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서 ‘80년대 대표적 군의문사’ 법정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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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서 ‘80년대 대표적 군의문사’ 법정공방
  • 법률저널
  • 승인 2013.06.0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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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28일 성대에서 ‘캠퍼스 열린법정’ 열어

 

“사체가 발견된 유류고 현장 어디에도 총상에 따른 피와 피부조직, 골편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체가 발견된 폐유류고는 사망현장으로 볼 수 없다. 이는 사건 당일 중대본부 막사 안에서 누군가에 의해 피살된 후 이를 은폐하기 위해 사체를 폐유류고로 이동시켰다는 것을 방증한다”


“사고현장 사진에는 안 찍혔을 분 헌병대 수사기골에는 고인의 두부 인근에 골편이 산재돼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또 피의 흐름도 일정했다. 따라서 중대장 전령 보직 후 중압감과 중대장의 만행에 견디지 못해 자살을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1984년 강원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다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돼 ‘80년대 대표적 군의문사 사건’으로 꼽혔던 ‘허원근 일병 사망 사건’을 두고 타살이냐 자살이냐를 두고 대학 캠퍼스에서 원고, 피고측의 치열한 법정공방이 펼쳤다.


허 일병 유족이 11억 5천만 원을 배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재판이 열린 28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모의법정.


이날 재판은 서울고등법원이 지난 3월 28일 국내 최초로 연세대 로스쿨에서의 캠퍼스 열린법정을 개최한 이래 광주지법, 청주지법에 이어 네 번째로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강민구 부장판사)가 진행한 캠퍼스 열린법정이었다.


열린법정은 지역사회 속에 위치한 대학 공간을 활용하면서 재판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친밀도를 높이고 또 투명하고 열린 사법 체험을 통해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증진시키기 위함이다.


특히 이날 재판은 1980년대 대표적 군의문사 사건으로 많은 논란이 된 사건(민사재판)으로 국민적 관심이 큰 주요사건에 대해 사회적 공론을 활성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것.


강민구 재판장이 재판에 앞서 “고인이 사망한지 어언 30년째로 그 부모형제는 아들을 땅에 묻고 지금 이 자리에 나와 있다”며 “기록이 500쪽짜리 14권에 달하는 방대하고 복잡한 사건이지만 법원의 참 모습이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길 바란다”며 취지를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2시간 반가량 진행된 이날 법정에는 로스쿨 재학생을 비롯 일반 대학생, 교직원 및 대학 인근 지역주민 등 200여명이 법정을 가득 매웠고 재판 후에는 방청객들과 직접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허 일병은 1983년 9월 28일 육군 입대, 이듬 해 2월 7사단 3연대 1대대 3중대 중대본부 중대장 전령 업무를 수행하든 중 총성 직후 중대본부 내무반에서 남쪽 50m 폐유류고 뒤에서 오른쪽, 왼쪽 흉부, 머리 각 1발의 총상을 입은 채 사체로 발견됐다.


허 일병 사망 당시 군 당국은 자살로 결론지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타살로 규명하고 군 당국의 조직적인 은폐가 있었다고 밝혔지만 국방부 특별조사단은 자살이라고 발표하면 법정이 공방이 벌어졌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의 사망을 타살로 판단, 국가가 고인의 유족에게 9억2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이날 재판은 망인이 어떤 경위로 사망했는지 대해 이를 조사한 각 국가기관이 내린 결론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쌍방 당사자 사이에 사망 경위 및 법의학적 쟁점에 대한 공방이었다.


자살로 볼 경우 자살동기가 부족하고 사고 사진 상 사체 주변에 뇌조직, 골편이 존재하지 않은데다 흉부 총창 후 재차 총 발사가 가능한가 여부였다. 타살로 경우에는 3개의 총창 모두 생존 시 또는 근접한 시간에 났고 막사 내에서 총상이 있었다고 볼 말한 정황증거가 부족할 뿐 아니라 머리 부분 혈흔 흐름이 한 방향으로 사체가 이동되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한 의문점이었다.


항소를 제기한 피고 국가측은 “출혈량, 총상부위 등 고려할 때 허 일병 스스로 오른쪽 가슴에 먼저 발사한 후 왼쪽 가슴과 머리에 권총을 발사했고 사체의 이동 흔적이 없을뿐더러 혈흔의 흐름도 일정했다”며 원심 인정의 사실관계를 반박했다.


이에 유족 원고측은 “사후 6시간 내 형성된 손상은 생전 손상인지 사후 손상인지 구별하기 어렵고 사체 이동 여부 또한 사진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며 “11시 경 총성은 사건 조작을 위한 것일 수 있다”며 재 반박했다.


특히 피고측은 “의문사위의 1차 조사결과 발표 시인 2002년 8월경 불법행위 및 가해자를 알았다고 보아야 한다”며 “따라서 3년이 지난 2007년 4월에 소를 제기하지 않았고 사건발생일인 1984년 4월의 불법행위 시부터도 5년이 경과했다”며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했다.


앞서 1심은 “의문사위의 1차 조사결과 발표 전까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어려웠고 그 후 국방부 특조단의 재조사 결과 발표 등으로 의문사위의 2차 조사결과 발표(2004년 6월)까지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이 불가능하였고 또 소멸시효 주장은 신의칙에 반한다”며 소멸시효 완성을 부정했다. 이날 항소심의 선고는 오는 8월 22일 있을 예정이다.


한편 서울고등법원은 “이같은 ‘캠퍼스 열린법정’ 프로그램을 연이어 실시함으로써 사법부와 국민 사이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안으로서 정착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오는 7월 제3회 프로그램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성진 기자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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