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하여가와 단심가 사이를 나는 플래피버드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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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하여가와 단심가 사이를 나는 플래피버드 한 마리
  • 오시영
  • 승인 2014.02.0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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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신념은 이념 중 최상위 이념이다. 신념에 사로잡힌 인간은 신념을 위해 죽음조차 불사한다. 하지만 신념 앞에서 인간은 또한 약하다. 자기가 믿는 신념이 아닌 다른 이념 앞에 무력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세상을 살다 보니 도대체 신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근원적 의문에 사로잡힐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좌ㆍ우 이념 대립이 심각한 나라가 세상에 어디 또 있을까 하는 회의에 사로잡히게 되면 도대체 좌란 무엇이고 우란 무엇이란 말인가라는 근본적 질문 앞에서 멍해질 때가 있다. 이방원처럼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가 옳은 것인지, 정몽주처럼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가 옳은 것인지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고려말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와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가 700여년의 세월이 흐른 21세기에도 여전한 대한민국은 참으로 신기한 나라이다. 만수산 드렁 칡과 님 향한 일편단심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다른 가치가 공존하는 대한민국, 역시 이방원의 칼날이 우세한 것이 현실이다. 역성혁명에 성공한 이성계의 조선처럼 단심가만 부르고 있는 정몽주의 고려왕조를 향한 서릿발 같은 기개는 한낱 초토에 불과한 것인가?

최근 필자는 일곱 살짜리 꼬마아이가 즐겨하는 “Flappy Bird”라는 인터넷 게임을 몇 번 따라 해 본 적이 있다. 게임방식은 참새보다 작은 새 한 마리로 하여금 커다란 기둥 사이의 작은 틈새를 날아 통과하도록 하는 단순한 방식이다. 바탕화면을 누르면 새가 날갯짓을 시작하여 그 틈새를 통과하게 되는데, 그 꼬마는 제법 능숙하여 열 몇 개의 기둥을 거뜬히 통과시키기에 필자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한 번 해 볼까?” 하고 아이를 꼬드겨 그 게임을 해봤는데, 보기와 달리 기둥 하나를 제대로 빠져 나가지 못한 채 기둥에 새가 머리를 부딪혀 “깨꼴락” 하고 바닥으로 추락하기 일쑤였다. 약간의 오기가 작동하여 “어, 안 되네!” 하면서 몇 번을 반복해 보았지만 여전히 틈새 세 개를 통과하지 못한 채 계속 기둥에 머리를 부딪혀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처음 몇 번은 웃으며 그 게임을 하였으나 점차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에 심한 통증이 오기 시작하였다. 기둥에 머리를 부딪혀 추락하는 새의 모습에 내 마음이 너무 아프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떤 때는 기둥이 위쪽이 길기도 하고 어느 때는 아래쪽이 길기도 해서 그 변화된 기둥 사이를 빠져 나가야 하는데, 하다 보니 어느 때는 위쪽 기둥에 머리를 부딪혀 떨어지고, 어떤 때는 아래쪽 기둥에 부딪혀 떨어지는 모습이 영락없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날갯짓의 넓이가 약간씩 다르다 보니 어떤 때는 위쪽에, 어떤 때는 아래쪽에 부딪히기를 반복하는 새의 모양이 너무나 무기력하고 살짝만 스쳐도 “깨꼴락”하여 바닥에 “철퍼덕”하고 사정없이 머리를 쳐박는 새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무심코 해본 저 작은 플래피버드게임, 거대한 철벽처럼 앞에 나타난 기둥에 부딪혀 너무나 무기력하게 철퍼덕 추락하는 새의 모양에서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았다면 필자의 지나친 논리비약일까? 저 게임 속의 앙증맞은 새 한 마리가 어떤 때는 위쪽 기둥벽에, 어떤 때는 아래쪽 기둥벽에, 어떤 때는 위쪽 기둥 천장에, 어떤 때는 아래쪽 기둥 바닥에, 어떤 때는 위쪽 기둥 입구 모서리에, 어떤 때는 아래쪽 기둥 출구모서리에 부딪혀 사정없이 추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때는 좌라는 이념에 부딪혀 무너지고, 어떤 때는 우라는 이념에 부딪혀 깨어지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연상되어 통증을 느끼는 내 정신상태가 이상한 것인지, 아니면 이를 전혀 느끼지 않고 잘들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상한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세상을 어느 정도 살다보니 이제는 이방원의 하여가처럼 살아야 하지 않나 하는, 조금은 추상적 가치관을 접고, 현실적이고 타협적인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단심가를 열심히 부르짖은들, 이방원의 칼날 앞에 피 뿌리는 일밖에 더 있겠나 싶고, 저 플래피게임처럼 위에서 짓누르는 기둥의 무게와 아래에서 치받고 올라오는 기둥의 무게에 치여 저 좁은 틈새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발버둥치는 한 마리 새처럼 그냥 서민들은 죽은 듯이 체제에 순응하며 위에서 강한 자가 시킨 대로 하고 맹목적 복종하며 한 목숨 부지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길 때도 있다.

하지만 학자적 양심은 여전히 정몽주의 단심가를 부르게 한다. 하지만 그 단심의 최대 가치는 이제 시대변화에 따라 “왕이 아닌 국가”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단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에 불과하기에, 그 위임자인 국민의 뜻을 거슬러서도 안 되고, 국민을 억압하는 수단이어서도 안 된다는 단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단심이 무너질 때 이 세상은 참으로 뒤죽박죽이 되어 버리고 만다. 노예들의 세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의식이 없는 한 노예들은 행복하다. 시킨 대로 하고, 주는 것을 먹고 입고 자면 되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노예들이 벌어들인 소득을 주인이 가지면 되고, 주인은 노예들을 재물의 일부로만 생각하면 충분하다. 하지만 노예들에게 인간이라는 의식이 깨어나게 되면,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왜?”일 것이고, 주인과 자신 사이의 불평등한 현실을 인식할 것이고, 당연히 이건 옳지 않다라는 자각에 이를 것이다. 그러기에 주인이 노예에 대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노예가 그런 자각을 하게 되는 것이고, 까닭에 그런 자각이 불가능하도록 끊임없이 차단하고 세뇌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까닭에 누군가 나서서 끊임없이 단심가를 불러야 한다. 특정인만이 모든 것을 독식하고, 국민 대다수의 노동의 대가를 폭식하는 세상은 옳은 세상이 아니라는 자각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이다. 역사가 되풀이되는 한 이방원은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까닭에 정몽주도 어딘가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대접받는 일반원칙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세 가지 사태를 본다. 카드회사로 상징되는 금융기관의 국민정보대량유출사고에 대해 경제부총리라는 현오석 장관의 “금융 소비자도 정보를 제공하는 단계에서부터 신중해야 한다. 우리가 다 정보 제공에 동의해줬지 않느냐.”라는 첫 번째 반응, 여수앞바다 기름유출사고에 대한 윤진숙 환경부 장관의 “여수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 관련 1차 피해자는 GS칼텍스, 2차 피해자는 어민”이라는 지난 5일 국회에서의 답변,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가 여직원을 불법채용한 사실이 보도되자 “지인의 딸인 사실을 나중에 알았으며, 연봉도 얼마 되지 않는 엔지오(NGO)에 외국 명문대 석사까지 마친 사람이 입사해 열심히 일해주고 있는 것을 되레 고마워하고 있다.”는 나경원 위 위원회 회장의 천연덕스러운 답변 등이 그러하다.

위 세 말은 모두 맞는 말이다. 신중하지 못하게 카드발급 시 정보제공에 가입자가 동의한 것이 사실이고, 기름유출로 기름이 바다에 동동 떠다니게 되어 유출된 기름값만큼 피해를 입은 GS칼텍스가 1차 피해자인 것이 사실이고, 능력 있는 재원이 적은 월급의 엔지오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들, 도둑고양이들에게는 위 모든 것들이 진실이고 사실이다. 생선가게를 지키고 있는 도둑고양이에게 그 생선가게의 생선 모두가 당연히 먹이가 되는 것처럼,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권한 내의 행위는 합법이든 불법이든, 정당하든 부당하든 모두 옳은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현오석 부총리, 당신은 정보제공에 동의하지 않으면 카드발급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가 모르는가? 어찌 당신 같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관료가 대한민국의 전체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지 필자로서는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 전국민의 금융상황뿐만 아니라 모든 정보시스템의 기본체계를 근본적으로 파괴시켜 버린 이번 사태에 대한 당신의 안이한 인식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가져오고, 전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국민 모두가 회초리를 들고 당신의 종아리를 때리고 싶어 하는 그 절박한 심정을 그대는 알고 있는가 말이다. 윤진숙 장관, 당신은 여수시민들이 1995년의 씨프린스호 기름유출사고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로 인해 기름피해에 반사적 불안감과 피해의식에 고통스러워하는 민심을 알고서 위와 같은 소리를 감히 하는 것인가? 나경원 회장, 당신은 “몰랐다.”라는 말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다른 지원자들을 팽시킨 후 사후 서류 접수를 통한 부정선발자가 열심히 일을 해 주고 있어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어떻게 그렇게 뻔뻔스럽게 할 수 있는가? 공직을 그렇게 개인사유물로 생각하고 절차도 무시, 내부규정도 무시, 다른 지원자들의 선한 기대를 그렇게 짓밟고서도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는 듯 강변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들은 진짜 생선가게의 도둑고양이들인가?

여전히 세상은 하여가와 단심가가 부딪히고 있다. 저 플래피버드가 기둥 사이를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쳐보지만, 견고한 기둥은 좀처럼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힘없는 새들은 오늘도 수없이 기둥에 부딪혀 땅바닥에 “철퍼덕” 부딪혀 깨어지고 있다. 정보제공을 한 것도 국민의 잘못이고, 1차피해를 본 곳은 대기업일 뿐이고, 우수한 능력자가 부정선발된 후에 열심히 일해 주는 것이 고마울 뿐인 고위공직자들은 여전히 하여가를 찬미하고 있다. 이렇게 얽힌들, 저렇게 얽힌들 무슨 상관인가? 대한민국의 칡넝쿨이 얽히고 섞여 뒤죽박죽이 되면 될수록 자신들의 이권행사의 기회만 넓어진다고 좋아들 하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잘못이 있으면 지적되고 시정되어야 한다. 관련자들은 징계를 받거나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유독 정권 주변의 부정비리에 대한 단죄소식은 멀기만 하다. 입으로 외치는 헛구호만 난무할 뿐, 대통령기념시계에 대한 불법유통에 대해 어떠한 시정조치가 취해지는지 전해지는 바 없다.

이석기 통진당의원에 대한 내란음모죄재판이 45차공판을 끝으로 종결되었다. 아마 사상유례가 없는 공판회수라 할 것이다. 마지막 내란음모죄로 기소되었던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때는 안기부 등의 고문으로 얻어진 허위자백을 근거로 몇 차례 공판이 열리지도 않고 결심되었는데, 이번 사건에서는 그러한 고문이 없었고, 개정된 공판중심주의절차에 따라 실재 법정에서 증거를 얻다 보니 재판이 길어진 것이다. 검찰과 피고인 모두 할 만큼 했다. 이제 이석기 의원이 저 플래피버드처럼 좌와 우의 기둥틈새를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인지, 아님 철퍼덕 하고 땅바닥으로 쳐박힐 것인지 여부는 사법부의 판단에 달려 있다. 어느 쪽으로 결말이 나든 또 다른 이념적ㆍ사회적 갈등은 고조될 것이다. 그 사이로 하여가와 단심가가 흘러나올 것이고, 여전히 도둑고양이들은 생선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것이고, 플래피버드는 추락할 것이다.

이념대립이 영원히 사라질 수야 없겠지만, 조금은 완화되어 갈등이 조정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싶을 뿐이다. 필자는 저 플래피버드가 막무가내 기둥에 부딪히며 무력하게 추락하는 모습을 보며 느꼈던 통증이 사라진 세상을 꿈꾼다. 베트남 앱개발자가 만들었다는 플래피버드가 왜 통점을 건드리는지, 고까짓 너무나 단순한 게임 하나가 날 고통스럽게 하는지 모르겠다. 하여가의 소용돌이 속에서 누군가 단심가를 불러야 한다면, 나와 그대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단심가의 명가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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