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법원은 과연 보수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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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대법원은 과연 보수적인가
  • 이충상
  • 승인 2003.07.2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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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상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


요즘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용어처럼 흔히 사용되는 낱말도 없을 것이다.

급기야는 보수적 또는 진보적인 판결, 또한 그러한 성향의 대법관이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일부에서는 대법원의 구성과 관련하여 보수적 성향의 대법관 일색이며 판결의 보수성이 지나치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수와 진보를 선악의 개념으로 대치시킬 수는 없고,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양자를 조화롭게 수용하여야 할 것이라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 대법원에도 다른 성향의 대법관이 공존·조화되어야 함은 마땅한 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러가지 뜻으로 사용되는 보수, 진보의 개념이 사법작용에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과연 우리 대법원이 일부의 주장대로 그렇게 보수편향인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여러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지만 일단 기존 사회의 변화에 많은 관심을 두는지 아니면 안정·유지에 무게를 두는지, 사회적·경제적 약자(여성·청소년·소외계층 등)를 보다 두텁게 보호하려는지 아니면 이들을 다른 계층과 동등하게 취급하려는지, 노동정책과 관련하여 노동자의 권익보호에 중점을 두는지 아니면 사회경제적 효율성을 강조하는지, 범죄 피의자의 인권을 보다 중시하는지 아니면 범죄자의 처벌을 통한 사회의 안전을 강조하는지 등등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
이런 분류기준에서 보면 우리 대법원은 어느 입장이라 할 것인가. 결코 어느 한쪽에 치우친 입장은 아니라고 본다.
대법원은 동향 감시를 목적으로 한 군정보기관의 개인정보수집행위는 비록 공적 인물에 대한 정보를 대상으로 한 것일지라도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또 해고되어 그 효력을 다투는 소송 중인 근로자는 노동조합원으로서 지위를 유지한다고 판결했고, 여성과 남성에게 차별적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이어 이른바 밤샘수사에 의한 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정한 판결, 사형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양형(量刑)에 대한 심리미진을 이유로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한 판결 등은 진보적인 판결의 사례라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법원이 보수적으로 보인다면 이는 한국인들에게 근사하게 보이는 미국 대법원과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일 것이다.

다민족 연방국가인 미국의 대법원은 헌법적 가치와 이념에 관한 판단·해석을 주로 하면서 연간 100여 건의 사건만을 처리하고 있어 진보, 보수의 논쟁이 활발히 전개될 수밖에 없다.

대법관 임기도 종신직이어서 80세가 넘는 극노인과 50대의 장년 대법관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며, 9명의 대법관 중 8명이 판사 출신인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여성 대법관도 존재한다(1981년 최초의 여성대법관 배출).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헌법재판소가 따로 있어 대법원은 헌법적 가치와 이념의 판단 보다는 성문법 해석을 주임무로 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은 대법원이 자신의 사건을 마지막으로 판단해주기를 바라 연간 2만 건 이상의 사건이 대법원으로 몰려간다.

이에 따라 우리 대법원의 기능은 최종심으로서 권리구제적 역할에 두어지는 것도 불가피하고, 이것이 대법원의 중요한 임무가 되고 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어쩌면 한껏 ‘멋’을 부리며 1년에 3개월 안팎을 쉬면서 여유 있게 굵직한 사건만을 처리하는 미국 대법원보다 우리 대법원이 훨씬 더 실속 있게 국민에 봉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대법관의 임기는 6년이며 정년은 65세다. 한마디로 말해 미국과는 사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이 같은 차이점을 감안, 일방적인 시각과 단편적인 지식으로 대법원을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대법원이 더 잘 기능할 수 있도록 격려하면서 필요한 제도개선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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