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4 / ‘정확’할 것인가, ‘적합’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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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4 / ‘정확’할 것인가, ‘적합’할 것인가?
  • 법률저널
  • 승인 2013.05.1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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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열정’ 혹은 ‘도전’보다는 ‘균형’이란 말이 훨씬 가슴 설레는 단어로 다가온다. 열정과 도전이 한 방향의 종착점만을 지향한다면, 균형이란 단어에는 엇갈린 쌍방의 무수한 공격과 후퇴로 찾아낸 절묘한 접점에서 여유로운 평화와 서슬 퍼런 긴장의 느낌이 함께 배어 있기 때문이다. 법학에는 문외한이지만 짧은 감정평가사 수험 시절 민법과 행정법을 통해 ‘법률적합성’과 ‘법적안정성’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무슨 뜻인지 설명하는 강사의 말을 듣다 불현듯 ‘균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법을 지탱하는 두 개의 단단한 기둥이라는 강사의 설명이 귓전을 스치면서도 ‘균형’이란 단어의 어감이 새롭게 뇌리에 박힌 순간이었다.

 

얼마 전 감정평가의 타당성 심사 주체가 한국감정평가협회에서 협회와 한국감정원으로 이원화됐다. 협회를 단일창구로 하면 문제가 불거진 감정평가사의 감정평가 결과에 대해 팔이 안으로 굽듯 타당성 검토를 맡은 다른 평가사가 선심성 사후 검토를 할 게 우려된다는 외부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단일창구가 갖는 위험성을 내부와 외부의 동시 감독으로 이원화시킨 건 어찌 보면 사후 관리의 균형을 도모한 것이 아닐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유야무야 넘어갈 소지를 없애는 대신 내부의 소명기회를 충분히 주고 이해관계 없는 제 3자의 객관적 검증을 가미하는 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공시가격 평가의 단수제를 점진적으로 도입하려는 법안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되었다 한다. 새 정부가 약속했던 여러 부문의 복지예산을 증세 없이 확보하자니 지출을 줄여야 하고 각 부처에서는 세출 항목 중 우선 삭감할 수 있는 예산을 검토하면서 국토교통부는 공시업무 예산을 건드리려는 것이다. 현재 표준지와 표준주택 가격 평가 시 동일 지역에 대해 두 명의 감정평가사가 각기 독립적으로 평가에 임하고 있다. 복수 평가로 불필요한 예산이 낭비된다고 지적할 수도 있지만 동일한 물건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이 충돌해 절묘한 균형점을 형성하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 역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굳이 깐깐한 감정평가사가 아니더라도 수 천 개의 표준지와 표준주택 가격을 평가하다 보면 각기 ‘적정’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이 불일치하는 건 비일비재하다. 쌍방 간 미세조정의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충분하다.

 

이렇게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으로 감정평가의 필요성을 단정 짓다 보면 감정평가는 ‘정확성’보다는 ‘적합성’에 방점을 찍기 쉽다. 필자가 거래하는 한 금융기관의 여신담당자는 간혹 평가사의 입장에선 무리(?)한 부탁을 하곤 한다. 신용 좋은 우량 고객에게 필요한 자금을 꼭 대출해 줘야 하니 매수한 금액보다 높은 담보평가액을 내 달라는 것이다. 채권회수의 안정성 측면에서 시가 보다 낮게 평가되어야 하는 담보평가에서 매매금액도 아닌 그 이상의 담보평가액을 요구하니 난감할 수밖에 없다. 대출해 줄 금액을 정해 놓고 역산해 담보평가액을 맞춰 달라는 말인데 매매금액 이상으로 평가할 수 없는 사정을 뻔히 안 담당자가 본인의 희망금액에서 조정하는 과정을 통해 최종 담보평가액이 매매금액으로 귀결되도록 절차를 밟아 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최근 들어 감정평가 의뢰인은 더욱 더 그들의 사정에 부합한 감정평가 결과를 요구하고 있다. 금융기관 대출 담당자의 다소 무리한 요구 사항을 거절하다 보면 거래 관계는 깨지지 십상이다. 해당 평가기관을 대신할 평가 기관은 도처에 널려 있으니 평가 수수료에 목 맨 ‘적합한’ 평가 기관이 그 자리를 대체할 공산이 크다. 고정 거래처인 금융 기관이 떨어져 나가는 건 담당 평가사에겐 살 떨리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의뢰인의 요구에 ‘적합한’ 감정평가를 할 지, 전문가의 입장에서 ‘정확한’ 감정평가를 할 지 매 순간 고민하게 된다. ‘적합성’이 의뢰인과 평가자가 서로 한 발씩 물러선 ‘균형점’이라고 왜곡될 때가 실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이용훈 (주)대화감정평가법인 감정평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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