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일단멈춤표지와 백색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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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일단멈춤표지와 백색테러
  • 법률저널
  • 승인 2013.12.10 10:22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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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며칠 전 시카고 도로를 운전 중 경찰에게 붙잡혔다. 시카고에 오래 산 지인으로부터 경찰이 차를 정지시키면 차에서 내리지 말 것과 손을 가만히 아래에 두거나 핸들을 붙잡고 보이게 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그대로 실천했다. 차문을 내리라 하더니 내가 “스톱신호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스톱신호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특이한 교통신호이다. 교차로 및 차량이 서로 교행하는 대부분의 도로에 설치되어 있는 붉은 색 팔각형 스톱신호 앞에서 모든 차량은 (직진신호등이 켜져 있는 곳이 아닌 한) 일단 정지해야 한다. 차량이나 행인이 지나가지 않더라도 일단 정지하여 최소한 3초 정도 지난 후에 진입해야 한다. 이때도 정지된 차는 한 대밖에 지나갈 수 없다. 다른 쪽에서 오는 차가 정지하였다가 같은 방식으로 한 대 지나가고, 그 다음에 이쪽에서 한 대 지나가는 그런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교차로를 지나는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고 인내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교차로에서 차량이 엉킬 이유도 없고 서로 간에 앞서 가겠다고 다툴 일도 없다. 결과적으로 차량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교통신호체계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그리고 그 스톱신호가 도로 쪽에 낮게 설치되어 있어, 전면에 높이 설치된 한국의 교통신호기에 익숙한 필자로서는) 그 후에도 몇 번 실수를 했지만 다행히 경찰에게 적발되지는 않았다. 이제는 제법 그 신호에 익숙해져 있다.

면허증을 보자기에 경찰에게 한국에서 발급받아 온 국제운전면허증을 당당하게 내보였다. 딱지를 뗀다면 할 수 없지 하는 생각으로 내민 국제운전면허증을 한참 들여다보던 그 경찰 왈, 앞으로 운전 조심하고 시카고 운전면허증을 발급받도록 하라고 한 후 날더러 그냥 가라고 하였다. 엄격하기로 유명한 시카고 경찰이 딱지를 떼지 않을 리가 없을 텐데 하면서도 일단 금액이 장난이 아닌 과태료처분을 면하게 되어 고맙다고 “탱큐” 하고 다시 운전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아, 저 경찰이 국제운전면허증을 가지고서는 과태료처분통지서를 끊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그냥 크게 한 번 웃었다. 시카고 운전면허증에는 다양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과태료고지서에도 그 내용을 모두 기재해야 하는데, 국제운전면허증에는 달랑 내 이름 석 자와 생년월일만 기재되어 있으니 고지서를 발급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에서 발급받아 온 국제운전면허증을 통해 이렇게 보호(?)를 받다니, 새삼스레 대한민국정부에 대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건을 겪은 후 미국의 “스톱사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차로 앞에서 스톱사인에 모든 차량이 습관적으로 멈춰서고, 옆 차선의 차량을 먼저 보낸 후 자신이 직진하는 것, 이 당연한 행보를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하는 시카고 시민들을 바라보면서 처음에는 바보 같기도 하고 느려터진 것 같기도 하였지만, 이 제도를 통해 어느 누구 한 사람 교차로에서 꼬리 물기를 하지 않고, 서로 먼저 가겠다고 실랑이할 필요가 없으니, 이 제도를 한국에 꼭 도입해야 할 필요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언제나 좌회전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특별히 좌회전 신호를 따를 곳에서는 따르라고 표시하고 있을 뿐, 그러한 신호가 없으면 비보호좌회전이 언제나 허용되는 것을 보면서 이 또한 참 편리한 제도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중앙선이 그려진 곳에서도 언제나 필요에 따라 좌회전이 가능하니, 사람의 합리적 판단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구태여 멀리 갈 필요 없이 필요한 곳에서 좌회전과 유턴이 허용되는 교통문화도 내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편리한 신호체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미국에서 세 번째 크다는 시카고, 하룻밤에도 몇 명의 시민들이 총기사고 등으로 사망한다는데도 시내는 참으로 질서정연하고 조용하다. 시내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면 모든 승객이 다른 인종이다. 체격에서부터 피부색까지 다양한 인종으로 어느 것 하나 일치하는 사람이 없지만 그들이 이루는 통합의 세계는 스톱신호라는 교통체계 속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시내버스를 타면 걷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그냥 장애인용스쿠터를 탄 채 버스에 오를 수 있도록 발판을 작동시켜 도로까지 발판을 깔아준다. 장애인용스쿠터가 올라오면 승객들이 일어나 자신들이 앉아 있던 좌석을 들어 올려 고정시켜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장애인이 편안하게 스쿠터를 타고 있을 수 있도록 보장한다. 물론 내릴 때도 마찬가지이다. 버스에 그러한 장애인을 위한 좌석을 설치하고, 평소에는 일반승객 좌석으로 사용하다가 그러한 장애인이 타게 되면 그 의자를 들어 올려 공간을 확보하도록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급할 전혀 없는 그들의 모습에서 여유를 느끼는 것은 어쩜 승객 중 나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가 정착되어 있는 곳이 선진국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철저하게 타인에 대한 배려가 습관화되어 있는 나라, 당연히 타인을 배려해야 하고, 그러한 배려 속에서 자신도 배려를 받는 문화, 그러한 나라가 선진국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혼자만 앞서 가겠다고 아등바등거리며 아귀다툼을 벌이는 사회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겠구나 싶었다.

인터넷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에 관한 각종 한국뉴스를 접한다. 떠나올 때와 다름없이 “여전히 대한민국은 쌈박질 중”이다. 참으로 한심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합법적 폭력을 행사하라는 명령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았다. 따라서 국가는 국민에 대하여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그 전제는 “합법적”이어야 한다. 합법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합법은 소극적으로 법에 합당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모든 이에게 공평하지 못한 합법은 합법을 가장한 가장 나쁜 폭력이다.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말한다, "어부가 그물을 쳤다고 모든 고기를 다 잡을 수 있습니까?"라고. 그렇지만 그 말은 맞지 않다. 국가공권력을 행사하는 자는 범죄를 저지른 모든 자들을 동등한 가치로 처벌할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여야 한다. 잡다잡다 못 잡으면 어쩔 수 없지만, 어떤 범법자는 예쁘니까, 같은 편이니까 일부러 잡지 않고 모른 척 해 주거나 오히려 숨겨주어 은폐하고, 어떤 국민에 대해서는 없는 죄도 만들어 가면서 잡아들이고 처벌한다면 이것은 합법적 국가라기보다는 밤거리 양아치보다 못한 폭력조직일 뿐이다.

따라서 국가공권력의 행사는 합법적이어야 하고, 공평해야 한다. 진짜로 종북이거나 국가이익을 해하는 집단이나 개인이 있다면, 그리고 그를 처벌할 명문의 법이 있다면 그를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민주주의의 보다 높은 가치인 비판과 의견제시가 허용되는 범위의 의사표현자에 대하여 정부와 반대의견을 제시할 뿐이라며 “종북의 탈”을 씌우는 일은 당장 그만 두어야 한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은 극우보수세력들에 의한 관제데모의 성격을 띠고 있는 집단시위가 판을 치고 있다. 경찰이 거의 손을 놓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 입장에 있는 이들에게 집시법을 적용한다면, 극우보수세력들의 행위에 대하여도 동일한 집시법의 적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는 흑색테러도 허용해서는 안 되지만, 백색테러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흑색테러집단과 백색테러집단이 서로 마주치게 허용해서도 안 된다. 이는 국민을 두 패로 갈라 서로 증오토록 만드는 것으로, 국가가 취해서는 결코 되지 않을 마지막 마지노선인 것이다. 국가가 자신의 가치를 추종하는 자들로 하여금 추종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 백색테러를 하도록 허용한다면 그것은 이미 국가가 아니다. 우리는 6ㆍ25전쟁을 겪으면서 좌익과 우익이 서로 죽이고 죽인 슬픈 역사를 경험하였다. 그 후유증이 60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 이를 극복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 상호간에 발생하는 이러한 “증오심의 자학과 타학”을 멈추게 해야 한다. 국정원댓글녀로 상징되는 불법관권선거의 풍파를 면하기 위해 백색테러를 묵인하거나 조장하고 있는 듯한 현재의 상황을 멈추어야 한다. 최악의 경우 대통령이 사퇴하는 일이 있더라도 차라리 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옳지, 이렇게 국민을 두 패로 나누어 쌈박질을 하게 하여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4ㆍ19와 5ㆍ16으로 이어지는 역사는 이미 50여 년 전의 역사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민주국가로 발전되어 온 대한민국을 이렇게 다시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린 이명박 전 정권과 그 정권 하에서 빚어진 불법과 부정을 바로잡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무엇을 감출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가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던 모든 기능이, 이제는 국민이 정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엄청나게 변화해 버린 세상이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에 투명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이 국가기관에 찍히는 것처럼, 국가기관 뿐 아니라 박 대통령의 동선조차도 모두 기록되고 또 기록된다. 21세기는 모든 것이 기록으로 남는, 동영상으로 남거나 녹음파일로 남고, 모든 전화와 문자가 전자파일로 남는 위대한 역사의 시대이다. 이 위대한 기록의 시대에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고, 은폐와 모략이 통하지 않는다. 다 까발려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제갈공명이 왜 친자식처럼 사랑했던 부하 마속을 베었겠는가? 군율을 세워 모든 장병들에게 정의와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였지 않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읍참마속이라는 사자성어의 의미를 깊이 되새겼으면 싶다. 내부의 동요가 있겠지만, 박 대통령에게 충성한 자들에 대한 미안함도 있겠지만, 이제 유일한 해결방법은 “읍참마속뿐”임을 심사숙고했으면 싶다. 종북몰이라는 차가운 북풍한설로는 결코 국민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없다. 따뜻한 햇볕만이 대한민국을 흥하게 할 것이다. 여기 시카고 거리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스톱신호”를 청와대 정문 앞에, 박 대통령의 동선 곳곳에 설치하고, 한 번 더 멈춰 선 후 “국민을 위한 진정한 평화의 길”이 무엇인지 자문하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란다. 대통령은 네 편 내 편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도마뱀 정권, 찌라시 정권, 도둑 정권”이라는 말이 시중에 회자되고 있음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축적해 놓은 “진실된 사실들”을 기초로 하여 “잘못을 저지른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대국민통합을 선언하는 대국민담화를 발표하여야 한다. 그것은 빠를수록 좋다. 그래야 정의와 진실이 존중받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이다. 모든 국민은 그런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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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순맘 2013-12-27 04:22:57
속이 후련합니다.
저라도 쓰고 싶었고, 그만큼 고대한 글이었습니다.
정말 '단비'같은 글입니다.
모두가 눈앞의 현실이 끔찍해서 마냥 눈감고 '나 없다'하며 살고 싶어합니다.
저마다 여유도 없는 가운데, 도피성 여행도 부지기수입니다.
죄송하게도 저도 비겁하게 편승하고 맙니다.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가르치시는
그저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교수님이실 것 같습니다.
그 학생들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를 숨길 수 없네요.

김소연 2013-12-13 22:55:21
교수님 글 잘 읽고 갑니다^^

금순맘 2013-12-27 04:22:57
속이 후련합니다.
저라도 쓰고 싶었고, 그만큼 고대한 글이었습니다.
정말 '단비'같은 글입니다.
모두가 눈앞의 현실이 끔찍해서 마냥 눈감고 '나 없다'하며 살고 싶어합니다.
저마다 여유도 없는 가운데, 도피성 여행도 부지기수입니다.
죄송하게도 저도 비겁하게 편승하고 맙니다.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가르치시는
그저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교수님이실 것 같습니다.
그 학생들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를 숨길 수 없네요.

김소연 2013-12-13 22:55:21
교수님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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