간가는 뒤쳐져 있다가 앞서 나간다. 500미터, 1,000미터, 1,500미터, 3,000미터, 5,000미터 등 거리에 따라 스케이트를 타는 강약과 속도 조절 등 방법도 각기 다르다. 하지만 모든 거리에서 대부분의 승부는 세 바퀴를 남겨 둔 막판 질주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막판 질주를 가능케 한 중간과정에서의 속도유지를 위한 기술과 그러한 속도유지에 필요한 체력이 바탕이 되어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트랙을 벗어날 수 없는 선수들의 모습을, 약간의 애국심과 흥미로움으로 지켜보다 우리 선수들이 승리하면 환호하다가 그렇지 못하면 한숨을 내쉬기도 하지만 막판에는 마음속에 안타까움 하나만 남는다.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선수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생긴다. 짧으면 40여 초에서부터 길어야 7분에 불과한 저 순간의 한 판 승부를 위해 선수들이 연습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쇼트트랙을 돌고 돌았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면 더욱 안타까워진다. 모두가 승자일수도 모두가 패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연습하는 동안 저렇게 수천, 수만 번을 돌면서 머리가 돌지 않은 것이 오히려 신기하지 않은가?

2006년 토리노올림픽 금메달 3관왕에 올랐던 안현수 선수가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이번 2014년 소치올림픽경기에는 러시아 대표선수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하였다. 대한빙상연맹과의 불협화음과 부상의 후유증 등으로 국가대표선발에서 탈락한 뒤 선수로 계속 활동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던 중 그를 받아준 러시아로 귀화하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그는 그의 새로운 조국 러시아에 쇼트트랙 종목 최초의 금메달과 은메달을 헌사하였다. 쇼트 강국이었던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이 메달 하나 제대로 따지 못한 채 지리멸렬하는 가운데 그의 메달소식이 유독 돋보인다. 대한민국 국민 69%가 그의 러시아로의 귀화를 이해한다는 여론조사가 발표되었다. 실제 경기에서도 한국인 대부분이 빅토로 안의 경기에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고 한다. 동병상린의 마음이 작용한 것일까?

알려진 바에 의하면 빙상연맹의 파벌주의는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일부 임원 등 실력자들이 자신에게 줄을 서지 않으면 아무리 실력이 좋더라도 국가대표로 선발될 수 없도록 방해를 하고(예를 들어 실력이 없는 자기 줄 선수를 시켜 시합 도중 실수한 것처럼 하여 자기 밑으로 줄 서지 않은 선수를 밀어버리거나 진로를 방해하는 등으로 등수에 들지 못하도록 하여 국가대표선발에서 탈락시켜 버리는 방법 등이 사용된다고들 한다),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후에도 시합 당일 컨디션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다른 선수를 앞서 나가게 하면서 눈 밖에 난 선수에게는 다른 국가 선수들의 진로를 방해하는 등의 보조적 임무를 주어 등수에서 배제하는 승부조작까지도 하는 등의 조직적 횡포를 부린다고 한다. 빙상계가 워낙 좁다 보니 선수들이 은퇴한 후에 팀 코치 등 진로모색을 위해서도 실력자 눈에 들지 않으면, 다시 말해 실력자에게 줄을 서지 않으면 선수 은퇴 후에도 진로가 불투명하다 보니 선수와 부모는 실력자들의 조직적 횡포에 끽소리 못하고 복종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적 모순이 어디 빙상연맹에 국한되겠는가? “파벌주의” 하면 대한민국의 대명사로 떠오르는, 거의 모든 국민이 타파해야 한다면서도 오히려 이를 숭상하는 숭고한 가치(?)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말이다.
대한민국에는 지금 살인범들이 넘쳐나고 있다. 교묘한 간접살인의 방식으로 수없이 많은 살인이 자행되고 있다. 살인의 피해자는 넘쳐나는데, 정작 살인범은 찾아낼 수 없는 이 “간접살인범들의 무한폭주현상”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부산외국어대 신입생들이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도중 건물 지붕이 무너져 내려 열 명이 죽고, 수십 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대기업인 코오롱그룹에서 운영하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건물의 천장이 무너져 내린 참사이다. 아비규환의 지옥이 전개되는 그 순간 부모들에게 천금 같았을 아이들이 깔려 죽고 다쳤다.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들의 목숨이 한순간에 스러졌다.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건물붕괴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설계도와 다른 부실건축과 건축 후의 사후관리 미흡 등이 문제점으로 드러나고 있다. 건물주와 건설업자, 행정공무원들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것이다. 설계도대로만 지었더라면 아무리 폭설이 내렸다 하더라도 건물 천장이 붕괴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아까운 청년들이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고, 부모들의 가슴에 슬픔의 대못을 박지는 않았을 것이고, 동료 학우들에게 평생 씻지 못할 트라우마를 안겨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도 엄청난 보상금을 물어주어야 하는 경제적 손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눈앞의 욕심 때문에 빚어진 간접살인범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즉위와 함께 발표한 권고문에서 빈곤의 공포에 대해 정치가들과 가진 자들에 대해 권고하였다. 타인에 대한 존중 결여 속에 불평등이 심화되고, 생존투쟁이 극렬하다 보니 최소한의 인간존엄이 유지되지 못하는 세상은 치유되어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이러한 경제적 리바이어던의 등장을 “새로운 정체모를 권력”이라고 간파하였다. 성경 속 살인의 정의도 새롭게 내렸다.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에 대해 ‘그래서는 안 돼’라고 말해야 하며, 노숙자가 죽었다는 것이 뉴스가 되지 못하고 주가지수가 2포인트 떨어진 것이 뉴스가 되는 것”이 바로 “배제의 사회” 다시 말해 경제적 불평등에 의해 빚어진 간접살인의 사회라고 강조했다. 권고문의 정신이 정의롭지 않은가? 동감하지 않는가?

미국에 몇 개월 체류하면서 깨달은 것은 “미국인들은 절약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처음 마트에 들렸을 때 제일 놀랐던 것은 내가 산 물건마다 플라스틱(비닐)봉투 하나씩에 포장해 준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같으면 비닐봉투에 포장해 줄 때는 봉투값을 따로 받는다. 휴대용시장바구니를 이용하라는 절약정책 때문이다.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은 것을 하나의 봉투에 담아 준다. 그런데 미국에는 그런 것이 없다. 한 번 시장에 가면 수십 장의 비닐봉투를 얻을 수가 있다. 그리고 무거운 물건일 경우에는 봉투를 두 겹 세 겹으로 포장해 준다. 터지면 안 된다는 배려심이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과도한 포장방법에 조금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가 보기에는 모두가 낭비다. 쓰레기도 분류수거라는 것이 없고, 있는 그대로 막 버리다. 넘쳐나는 일회용품과 무한대로 버려지는 음식쓰레기와 물자들을 보면서 미국의 풍요와 함께 세계 최대의 빚쟁이 나라이자 강대국인 미국을 보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 그러면서도 가장 빚이 많은 나라 미국. 문득 1997년 우리나라가 아이엠에프에 처했을 때 최고의 빚쟁이였던 한보그룹이 떠오르고, 기아자동차가 떠오르고, 현대건설이 떠올랐다. 빚을 지려면 왕창 져라. 그러면 빚쟁이인 너는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채권자들이 나중에 빚쟁이인 너에게 돈을 못 받아 망한들 무슨 상관이냐, 너는 잘 먹고 잘 살았는데 말이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계속해서 권고한다. 이러한 배제의 사회는 일자리가 없고, 미래가 없고, 탈출할 수단이 없다. 인간이 쓰고 버려지는 소비재가 되고,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착취하며 살고 있는 사회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배제되고 비참한 존재가 되고 있다. 그들은 일자리도 없고, 미래도 없고, 탈출할 수단도 없다. 그 배제자들은 착취와 억압의 대상에서조차도 배제되어 버리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잊혀지는 잉여의 존재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부에게 경제가 집중되는 이 현상에서 낙수효과 이론을 옹호하는 것은 경제적 지배권력의 선의와 지배적인 경제체제의 신성화 작업에 대한 막연하고 순진한 신뢰를 표현한 것일 뿐이므로 속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탈출구가 없는 세상, 쇼트트랙의 빙판장은 차가운 정글의 세상이다. 용케 안현수는 대한민국의 정글에서 벗어나 러시아의 빅토르 안이 되어 새로운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매달고 하늘을 날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 가난한 배제의 인간들은 여전히 빙판 위 트랙을 돌고 돌 뿐이다. 그러다 용도 폐기되어 배제되는 잉여인간으로 양산될 뿐이다.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운영하는 아프리카박물관의 노동착취에 대해 청와대는 말이 없다. 하루 이틀 순간의 실수는 용서될 수 있다. 하지만 몇 년에 걸쳐 구조적으로 자행된 인간노동력 착취의 악행을 저지른 자가 여전히 입으로 정의를 부르짖으며 간사하게 실실 웃으며 여당의 사무총장으로 앉아 권력을 행사하도록 자리가 보장되는 사회는 분명 문제가 심각하다. 국민정신건강에도 좋지 못하다. 반면교사라는 것이 무엇인가?

탈북자인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에 대한 간첩사건 증거조작사건이 점입가경이다. 국정원이 검찰에 넘겨준 중국출입국확인서가 위조된 것이라는 중국 당국의 공식적인 해명이 나왔다. 이를 둘러싸고 국정원, 검찰, 외교부의 변명이 모두 다르다. 그렇다면 청와대가 나와서 국가기관 상호간의 주장불일치를 정리하는 내부교통정리가 필요하다. 국무총리가 나서서라도 이를 정리하여 국민에게 소상히 밝힐 필요가 있다. 국정원도 대통령의 입이고, 검찰도 대통령의 입이고, 외교부도 대통령의 입이다. 이 모든 기관은 대한민국 국가기관으로 대통령 한 몸의 지체이다. 내 눈이 나이고, 내 입이 나이며, 내 팔이 나이고, 내 심장이 나인 것과 같다. 이렇게 국가기관마다 말이 각각 다르게 나오는 것은 미안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머리가 여러 개로 쪼개져 있기 때문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부르짖으면서도, 국정원 댓글 사건의 수혜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억지궤변, 경제민주화, 대학생반값등록금문제, 노인복지정책, 육아보육정책 등등 대통령선거공약을 거의 파기하면서도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자세,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겠다면서도 실제로는 40%가 넘는 비전문성 인사들을 대통령선거캠프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공공기관 이사나 감사로 임명하는 황당함, 홍문종 사무총장 같이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이를 그대로 사무총장으로 방치하는 것, 조정에 나서야 할 때 나서지 않으면서 나서지 않아야 할 개인적 문제에 집착하는 것 등 모든 게 하나의 방침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것은 쪼개진 생각의 편린들로 생각이 일관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이번 올림픽을 통해 쇼트트랙의 강국이라는 이미지가 깨졌다. 하지만 김연아로 상징되는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자유로운 아름다움의 세계로 나아가는 기회를 얻었다. 이제 간접살인을 예방하는 국가정책이 펼쳐져야 한다. 잉여인간이 넘쳐나는 간접살인의 사회를 그대로 방치하면 나중에 그 잉여인간에 의해 배제에 앞장섰던 자들에 대한 직접살인이 자행될지도 모른다. 쇼트트랙의 정글에서 모두 벗어나 피겨스케이팅의 아름다운 세계로 우리 모두가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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