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고시촌에도 스산한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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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고시촌에도 스산한 바람이 분다
  • 법률저널
  • 승인 2013.09.27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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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제법 쌀쌀한 바람과 함께 빠른 속도로 시간이 가을 속으로 빨려드는 듯하다. 한껏 뽐내는 민트향의 코스모스 향과 자태도 느낄 틈 없이 수험가에도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다.


떨어진 낙엽도 밟지 말라는 신림동 고시촌의 가을. 속속 발표되기 시작하는 각종 고시의 제2차 합격자 발표로 수험생이나 학부모의 애간장이 전해지는가 하면, 비통함도 들려온다. 금년도 제55회 사법시험 제2차시험 합격자 발표가 당초 예정일인 10월 10일보다 보름 앞당긴 26일에 단행되자 그렇잖아도 사법시험 폐지에 따른 설렁함이 감도는 고시촌이 더욱 조용해진 듯하다.


불과 3~4년 전만해도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이면 삼삼오오 벽보 앞에 모여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던 모습이 이젠 먼 옛날이 된 듯, 이날은 설렁할 대로 설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총 응시자 1,456명 중 불과 305명만이 합격하는 시험으로 전락했고 내년이면 200명으로 또 줄어들기 때문이다.


제법 어두워진 거리에서는 한 여성 수험생이 ‘저, 떨어졌어요~’라며 어머니와 통화하며 흐느끼는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또 합격 인원이 워낙 적다보니 들떠 환호하는 흔적들 대신 적막함이 감도는 하루였다.


이날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를 시작으로 내달 2일 외교관후보자, 9일 세무사, 9일 공인노무사, 18일 5급공채(행정고시) 등 굵직한 시험들의 2차시험 발표가 기다리고 있어 고시촌은 애곡(哀曲)의 10월을 맞이하게 된다.  


흐느끼는 그 여성 수험생을 훔쳐보다 얼마 전, 한적한 한 시골에서 겪은 기억이 떠올랐다. 가을 나들이 중에 한 식당에 들렀다. 지난해 비슷한 시기에도 같은 식당에 들렀고 애써 그 가게를 찾았다. 아들이 지난 해 외무고시에 합격했다며 자랑하던 그 집이 생각이 나서였다. 여전히 벽에는 행정안전부 장관 명의의 합격증서와 ‘축! OOO 자 △△△군 외무고시 합격’이라는 주변 단체 명의의 축하 액자가 여럿 걸려 있었다. 1년이 지난 후 달라진 것은 지난해 12월 21일 국립외교원에서 외교통상직 기본과정 수료식 기념으로 양 부모와 합격생이 함께 한 사진이 하나 더 걸려 있었다. 주인 내외는 장차 외교관이 될 아들을 생각하면 마냥 즐거운 듯 여전히 싱글벙글이었다. 얼마나 좋으면 아직도… 수험생들의 애환을 숱하게 보아왔던 기자로서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합격생은 노력의 대가며 부모로서는 헌신의 보상이기 때문이다.


내년엔 200명으로 줄어드는 판국에 떨어져 흐느끼는 여성 수험생의 심정은 어떠할 것이며, 먼 통화상으로 딸의 흐느낌을 들어야 하는 부모의 심정은 또 어떠할까. 스산함을 넘어 오싹한 한기마저 드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영상이 오버랩됐다. 추석 명절 고향 바닷가에서 봤던 가깝고 큼직한 보름달이 일렁이는 파도를 바래게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시험 역시 보름달처럼 가득 차야만 합격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얼토당토, 아니 그럴듯한 잡념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또 다른 잡념이 머리에 앉았다. 매년 합격자 발표를 조금씩 앞당겨 오던 법무부가 이번에는 무려 보름이나 앞당긴 것은 왜일까. 내달 7일부터 로스쿨 입시 응시원서 접수가 있고 그 이전에 27일, 28일 양일간 로스쿨 공동 입학설명회가 있는 터라, 불합격한 이들에게 다른 길도 모색해 보라는 배려(?) 때문이었을까. 여하튼 고시촌에도 스산한 바람이 분다.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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