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의 행정학 읽기 / 역사 속의 행정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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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의 행정학 읽기 / 역사 속의 행정학(2)
  • 법률저널
  • 승인 2013.08.1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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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의 미국 역사의 기원인 17~18세기를 빠른 호흡으로 간략히 살펴봤는데, 이번 시간에는 19세기 현대 행정학이 잉태한 가장 직접적인 배경으로서 ‘엽관제와 실적제’를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가겠습니다.


우선 이들 단어의 의미부터 살펴보면, 엽관제(獵官制, spoils system)의 ‘엽(獵)’은 수렵(狩獵) 혹은 엽총(獵銃) 등의 예에서 ‘사냥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듯이 ‘엽관(獵官)’이란 선거에서 승리가 관직을 사냥터의 노획물로 간주되는 걸 말합니다.  ‘spoils’ 또한 전리품(전쟁 시 약탈물)이라는 뜻으로 결국은 같은 맥락이죠. 그리고 영국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만들어진 정실제(情實制, patronage)는 엽관제와 혼용되어 사용되는데, 본래 정치적 충성도에 의해 임명한다는 뜻으로 엽관제보다 그 의미가 좀더 넓습니다. 이에 비해 실적제(merit system)는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없더라도 개인의 실적, 즉 능력만 있다면 임용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여기서 먼저 지적해두고 싶은 건, 엽관제는 현재 정치적 임용 혹은 코드인사로 불리듯이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의 선거공약 혹은 정치철학을 이행할 파트너로서 자기 사람을 쓰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모든 관직이 정치적인 이해관계로만 채워져서도 안 됩니다. 전문성과 도덕성이 없는 사람이 개인적인 친분이나 정(情, 정실제의 정)에 의해 나랏일을 맡아서도 안 되겠고, 더 중요한 건 매 선거 때마다 모든 공직자가 선거운동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직이 매력적인 직업으로 간주될수록 현재 집권하고 있는 정파가 계속 정권을 잡도록 협조해야 할 테니까요. 엽관제의 적나라한 형태는 현재 5급 공채 등 각종 시험에서 공개경쟁을 통해 공직에 등용하려는 수많은 수험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공정한 기회균등 측면에서 납득하기 힘들 겁니다. 이렇듯 모든 공직 임명을 좌우하게 된 19세기 미국 역사 속의 엽관제는 개혁의 대상이었는데, 이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앤드류 잭슨
(재임 1929~37)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부터 6대 대통령까지 미국 동부 버지니아 주(워싱턴, 제퍼슨, 매디슨, 먼로)와 매사추세츠 주(애덤스 父子)의 상위계층 출신입니다. 이건 소외계층이 공직에 임용될 가능성이 희박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7대 대통령인 잭슨(Andrew Jackson)은 19세기 초 영국과의 전쟁 영웅인데, 독학으로 공부하여 변호사가 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한미한 집안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점차 공직의 문호가 넓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를 ‘잭슨 민주주의’ 혹은 근대적 의미의 기회균등이라고도 부르죠.


물론 3대 대통령 제퍼슨도 공화파(반연방파)를 우대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1대 대통령 워싱턴은 취임 당시 연방파와 공화파간의 반목을 싫어했기 때문에 파벌과 관계없이 역량 있는 사람들을 널리 등용시켰습니다. 워싱턴과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 정조의 탕평책이 있었죠.


하지만 워싱턴도 해밀턴과 제퍼슨 간 갈등으로 골머리를 앓았고, 결국 그 역시 집권 후반기엔 연방파를 더 중용합니다.
하지만 특히 잭슨 때부터는 정권이 바뀌면 모든 공직을 교체했기 때문에 ‘엽관제가 본격화되었다’라고 합니다. 즉, 잭슨 이래로 남북전쟁(Civil War, 1861~65) 이전 슬로건이 ‘전리품은 승자에게 속한다(To the victor, belong the spoils)’일 정도입니다. 당시 매관매직까지 횡행하는 등 공직이 정치적 변수에 과도하게 휘둘리던 시기입니다. 이를 정치적 오염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게티스버그 연설 중인 링컨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남북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남북갈등으로 엽관제 문제는 수면 아래 놓이게 됩니다.


참고로 게티스버그 선언(1863)은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노예해방으로 유명한 링컨 대통령이 게티스버그 전투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는데, 그 짤막한 추모사 중 유명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87년 전(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 1776년 독립선언을 뜻함), 우리의 조상들은 자유의 깃발 아래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다는 전제에 헌신하기 위해 이 대륙에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습니다. …(중략)… 우리는 이곳에서 그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고, 또 신의 가호 아래 이 나라가 새롭게 탄생한 자유를 누리게 하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를 지구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게 할 것이라고 굳게 결의하는 바입니다.” 마지막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행정이념 중 민주성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이때 ‘by the people’은 대의민주주의를 뜻하지만,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직접민주주의 혹은 참여민주주의로 확대해 볼 수 있겠네요.

 

1865년 북군의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하는 리 장군(우측)

 
또한 남북전쟁 시 북부의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은 패장 로버트 리 장군을 비롯한 남군에 대한 예우로 이후 남북이 갈라서거나 추가적인 내전의 가능성을 없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용의 정신이 링컨의 위업을 더욱 빛나게 했다고 봅니다. 그랜트 장군은 훗날 대통령(재임 1869~77)이 되어 흑인 해방에 반발한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1866년 결성한 KKK(Ku Klux Klan)단의 활동을 금지하는 법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지금도 그 잔당들이 남아있죠.

 

가필드 대통령 암살


남북전쟁이 끝난 19세기 후반, 대륙간 철도를 비롯하여 본격적인 산업화가 전개됨과 동시에 유럽에서 건너온 투기 자본으로 숱한 경제공황을 겪으며 사회개혁을 바라는 진보주의적 목소리가 높아만 갔습니다. 즉, 겉만 화려한 도금시대(Gilded Age)로 비춰지기도 했는데, 그 중 엽관제의 맥락에서 대표적인 사건은 가필드 대통령의 암살(1981)입니다. 가필드 역시 엽관제를 지지하였지만,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을 돕던 기토(Charles Guiteau)가 가필드의 당선 뒤 돈으로 프랑스 영사 자리를 사려던 게 좌절되자 총으로 쏴버린 겁니다. 이건 당시 엄청난 사회적 충격을 가져왔습니다. 엽관제의 치부가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죠.


그리고 2년 뒤 실적제(merit system)를 중심으로 한 연방공무원법, 즉 펜들턴 법(Pendleton Act, 1883)이 만들어집니다. 이때 펜들턴은 상원의원 이름인데, 정파적 이해관계보다 자격에 따른 공직 충원을 주장했기에 현대적 의미의 기회균등으로 봅니다.

 

우드로 윌슨
(재임 1913~21)


또한 1887년 행정학의 조상이라 일컬어지는 정치학자 윌슨(Woodrow Wilson)이 정치학 계간지에 기고한 “행정의 연구(The Study of Administration)”(1887)라는 논문에서 행정의 위상을 재정립하는데, 바로 정치의 오염으로부터 행정을 보호하기 위해 행정을 일종의 관리(a field of business)로 규정짓습니다. 현재 행정학을 ‘Public Administration’이라고 명명하지만, 윌슨의 논문 제목에는 ‘Public’이 없다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이렇듯 현대 행정학이 잉태했을 당시엔  정치학보다 경영학의 영향이 절대적입니다. 이를 ‘정치?행정이원론’ 혹은 ‘행정?경영일원론’이라고 하며, 정치란 공법의 제정, 즉 공공정책의 형성으로, 행정은 공법의 상세하고 체계적인 집행으로 나눕니다. 이후 동일한 맥락에서 굿노(Frank Goodnow)는 정치는 국가의지의 표현, 행정은 그 의지의 집행으로 보죠. 하지만 이러한 기계적인 서술로는 윌슨의 아이디어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행정의 연구” 논문 첫 페이지


당해 논문의 내용을 좀더 살펴보면, 실천적 학문임에 분명한 행정이 미국의 대학 교과과정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다른 나라의 사례를 통해 보다 많이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른바 비교정치 혹은 비교행정이죠.

 

이정도 크기도 충분한데, 더 줄이시더라도 최소한 철자가 보일 정도면 좋겠습니다 ~


또한 당시 진행 중인 인사개혁운동(실적제)이 그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조직 및 관리방법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그 이유로 행정을 연구하는 목적이 ① 정부가 적합하고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과 ② 어떻게  그 적합한 일을 가능한 가장 효율적으로 해낼 것인가를 발견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치학자들(당시엔 행정학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음)은 국가의 본질, 주권의 소재 등 정부의 구성에만 관심이 집중된 결과 행정(관리) 자체를 조망할 수 없었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영국 역시 행정발달의 역사가 아닌 의회감시의 역사로 보기에, 프로이센(프러시아)과 프랑스를 관리기법의 선진국으로 주목합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재위 1797~1840)

 

로렌츠 폰 슈타인
(1815~90)


그 중 프로이센의 18~19세기 프리드리히 대제와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를 예로 들면서 이 시기에 행정이 가장 많이 연구되었고 가장 완벽에 가깝다고 봅니다. 특히 프리드리히 윌리엄 3세는 슈타인(Lorenz von Stein)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데, 슈타인은 절대왕정기(16~18세기) 관방학(官房學, 군주의 통치학)과 경찰학의 지위에 머물던 행정을 19세기 ‘입헌주의 행정학’의 지위를 개척한 사람으로서, 헌정과 다른 행정을 주장하여 행정의 총론으로 행정조직, 행정명령, 행정법의 3부로 구성하였고, 각론은 외무, 군무, 재무, 법무, 내무의 5부로 구분하였습니다. 하지만 일견 행정법학의 속성이 강하므로 현대 행정학의 기원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또한 프랑스의 나폴레옹을 예로 드는데, 이 시기 행정기구가 완비된 프로이센이 주도했던 통일(1871) 당시 실선 부분은 재통일(1990)된 현재의 독일보다 넓은 점에 주목합니다.

 

프로이센이 주도했던 통일(1871) 당시 실선 부분은 재통일(1990)된 현재의 독일보다 넓음


19세기 말 독일이 처음으로 통일(1871)하던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프로이센(가장 강한 연맹국)은 ‘병영을 차리고 있는 군대일 뿐’이라고 했을 정도로 군사력이 막강했는데, 이는 곧 관리를 위한 규율이 체계적으로 발달되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윌슨은 프로이센의 행정(관리)기술을 갖기 위해서 프로이센의 역사를 갖고자하는 건 아니라고 했는데, 미국은 중앙정부의 권위적 질서를 거부하는 무국가성(statelessness)이 강해서 프로이센 특유의 행정체제를 여과 없이 받아들일 경우 자신들을 질식시킬 거라고 봤습니다(“Prussia's particular system of administration would quite suffocate us.” 프러시아는 프로이센의 영어식 표현).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윌슨은 다음과 같은 자극적인 예를 통해 관리기법에 대한 연구를 독려합니다. 즉, 살인하려는 자가 예리하게 칼을 갈고 있는데, 그와는 별개로 칼 가는 방법만 따로 배워올 수 있다는 거죠.


이렇듯 정치와 행정에 대한 인위적인 구분에 대해 비판 역시 존재하지만, 행정을 정치의 과도한 개입으로부터 차단하는 논리적 근거를 마련해줌은 물론, 정부부문의 조직.인사.예산 등 제반 관리에 대한 연구를 촉진시켰다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공직의 신분을 보장하는 제도가 마련되었고, 미국과 같은 정도의 엽관제의 폐해 때문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역시 실적제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물론 엽관제(정치적 임용) 역시 고위직을 중심으로 접목되고 있는데, 도덕성과는 별개로 전문성이 전제된 지극히 당연한 제도라는 걸 말씀드리면서 이번 글을 마칩니다. 더위에 건강부터 챙기세요.

 

박훈 합격의법학원 행정학 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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