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노예근로자가 존재하는 대한민국은 거짓말사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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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노예근로자가 존재하는 대한민국은 거짓말사회인가?
  • 오시영
  • 승인 2014.02.1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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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모든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한다. 어찌 보면 이 평등조항이야말로 최고로 불평등한 조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본질적으로 평등하지 못한 인간을 평등하게 대우하겠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헌법교과서는 법 앞의 만인평등에 대해 “절대적 평등이 아닌 상대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하는 것이 평등의 본질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 헌법은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하여 국민의 법 앞의 평등을 넘어 모든 인류의 평등함을 선언하고 있다. 헌법 제10조 제1항에 규정된 위 두 내용은, 전자는 국민의 평등성을, 후자는 인간의 보편적 평등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기에 후자에 의해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인류 모두, 다시 말해 다른 나라 사람이나 무국적 사람조차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 헌법정신이라 할 것이다. 대한민국헌법 체계를 보면 제9조가 가장 천부인권적 권리라고 할 수 있는 “행복추구권”을, 제10조가 “평등권”을, 제11조가 “자유권”을 규정하고 있다. 조문의 순서에 의해 가치를 매긴다면 평등권이 자유권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평등이 자유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국가에 의해 보장받는 인간의 평등권은 “국가의 출현”으로 위협받아 왔다. 거대한 국가조직은 그 속에 보호받고자 존재하는 국민 위에 군림하여 소수 지배권력을 통해 오히려 국민을 억압하거나 차별하는 면이 적잖다. 약 3천여 년 전의 기록인 구약성경 ‘사무엘상(8장)’에 보면 국가탄생과 관련된 좋은 교훈이 기록되어 있다. 왕, 즉 국가라는 조직이 갖추어지기 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시 종교지도자였던 사무엘을 찾아가 이스라엘도 왕(국가)을 세울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자, 사무엘이 백성들을 향해 “만일 너희들이 국가(왕)를 세우게 되면 너희 자식들이 그 왕을 위해 전쟁터에 대신 나가 목숨을 바쳐야 할 것이고, 너희의 수확을 세금으로 내놓아야 할 것이고, 너희 딸들이 궁전에 들어가 몸종처럼 부림을 받을 것이고,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이 끌려가 왕의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너희는 그 날에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리라.”라고 국가와 왕, 즉 권력자들에 의해 빚어질 장차의 폐해를 우려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게 왕, 국가로 인해 울부짖게 될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발적 복종 의지를 모아 국가조직을 만들게 되고 사울을 초대왕으로 받들게 된다.

진정 국가가 국민에게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을 필자는 천만관객을 돌파했던 가짜임금에 대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와 가짜대통령에 관한 영화 “데이브”에서 보았다. 독이 든 음식으로 의식을 잃은 진짜 광해 대신 광대 하선이 임금의 역할을 대신하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선정을 베풂으로써 진짜 왕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애인과의 정사 중 뇌졸중으로 쓰러진 대통령을 대신한 직업소개소 운영자인 데이브가 가짜대통령 역할을 수행하면서 참모진들에 의해 예산 핑계로 집 없는 국민들에게 거처를 제공하는 공공주택공급법안이 거부되자 불요불급한 다른 예산을 삭감하여 이 법안을 되살린 후 진짜에게 자리를 돌려주고 사라진다는 줄거리이다. 진짜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가짜들이 해낸 것이다.

가짜인 그들은 서민이었다. 서민을 가장 잘 아는 이는 바로 서민이다. 머리로 무엇이 필요한가를 계산하기 전에 몸으로 무엇이 필요한가를 느끼는 것이다. 광해군은 당시의 절대강국이었던 명나라에 대한 무조건의 사대를 반대하였다. 그리고 농토를 가진 것만큼 비례해서 세금을 내야한다는 대동법을 시행하였다. 명나라에 사대하며 권력을 잡고, 가진 것만큼 세금을 내지 않아 치부하였던 당시 세도가들은 자신들의 정당성 근거 상실 우려와 추가세금부담에 대한 반항으로 결국 인조반정이라는 쿠데타를 일으킨다. 후궁의 둘째아들로 왕이 되기까지 첩첩산중을 넘어야 했던 광해,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키고자 의병을 모아 일본군에 저항했던 총기 넘치던 광해, 가난한 백성의 세부담을 줄여주고자 부자들의 증세를 도모한 대동법을 시행했던 광해는 곧 가짜임금 하선의 마음과 같았을 것이다. 어찌 보면 가짜임금 광해가 진정한 광해의 모습이고, 포악하고 주지육림에 빠졌던 광해가 가짜일지도 모른다. 아니 가짜와 진짜가 혼재된 그가 바로 광해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항시 선악 가운데 거하며 선한 모습이 되었다가 악한 모습이 되었다가 하는 게 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때 아닌 “노예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소위 신안군 신의도에서 자행된 “염전노예사건”과 포천에서 자행된 “아프리카박물관노예사건”이 그렇다. 전자는 장애인인 노숙자가 직업소개소를 통해 고립된 섬 신의도 염전으로 팔려가 1,800일 가까운 장기간 동안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한 채 가혹한 노동행위에 시달리다가 구출되었다는 것이고, 후자는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운영하는 포천 소재 아프리카박물관에서 아프리카 조각가와 춤꾼들을 불러와 최저임금의 절반 수준 정도의 저임금으로 몇 년 동안 노동력을 착취한 것이 마치 현대판노예제도와 무어 다를 거냐는 사회적 비난이 고조된 사건이다. 한 쪽은 염전을 운영하는, 어찌 보면 일반국민 중의 평범한 서민일 것 같은 이에 의해 노동착취가 벌어졌다는 사실이 어이없고, 다른 한 쪽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사무총장이라는 최고권력자인 현역국회의원이 전근대적인 노동착취자였다는 사실이 어이없는 것이다. 전혀 이질적일 것 같으면서도 먹이사슬처럼 얽혀 있는 갑과 을의 관계가 대한민국 곳곳에 산재되어 있음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 시카고에서 미국인들을 자주 접하면서 깨닫는 사실 하나가 있는데 바로 “미국사회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사회”라는 점이다. 며칠 전 나이 드신 영주권자인 한국 분과 함께 식당엘 갔는데, 나이 드신 분에게는 음식값이 할인되었다. 노인과 어린이를 위한 사회적 배려였다. 직원이 신분증 확인을 하지 않기에 나이 확인을 위해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분 말씀이 여기에서는 거짓말을 거의 안 하기 때문에 그냥 잘 믿는다고 하였다. 거짓말이 들통나면 사회적으로 거짓말쟁이로 소문나 매장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웬만하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경우도 있었다.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시카고 AMC영화관에서 상영되어 혹시 좌석이 없을까 봐 예매를 하고 카드결재를 미리 하였다. 시간 맞춰 영화관에 가서 표를 달라고 했더니 인터넷으로 확인을 하던 담당직원이 내 예매사실이 창에 뜨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수증 등을 챙겨가지 못한 나는 순간 당황하면서 다시 한 번 분명히 예매를 했다라고 설명을 했더니, 그 직원이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그렇다면 걱정하지 마라, 표 없이 들어가서 영화를 볼 수 있게 해 주겠다.”라고 순순히 나를 상영관으로 안내해 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영화를 못 보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으로 강한 주장을 하던 나는 그가 내 말을 믿어주고 순순히 영화관으로 안내해 주는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게 어떠한 신분증 요구도 하지 않은 채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준 그 젊은 친구가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던 것이다. 들어가서 또 놀란 것은 극장 맨 입구에서만 조사를 하지 여섯 개의 상영관 앞에서는 개별적 표검사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같이 영화를 본 한국분이 여기는 아침 일찍 표를 끊어 입장하면 여러 개의 상영관을 돌아다니며 많은 영화를 볼 수도 있다는 한국인다운 친절한 설명을 해주었다. “어, 그것은 무전취식처럼 사기인데요.”라고 대답하며 함께 웃었지만, 만일 한국에서 이렇게 느슨하게 영화관을 운영하면 한국사람 상당수가 여러 편의 영화를 한 장의 입장권으로 볼 것이라는 생각에 괜히 혼자 심각해지기도 하였다.

자기가 구입한 입장권으로는 그 영화만 보고 나올 것이라는 관객에 대한 믿음, 다시 말해 고객이 거짓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운영되고 있는 영화관제도를 보며 거짓말하지 않는 사회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거대한 힘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영화관좌석이 지정좌석제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오는 대로 순서에 따라 좋은 자리에 앉아 보라는 것이다. 예매순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장에 도착한 순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들이지만, 철저하게 질서문화가 익숙해 어느 곳에서나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재미있었다. 한 번은 할인매장에 갔다가 입구부터 길게 줄을 늘어서 있기에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매장 내에 있는 입장객수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입장 자체를 제한한다는 설명에 우리나라 같으면 입구에서 기다리다 지쳐 다른 매장으로 가 버릴까 봐 한 사람이라도 더 들어오게 하려고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현대판노예제도 같은 현상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빚어지는 것은 사회적 문화가 그렇기 때문이다. 돈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웃물에 잘못이 있을 경우 응분의 책임을 지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되면 아랫물도 저절로 맑아질 수밖에 없다. 위에서부터 거짓말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면 응분의 대가를 치른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면 위가 되었든 아래가 되었든 사회 전체가 맑아질 것이다. 정의를 바로세우지 못하는 사회지도층(개인적으로는 이 말을 참 싫어하지만 쓸 수밖에 없어 답답하다)들이 국민에게 끼치는 해악은 참으로 지대하다. 뻔뻔한 거짓말을 늘어놓고도 잘 먹고 잘 사니, 이를 따르는 많은 국민들의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겠는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공직선거법위반에 무죄판결, 천억 원이 넘는 횡령사건 피고인인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구자원 LIG그룹 회장에 대한 국민경제기여도 감안의 집행유예 솜방망이 형사처벌, 뇌물죄로 기소된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 대한 나름대로의 성실한 공직생활을 근거로 한 감형 등은 다른 형사사건에 비추어 볼 때 사법부가 눈 감고 아웅 하듯 거짓판결을 한 것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되어야겠지만, 그 판결과정에 지나치게 정치적 판단이 개입한 것은 아닌지, 대기업과 호화 변호진들에 의한 전관예우가 개입된 것은 아닌지, 같은 고위직 공무원들에 대한 동병상린의 끼리끼리 의식이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 진실은 양심에 반한 거짓판결을 한 것은 아닌지 깊이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나치게 거짓말이 난무하고 있는, 거짓말에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오히려 거짓말을 못하는 이가 조롱거리가 되는 사회는 아닌지 조금씩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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