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부정선거와 대통령 하야에 대한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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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부정선거와 대통령 하야에 대한 트라우마
  • 법률저널
  • 승인 2013.06.2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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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나는 3ㆍ15 부정선거일을 뚜렷하게 몸으로 기억한다. 그 날, 아주 어렸던 나는 봄볕이 간지럽게 따사로워지려 하던 그 봄날, 어머니 손에 이끌려 투표장에 갔었다. 한 손에는 왕사탕을 들고서 말이다. 어머니께서 기표소에서 투표를 마치시고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으려던 순간, 그 자리에 있던 투표감시요원이 “아주머니 투표지 좀 펴 보세요.” 하던, 조금은 무섭고 고압적이던 날카로운 그 목소리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날 그 남자의 그 목소리 앞에서 용기를 내시고자 내 손을 불끈 쥐시던 어머니의 손아귀 힘을 지금도 나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 남자 앞에서 겁먹은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쩔쩔 매다가 보여주지 않은 채 후다닥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서둘러 집어넣고 내 손을 끌어당기며 투표장을 빠져 나오시던 어머니의 두려워하시던 얼굴과 허둥지둥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왜 50년 저쪽의 그 날, 내가 아주 어렸던 그 날의 기억이 이렇게 지금도 생생한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아마도 어머니께서 무언가에 겁을 먹고 내 앞에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유독 그 날 겁을 내며 어쩔 줄 몰라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어린 내게 유독 각인되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는 그 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또렷해진다. 조금 더 철이 들면서 4년마다 반복되는 선거일이 올 때마다 부정선거 시비로 홍역을 치룬 대한민국 정치판 때문에 그 날의 기억이 계속해서 각인되는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세상 물정 모르셨던 어머니, 배움도 짧았고 집안에서 6남매 키우시기에만도 여념이 없으셨던 어머니께서 그 날 아주 지혜로운 행동을 하셨던 것은, 지금 가만히 되돌아보면 아마 “새벽기도의 힘”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할 뿐이다. 매일 새벽, 교회당에서 무언가를 간절히 기도하시던 어머니, 종종 어머니를 따라 새벽기도 교회당을 찾았던 나는, 어머니께서 간절히 기도하시는 그 순간 지루해 하면서도 어머니의 기도소리에 자연스레 귀 기울이고는 했었다. 얼마나 간절히 국가를 위해 기도하시던지, 하루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아야 했던 가난한 그 시절의 어머니의 기도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거창한(?) 제목의 기도였으니, 그 스케일이 얼마나 컸는지는 지금에 와서야 깊이깊이 느끼게 된다. 요즘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종종 새벽 일찍 일어나 교회당에서 새벽기도를 하고는 한다. 그러는 내 모습에서 나는 문득 50여 년 전의 어머니 모습을 떠올린다. 어느 순간 나의 기도가 이 국가와 민족이 올바른 공의의 길로 나아가게 해달라고 하는 간절한 고백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반세기 세월을 뛰어넘는 모전자전의 모습을 본다.


국정원의 지난 18대 대선에서의 선거개입이 검찰의 공소제기로 거의 기정사실화되었다. 밝혀진 내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시인의 상상력, 아니 평범한 60년쯤 세상을 살아본 대한민국 평균남자의 상상력을 동원해 보면, 70여명의 심리전단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대통령선거에 개입하였다면 그 규모는 상상을 뛰어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소위 국정원녀의 댓글작업을 보면 하루에도 몇 십 건에서 몇 백 건에 이른 적도 있다는 것이니, 한 사람의 하루 작업량이 그러 하다면, 70여 명의 심리전단 소속 국정원 직원들의 작업량은 그 하루량만 해도 수천 건이 넘는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것도 선거 두 달 전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에 의해 그러한 조직이 급조되고 약 60일 동안 그러한 선거개입, 여론 조작이 획책되었다면 댓글을 비롯한 인터넷 상에서의 작업량은 수십만 건에 이를 것이라는 계산은 상식적 계산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추론이 가능한 결론이다. 거기에 다시 인터넷상의 리트윗 수까지 감안한다면 그 수는 수백만 건으로 확장되는 전파력을 가진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러한 게시글들은 여권 편향의 경향을 보인 일부 방송과 보수 언론들에 의해 확장 재생산되는 사회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당시 현직 국정원장이 국정원이라는 최고국가권력기관을 거의 총동원하다시피 하여 민주주의 최대의 공적이라 할 수 있는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는 것은 어떤 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반국가행위이다. 이런 반민주ㆍ반국가행위를 한 자가 국가의 안위를 논하고, 종북세력의 위험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의 정신을 배신한 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격조차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ㆍ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라고.


3.ㆍ15부정선거는 4ㆍ19혁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로 이어졌다. 그리고 우리 헌법은 4ㆍ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전문에 선포하였다. 대한민국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음과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주권을 도둑맞는 일을 방관하여서는 아니 된다. 최인규 당시 내무부장관은 3ㆍ15부정선거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았다. 부정선거는 그럴 정도로 무섭고 용서받을 수 없는 반민주행위이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어느 누구도 이를 방관해서는 안 되며 용서해서도 안 된다. 엄한 수사가 이루어져야 하고 행동에 따른 엄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 다시는 이러한 범죄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아예 씨를 잘라야 한다.


인간은 상상력의 원천이다. 상상하고 또 상상한다. 상상력이 창조의 원동력이고, 감추어진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상상은 자유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위반의 공소사실을 확인하면서 끝없는 상상력이 동원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단독으로 국기문란의 범죄행위를 획책했을까, 아니면 이명박 대통령과 이 문제로 상의한 적은 없을까, 아니면 최소한 보고라도 하지 않았을까, 만일 그렇다면 당시 여권의 누군가와 또 상의하거나 협력체계를 갖추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다시 박근혜 당시 대통령후보자는 과연 무관한 것일까, 이런 상상은 비단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상은 자유라고 하지만, 이러한 상상을 구체화시켜 언급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또는 구운 오징어를 씹으며 이런 상상력을 언어화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예전에야 긴급조치 1호, 4호, 9호가 있어 이런 말을 꺼내는 순간 붙잡혀가 치도곤을 당하곤 하였지만, 지금은 그나마 민주화덕분으로 이런 말 정도는 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국정원의 부정선거개입은, 공직선거법위반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되어서는 아니 된다. 이 행위에 대하여는 여ㆍ야 간에 견해가 달라서는 안 된다. 한 목소리를 내어도 부족할 판에 딴지걸기에 돌입한 새누리당의 행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정치권이 이 일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딴죽을 거는 것을 보다 못해 대학생들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서울대생을 시작으로 대학생들이 시국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지식인 그룹이 그룹별로 시국선언을 계획하고 있다. 수많은 대학교의 학생들이 이를 계획하고 있는 듯하다. 아마 이러한 시국선언은 활화산처럼 전국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6ㆍ29선언을 이끌어낼 때까지, 그리하여 앞서 언급한 대한민국헌법을 제정하기 위해, 정치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바쳤는지, 피와 땀을 흘렸는지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불과 25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지난 5년 간 이명박 정권으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5년 집권 기간 동안 대한민국을 이렇게 정치적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게 되었다. 4대강공사를 통해 전국토를 녹차라떼로 만들어버리지를 않나, 국가통계자료를 마음대로 조작하여 잘못된 것을 잘 된 것으로 가짜포장을 하여 모든 국가정책의 근간을 무너뜨려버리지 않나, 국정원을 통한 부정선거개입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50년 전으로 퇴보시키지를 않나, 도대체 그 죄가 얼마나 큰 지는 역사가 심판할 일이겠지만, 해도 해도 잘못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을 배부른 돼지들의 천국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으니, 우리에게는 배부른 돼지만이 아니라 진주목걸이를 필요로 하는 멋진 여성으로 살고 싶은 아름다운 소망도 있는 것이다. 이제 좀 인간으로서 대접받고 살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3ㆍ15부정선거를 제대로 수사하여 관련자를 적법절차에 따라 처벌하였다면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압박하며 부정선거를 감추기에 급급한 채 국민을 겁박하려 했기에 국민의 저항이 극에 달했고, 결국 4ㆍ19혁명으로 이어져 이승만대통령의 하야라는 민주헌정질서의 중단사태가 처음으로 발생하였다. 그 후유증은 지금도 심각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이 믿는, 설마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의 부정선거운동에 개입했을 리가 있겠는가 하는 그 마지막 신뢰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전 정권에서 이루어진 국가기관의 선거부정을 낱낱이 밝히고, 만일 여권 내의 그 누군가가 관련되어 있다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제 살 도려내는 아픔을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다시 살려내야 한다.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말이다. 아직은 기회가 있다. 국민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임이 예감된다. 말도 되지 않는 궤변으로 사실을 호도하려는 여권 인사들의 말과 행동을 자제시켜야 한다. 등 떠밀려 해서는 아니 된다. 솔선하여 부정선거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내 보임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다시 한 번 헌법 제1조를 말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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