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제18대 대선과 김미정 시인의 “보도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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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제18대 대선과 김미정 시인의 “보도블록”
  • 법률저널
  • 승인 2012.12.1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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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 / 변호사 / 시인

 

제18대 대선일이 닷새 후로 다가왔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박빙선거가 예상되어 어느 대선보다 국민들의 관심이 뜨거워 보인다. 여론조사상 앞선다는 박근혜 후보, 역전시키는데 성공했다는 문재인 후보, 양 진영의 팽팽한 주장이 서로 물러설 줄 모른다. 이번 선거를 통해 어느 분이 당선되든 대한민국은 상당한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경제민주화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경제민주화를 기본사상으로 한 경제정책이 수립될 것이고, 남북 간의 대화 채널도 부분적으로나마 복원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으로 상징되는 등록금 인하나 장학금 지원 폭이 확대될 것이고, 열악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사회복지정책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젊은 군인들의 복무기간단축이나 급여 인상 등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고, 대북안보에 대한 정책 또한 광범위하게 변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국민유권자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팽팽한 선거 판세는 국가발전을 위해 긍정적으로 기능할 것 같아 좋아 보인다. 후보자들이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거가 일방적으로 전개되면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어 공약도 대충대충 세우거나 당선된 후에도 실행의지가 그리 강하지 않지만 박빙의 승부일 경우에는 국민의 지지를 조금이라도 더 받아야 할 절체절명의 긴박성 때문에 공약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고 당선된 후에도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공부 중인 아들이 재외선거확인증이라는 확인서 사진을 인터넷으로 보내왔다. 차를 타고서 한 시간 넘도록 먼 곳에 위치한 투표소를 찾아가 투표를 하였더니, 재외국민투표확인증을 발급해 주었다는 것이다. 기특하다고 칭찬해 주었다. 이처럼 어떤 이는 외국에서, 어떤 이는 항해 중인 선상에서, 어떤 이는 일반 부재자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다. 80% 가까운 국민이 꼭 투표하겠다고 하였다니 이번 투표율은 상당히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 앞으로는 인터넷투표와 같은 사이버투표가 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티 첨단기술의 발달은 SNS로 상징되는 선거운동 혁명을 불러 왔고, 장차 투표방식도 바꿀 태세이다. 새누리당이 되었든 민주통합당이 되었든 새로운 역사의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으니, 누가 되든 국가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개선책을 내어 놓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직선거법은 선거일이 다가오면 올수록 선거운동을 더 잘 하도록 장려하는 대신 하지 말라고 금지시키는 규정이 너무 많은데, 이 점은 문제라고 하겠다. 선거일로부터 1주일 이내는 여론조사결과를 공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자신의 지지자를 찍으라는 의사를 발표할 수도 없도록 되어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를 표명하며 다른 유권자에게 그의 장점을 알리고 투표권유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예 하지 못하도록 금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옛말처럼, 지나치게 혼탁한 과거의 부정선거 경험이 이러한 제재규정을 양산하는데 일조를 했겠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으므로 국민의 자유로운 언로 보장을 통해 모든 국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도록 공직선거법을 다시 손볼 필요성이 크다고 하겠다.


대선 닷새를 앞두고 김미정 시인의 “보도블록”이라는 시 한 편을 소개한다. “밟히기 위해 태어났지/ 오늘도 태양 아래// 우린 두 손을 맞잡은 채/ 거울처럼 깨져나간다/ 멀리 더 멀리/ 씩씩하거나 무모하게/ 튕겨나간다// 누군가 갈아엎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 잡을 수 없는/ 껴안을 수 없는/ 발바닥의 통점들// 깨지고 깎이고/ 닳아지는 것/ 그렇게 이루어지는/ 내 것이면서 네 것인/ 최초 그것은 빛난 것이었고/ 지금은 더 빛나는/ 조각난 파편이/ 횃불처럼 타오르는 도시// 투명에 갇힌/ 비밀들처럼// 날카로운 거울의 길이/ 나에게서 너에게로/ 빠르게 번져간다”(‘보도블록’ 전문, 시와 표현 2012 겨울호에 발표). 
보도블록, 원초적으로 밟히기 위해 태어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새로 구워진 반들반들한 보도블록은 자신이 그렇게까지 처참하게 짓밟힐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반질반질한 새 모양으로 도로에 깔릴 때 이웃한 보도블록과 짝을 맞춰 튼튼하게 길바닥에 깔릴 때 그렇게 모서리가 부서지고, 표면이 깎이고, 닳아빠질 것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보도블록을 향해, 너는 보도블록일 뿐이라고 질타한다. 밟혀라, 닳아져라, 깨져라라고 말이다. 파편으로 산산이 깨어져 천지사방으로 흩어지는, 그러다 종국에 갈아엎어지는 보도블록, 우리는 그러한 보도블록이 산재한 세상에서 살아 가고 있다. 영원할 것 같은 강자도, 한순간에 짓밟히는 약자도 긴 영겁의 세월 속에서 들여다보면 모두 보도블록일 뿐이다. 김미정 시인의 보도블록을 읽으며, 시인은 전혀 이번 대선을 의식하며 이 시를 쓰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독자는 이번 대선에 대한 적절한 은유의 시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니 시의 힘은 위대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정권교체로 이루어질지 정권교대로 이루어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새로운 보도블록으로 상징될 수도 있는 5년 전 출범한 이명박 정권은 이번 대선을 통해 누군가로 갈아엎어질 것이다.


보도블록의 조각난 파편들이 횃불처럼 타오르는 도시, 투명에 갇힌 비밀들처럼 이미 들통나 버린 비밀들이 날카로운 국민의 심장소리가 되어 나에게서 너에게로, 너에게서 나에게로 빠르게 번져가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좋은 후보를 뽑아 대한민국의 미래를 창조해 나가야겠다는 의지로 말이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이번 대선이 지나치게 보수 대 진보의 단절된 대결구조로 나아가고 있어 대선 후에 국민통합이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필자는 종종 과연 이념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공산주의는 나쁘고 자본주의는 꼭 좋은 것인가? 사회주의는 나쁘고 자유민주주의는 반드시 좋은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중국의 지도자 등소평이 했다는 “흑묘백묘론”이 생각나곤 한다. 검은 고양이가 되었든 흰 고양이가 되었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그의 생각은 이념에 앞서 실용주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한다. 스스로를 이념의 틀에 가두게 되면 생각이 경직되게 되고, 상대방을 포용하는 마음이 부족하게 되어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한다.


우리는 지나치게 진보라거나 보수라거나 하는 이념에 사로잡혀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인데도 선거철만 되면 이분법적 태도를 보이며 적대시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런 현상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면 선거가 끝나도 국민통합이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노파심에 염려스럽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결정하였다는 마지막 여론조사결과에 의하면, 아직 표준오차 범위 내에서 시소게임을 벌이고 있는 두 호보의 운명과 대한민국의 운명은 이제 몇 프로 남지 않은 부동층의 향배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순간에 보수가 진정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진보가 진정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주 간혹 한 표의 행사를 위해 고뇌하는 이웃이 있는가 하면, 너무 쉽게 한 표를 손쉽게 행사하는 이웃도 있다. 이미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 있다 보면 새로운 변화에 무감각해지게 되고, 어떤 일이 있어도 그 결정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보수는 좀 더 완강하고, 진보는 좀 더 가변적이다. 그것은 현상유지를 바라는 보수의 가치관과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의 가치관의 본질적 차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안정된 보수와 가변적 보수의 대결에서는 보수가 이길 가능성이 더 높다. 왜냐하면 이미 안정된 수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 번 변화의 바람이 불면 진보는 질풍노도가 되어 함께 힘을 모으게 되고, 그 힘은 가히 폭발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1987년 노태우,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 후보들의 선거전 이후 항시 다자구도로 펼쳐지던 대통령선거가 25년만에 처음으로 보수 대 진보 후보가 1 대 1로 대결하는 대선구도가 마련되었다. 어찌 보면 이번 선거가 분수령이 되어, 앞으로 우리나라는 미국의 민주당 대 공화당처럼 진보 대 보수의 1 대 1 구도가 정착될지도 모르겠다.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보수가 잘 하면 보수의 집권 연장이, 진보가 잘 하면 진보의 정권 연장이 이루어질 것이기에, 보수가 되었든 진보가 되었든 정치를 잘 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미정 시인은 “보도블록”을 통해 밟히기 위해 태어난 보도블록의 운명적 일생을 잘 그려 놓고 있다. 하지만 김미정 시인의 보도블록은 희망적이다. 변화를 추구하고, 최초의 빛남에서 더 나아가 낡은 것의 밟히며 밝아지는 횃불 같은 파편들이 나에게서 너에게로, 너에게서 나에게로 빠르게 번져간다고 설파한다. 누군가 갈아엎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일망정 발바닥의 통점을 느끼며 깨지고 깎여온, 그러한 절차탁마의 과정을 거쳐 더 빛나게 타오르는 도시, 모든 도시에는 보도블록이 깔려 있다. 우리 모두가 매일 밟고, 밟고, 밟고 있는 보도블록을 향해 세상의 이치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는 김미정 시인의 시는 강하다.


이제 국민의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북한의 인공위성발사성공이 대륙간탄도미사일운반용 무기로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안보강화와 안보무능을 주장하는 여야 간의 시각차, 국정원 여직원의 불법댓글실행이라는 국정원의 정치공작의 진실게임을 둘러싸고, 막판 선거전이 요동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만 알아두자, 이미 선거는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냥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된다는 것을. 단지 우리는 몇 날 후를 미리 알지 못할 뿐이라는 것을. 여전히 이 사회 곳곳의 보도블록들은 외치고 있다. 밟히고 밟혀 너무 많이 아프다고. 제발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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