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권불십년, 정숙자 시인의 “뿌리깊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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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권불십년, 정숙자 시인의 “뿌리깊은 달”
  • 법률저널
  • 승인 2013.03.2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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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지난 해 여름, 필자는 시집을 한 권 출간하였다. 아주 평범한 시들로 채워진 나의 독백집이었다. 웬만한 이야기에는 기 죽지 않는 필자지만, “시” 이야기만 나오면 괜히 기가 죽는다. 내가 보아도 그리 썩 뛰어난 시를 쓰는 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보 같지만 내어놓고 “나는 시를 그다지 잘 쓰지 못하는 시인”이라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현대시의 난해성 앞에 놓이게 되면, 평범한 시인마저 우롱하는 듯 이해의 경계를 넘나드는 난해시인들의 시적 발상 앞에 고개를 휘휘 내젓게 된다. 결국 내 시적 상상력의 한계를 절감하며 난해시인이 보내온 난해시집을 집어던져버리고 만다. 그러면서 내 머리를 북북 그으며 “아, 나는 이 수준밖에 안 돼!”하고 절규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니 시해석에 뛰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반 독자들이 이러한 복잡난해한 시를 멀리 하는 것도 일응 수긍이 가지 않는바 아니다. 한편 난해시가 아닌 데도 시인들의 한 권 시집에서 “아, 참 좋다!”하는 감동 내지 동감을 자아내는 시를 발견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양산되는 시 속에서 감동을 주는 시를 그리 많이 발견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든 시인은 한 편의 작품을 생산코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뇌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렇다. 아마도 경험과 상상의 영역이 다른 데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숙자 시인의 시집 “뿌리깊은 달”에 수록되어 있는 시 “연산/검산”이라는 시를 본다. “과학자가 빛의 속도를 말할 때/ 철학자는 생각의 속도를 말한다/ 철학자가 생각의 속도를 말할 때/ 시인은 상상/환상의 속도를 말한다/ ∴ 시인은 가장 빠른 자이다// 시집 한 권을 읽는 동안/ 독자는 필자의 신민이 된다/ 신민은 필자에게 푹 빠진다/ 어법에 생각에 상상/환상의 속도에/ 동요된다 때로는 필자를 가감승제/ 적분한다 시집 한 권 읽는 동안/ 신민을 매혹시키지 못하는 시인은/ 권력 상실! 가장 느린 자이다”


정 시인은 빛의 속도, 생각의 속도, 상상/환상의 속도 중 상상과 환상의 속도가 가장 빠르다고 주장한다. 물질계와 비물질계가 대립하는 경우 물질계가 비물질계를 따라 올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아무런 힘도 없는 시인이지만, 시집 한 권을 통해, 아니 시 한 편을 통해 시인은 독자의 정신을 지배할 수 있다며 시인의 위대함을 자화자찬한다. 그 자화자찬에 박수를 보낸다. 어느 누가 감히 시인의 자화자찬을 막아설 수 있겠는가? 시인들은 그러고들 산다. 세상권력 하나 없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독자에 의해 해부당하는 시인은 생체실험 당하듯 고뇌한다. 갈갈이 찢겨져 폭로되고 만다. 시인들은 신민을, 독자를 매혹시킬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는 현실을 너무나 냉엄하게 인식하고 있다. 독자를 매혹시키지 못하면 시인은 자신이 간신히 붙들고 있던 세상의 쥐꼬리만한 권력을 상실하게 되고, 이 세상의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가장 느린 자가 되고 만다. 불쌍한 일이다.


그렇다. 세상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천국이다. 그렇기에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지도 모른다. 최근 세 사람의 대표적 권력상실자가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재철 전 엠비시 사장, 강만수 산은금융회장이다. 세 사람 모두 이명박 정권 하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기관, 언론기관, 금융기관의 정점에 있었다. 그들은 조직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권력을 행사하였고, 그 결과 조직을 만신창이로 만들거나 고환율정책을 통한 경제민주화의 고갈상태를 빚고 말았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퇴임식을 가진 이틀 후 미국으로 도피성 출국을 시도하다가 야당 및 시민단체들의 고소고발사건에 발목잡혀 출국금지를 당하였다. 전직 국정원장은 살아있는 국가기밀금고이다. 그래서 퇴직한 후에도 일정 기간 경호원들에 의해 신변보호를 받도록 되어 있다. 적성국가에 국가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런데도 퇴직하자마자 홀홀단신 외국으로 도피성 외유를 떠나려 한 것은, 소위 국정원녀 댓글사건으로 상징되는 국정원의 국내정치관여행위의 최상급지시자로 고발된 사건수사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일정 기간 외유하고 돌아오면 사건이 흐지부지 종결되어 버릴 것을 희망한 나머지 외유성 출국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으로의 출국이 금지되었다. 앞으로 수사기관이 얼마만한 의지를 가지고 그에 대해 수사를 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국정원이 국정법과 국정원직원법을 어겨가면서 국내정치사찰이라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는지 밝혀져야 할 것이다. 이것과 덩달아 국정원의 국내정치관여를 고발한 민주통합당의 진선미의원과 보좌관 및 기자들의 이메일에 대한 해킹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이것도 국정원비리 폭로와 관련된 점이 있는지 여부가 밝혀져야 할 것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재직 중 개인비리까지 정보가 수집되어 내사단계에 있다고 하니, 공사 간에 어떻게 사건이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김재철 엠비시 사장 역시 규정에 어긋난 인사권 남용이 직접적 발단이 되어 방문진이사회에서 해임되었다. 그러자 곧바로 사표를 제출하였다. 이를 두고서도 이사회 해임결의 후 주총에서 해임결의되면 퇴직금 3억5천만 원 정도를 받지 못하게 되어 있는 내부규정을 피하여 위 돈을 받아가고자 꼼수를 부린 것이라는 사회적 비난이 거세다. 김재철 사장이 재직하고 있는 동안 공영방송 엠비시는 공정보도의 상실, 여론왜곡 및 특정인이나 단체에 대한 유리한 여론조장, 언론의 사유화 및 공금유용, 특정인에 대한 출연특혜 등 수많은 의혹들이 제기되었고, 이 때문에 언론사 최장기간 파업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그의 사표 후 직원들 사이에서도 친김재철사장계와 반김재철사장계의 입장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니, 그 후유증 치료에만도 상당시간이 허비될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직원들을 썩은 무 자르듯 잘라대던 김재철 사장이 이사회결의를 통해 잘리는 것을 보며, 권불십년이라는 사자성어를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강만수 산은금융회장 역시 기재부장관 등 정부의 환율정책담당최고책임자로 재직하며 대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고환율정책을 장기간 실시하여,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거덜내고, 결국 현재의 빈곤층양산이라는 최대의 경제정책실패를 가져온 장본인으로 권력자와의 친분으로 금융기관의 수장이 되더니, 결국 임기를 1년 남겨두고 자진하여 사표를 내고 말았다. 그 역시 권력무상을 실감할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권력무상”이라는 단어 자체를 망각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평생 그 권력을 향유하며 호의호식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고 말이다. 하지만 권불십년이라 했고, 화무십일홍이라 했다. 역사는 우리에게 그 권력무상의 교훈을 수도 없이 반복하여 가르치고 있지만, 막상 높은 자리에 오르면 전후좌우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세상권력 하나 없는 정숙자 시인이 알고 있는 세상이치를 실제 권력자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은 불쌍한 일이다.  빛의 속도와 생각의 속도를 앞지르는 시인의 상상의 속도는 가히 불가측량이다. 시인의 상상은 창조의 시간부터 종말의 시간까지 이어지고, 우주의 끝에서 우주의 끝으로 비행한다. 그것은 순간이고, 그 순간은 영원이다. 그러기에 진정한 시인은 세속을 초월한 달관자가 되는 것이고, 독자에게 그러한 상상력의 동인을 제공하여 이 세상을 따뜻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정숙자 시인의 또 다른 시 “나의 作詩學”을 본다. “상상력 꼽치는 데 왕도는 없다 봉투 만든다/‘헌 종이에 생명을’ 부여하는 일, 죄 아니다 봉투 만든다/ 부쳐 온 책 봉투는 다시 책 봉투/ 각양각색 이면지/파지로는 A4용지/ 넘어간 달력으로는 네 귀의 합 360?짜리/ 편지 담을 봉투 만든다”(일부).


정 시인은 내게 위 시집을 부쳐오면서 봉투에 “헌 종이에 새 생명을”이라는 글귀를 적어 보냈다. 다른 이가 보내온 책봉투를 뒤집어서 다시 봉투를 만들어 재활용한 것이다. 생명중시사상이다.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서 시 한 편에 매달리는 정 시인의 시를 대하는 태도는 “헌 종이마저 살리고자 하는 생명사상”을 근원으로 하고 있다. 물질풍요시대에서 편지봉투를 뒤집어 재활용하고, 버려진 지난 달력이나 이면지 등을 모두 재활용해 봉투를 만들고 그것을 재사용하는 노력은 지인이 선물로 보내온 국어사전에 “대충”이라는 단어를 찾아 빨간색 펜으로 자를 대고 정확히 가둔 뒤 “내 사전에 <대충>이란 없다”라고 스스로 천명하는 “나의 作詩愛 ”라는 또 다른 시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좋은 시를 읽은 것은 기쁜 일이다. 시를 읽지 않는 자의 영혼은 어쩌면 겨울철 고목나무에 비유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봄이 오면 새 잎이 돋고 꽃이 피어나듯, 고갈된 영혼에 새 생명을 줄 수 있는 시 한 편을 가까이 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정숙자 시인의 신작 시집 “뿌리깊은 달”을 독자들에게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물질풍요, 황금만능사상에 쩔어 있는 신자유주의시대에서, 한 종지기도 되지 않을 영혼의 풍요를 위해 정신을 가꾸는 치열한 삶의 모습을 배웠으면 싶기 때문이다. 권력, 참으로 무상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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