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개소리]검사반 대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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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개소리]검사반 대특강
  • 법률저널
  • 승인 2003.09.0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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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추석에 독서실에서 옛날에 같은 고시원에서 지낸 적이 있던 형을 만났다. 그 고시원에서도 유명할 정도로 아주 공부를 열심히 하던 형이었다. 그런데 나이도 있는데 아직도 독서실에서 만나게 되다니 유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형은 아시다시피 신림동 독서실에서 제일 공부 열심히 하는 부류인 연수원 2년차로 결혼까지 한 가장이었다. 고향이 광주인데 아내만 내려 보내고 독서실에서 연휴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끝이 없는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았다.

이듬해 3월의 어느 날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예비판사 임용자 명단에 그 형의 이름이 있음을 보았다. 부러운 마음보다는 작년 추석 때가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열심히 하더니 결국은 원하던 꿈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였다. 그 이면에 묻혀진 인고의 나날들이 그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속으로 축하를 해주고 싶다.

 

◇ 무한경쟁의 연수원

그 형을 보면서 이제 일산의 사법연수원 앞쪽으로 이런 현수막이 붙어있을 날이 멀지 않았음을 생각해 보는 것도 지나친 억측이 아닌 듯싶다. "추석맞이 검사반 대특강, 담당교수 부장검사    "(조기마감주의), "판사반은 모두 마감" 그나마 남아있는 영상강의를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연수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고,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로펌반" 쪽에서 줄을 서 있을 아내를 보고 있는 남편.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실제로 신림동 모학원에서 작년 겨울 사시2차 발표가 난 후 연수원예비과정으로 수강생을 모집하는 전단지를 아주 손쉽게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연수원 입소전 전과목 7회독을 못하면 임용은 꿈도 꾸지마라", "3임용4탈락"같은 말도 들을 수 있다. 이제 연수원에서 시험을 보다 사망했다는 보도는 충격적이지도 않다.

7회독이 아니라 10회독도 좋고, 잠을 안자도 좋고, 추석이 아니라 설날이라도 고향에 안가도 좋으니 제발 그런 행복한 고민에 좀 빠져보고 싶다. 실제 겪고 있는 연수생들이 이 글을 보고 쓴 웃음을 지을지는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명절만 되면 열린 식당 찾으러 여기저기 기웃거려야 하는 서글픈 신세보다는 떳떳하게 집에 안가는 연수생이 되고 싶고, 며칠 밤을 꼬박 새워 줄을 서도 좋으니 검사반 대특강 앞에서 서고 싶다. 연수원 예찬론을 쓰자는 게 아니다. 명절만 되면 끼니 때울 생각에 서글퍼지는 사람들에게는 연휴가 긴 것도 반갑지 않고, 연휴 때마다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특강 전단지도 유쾌하지 않다.

공부도 손에 안 잡히는데 마음만 불안해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것 보다 차라리 집에 가서 며칠 쉬고 열심히 하는 게 낫다는 학원 강사의 말이 그럴 듯 하여 큰 맘 먹고 집에 갔는데 친척들이 "너 요즘 뭐하냐?"하고 물으면 "그냥 공부해요"라고 답하니 서로 어색하다. "괜히 물어 봤나?"하는 표정을 보면서 "역시 괜히 왔어....ㅠ.ㅠ......"라는 생각과 함께 얄미운 강사님 얼굴만 생각이 난다.

곧 추석이다. 올해도 어떤 이유로든 고향에 가지 못하는 많은 이들에게 머지않아 연휴가 너무 짧게 느껴지고 행복하게 집에 못가는 전화를 걸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올해도 여전히 추석날 밥 주는 고시식당 아주머니들 복 많이 받으소.

이상욱(sylee_77@hanmail.net)
사법시험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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