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제18대 대선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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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제18대 대선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 법률저널
  • 승인 2012.11.3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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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 / 변호사 / 시인

 

마가렛 대처 전 영국수상은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생각은 행동을 만들고, 행동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성격을 만들고, 성격은 운명을 만든다.”라는 말이 평생 자신을 지배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확률게임을 믿는 필자는 이러한 가치에 동감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생각능력”은 다른 동물과 크게 차별되는 인간의 특징이라고 할 것이다. 필자가 강의시간에 제자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충고는 바로 “5분 후를 생각하라!”라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5분 후의 자신의 모습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결코 인생에서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겨우 5분?”이라고 가벼이 여길지 모르지만, “이러한 5분은 영원한 미래”라고 믿는다. 5분 후에 5분 전의 자신의 모습을 후회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5분 전의 생각과 판단은 옳은 것이고, 정당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간혹 아주 화가 나는 일을 겪거나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필자는 습관적으로 5분 후를 생각한다. 어찌 보면 아주 냉정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5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참으로 필요하다. 5분 후에 내 자신의 지금 모습을 생각해 볼 때 “화를 내며 이성을 잃고 방방 뛰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오르면 아주 웃기는 모습이기 때문에 필자는 스스로의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심호흡을 하는 습관이 있다. 수많은 사람이 5분 후의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보고 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형법전의 수많은 죄명을 하나로 종합하면 “들킨 죄”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죄를 범하고 나쁜 짓을 밥 먹듯이 하더라도 들키지만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고, 단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주 사소한 것도 들키면 그것만으로 치명적 단죄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갈수록 세상은 “죄의 들킴이 높은 확률”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미 현대사회는 조지 오웰의 1984년의 동물농장세상이 되고 말았다. 모든 것이 까발려지고, 녹음되고, 녹화된다. 기록되고 저장된다. 결국 이러한 까발림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염치없음과 뻔뻔스러움”을 끝까지 고집할 수 있는 강심장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역설적 생각마저 든다. 문제는 그러한 염치없음과 뻔뻔스러움을 얼굴에 깔고 사는 사람은 그런 대로 살아남겠지만, 염치를 알고 반성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이 점차 줄어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반성하는 자를 향해 뻔뻔스러운 자들이 그 반성하는 자세를 공격하며 “너야말로 잘못한 자”라고 몰아세우는 현상이 이 사회에 만연되어 가고 있어 걱정스럽다. 그래서 심약한 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끓는 생명경시풍조가 만연되고 있어 걱정이다.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자살하고 있다. 하루 평균 50명 가까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대한민국, 분명히 많은 문제가 있다. 우리는 개선책을 찾아야 하고 그것의 첫출발은 정치에서 일 수밖에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의 양자대결로 제18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지게 되었다. 이러한 대결구도와 관련하여 “박정희 대통령의 딸과 노무현 대통령의 친구”의 싸움이라고 평하는 이도 있고, “과거와 미래의 싸움”이라고 평하는 이도 있다. “보수 대 진보의 싸움”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개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의 싸움”이라고도 한다.  “독재세력 대 민주세력의 싸움”이라고도 하고, “우파와 좌파의 싸움”이라고도 한다. 노무현 정권이 재집권에 실패하였을 때 노무현 정권에 참여했던 이들은 스스로를 “폐족”이라고 불렀다. 민주주의발전을 위해 재집권에 성공했어야 했는데, 당시 한나라당 후보 이명박 대통령에게 정권을 내준 것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였다.


지금 이 말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입에서 거론되고 있다. “스스로를 폐족이라 불렀던 노무현 정권의 제1실세였던 문재인 후보”의 대통령 후보 등장은 “스스로 폐족이라고 불렀던 자가 정권을 달라고 하는 것”이어서 부당하다는 것이다. 일응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스스로 폐족”이라고 평가했던 것은 “자신들의 정권 재창출, 즉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해 철저하게 반성”하겠다는 자기 성찰의 반성적 고찰에서 나온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즉 자신들의 실정을 반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성하는 자에 대해서 “왜 반성하느냐?”고 공격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잘못을 반성하는 자에 대하여 용서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폐족” 발언은 한나라당이 차떼기당의 오명 속에서 정권 창출에 실패하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황당한 탄핵결의에 따른 대대적 역풍으로 심대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였을 때 “천막당사”로 옮겨가며 스스로를 반성했던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어서 이 역시 옳다. 한나라당이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반성하는 자세에 대하여 민주통합당 쪽에서도 결코 비난할 것은 아니다. 반성하는 자를 향해 “왜 반성하느냐”고 추궁하며 비난하는 것은 “반성하지 말고 계속 부당하거나 나쁜 짓을 하라!”는 억지여서 옳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을 반복하는 자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만, 반성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 정치는 이러한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오귀스트 르네 로댕의 조각품 “생각하는 사람”은 로댕의 또 다른 조각품 “지옥의 문” 위에 부착되어 있다. 스스로 독립된 조각품이면서 지옥의 문에 부착되어 있는 종속작품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옥의 문 앞에 서는 모든 이들은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 지옥의 문 앞에 서서 우리 영혼이 지옥의 문안으로 들어가게 살아왔는지 아니면 천국의 문안으로 들어가게 살아왔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지옥의 문밖에서 천국의 문안을 상상하며 생각에 잠길 것이다. 아니 어쩌면 강제로 지옥의 문안으로 끌려들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두려워 떨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은 일생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지옥의 문앞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되면 이미 늦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5분 후의 스스로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생각해야 한다. 지금 올바르게 생각하면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고, 올바른 행동이 모이게 되면 좋은 습관을 가질 수 있다. 좋은 습관이 모이게 되면 저절로 좋은 인격이 되고 훌륭한 성격이 만들어질 것이고, 좋은 성격대로 남에게 베풀고 살면 운명이 행복해질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지옥의 문이 아닌 천국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번 대선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유력 후보 모두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며 노력하겠다고 하니 그 말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우리에게는 정치인들로부터 수많은 배신을 당해온 트라우마가 있기에 “이번 대선에도 또 한 번 속아 볼까?”하는 어줍잖은 생각이어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다. 로댕이 37년이라는 긴 세월, 어찌 보면 조각가로서의 일생을 바쳐 완성시킨 역작 “지옥의 문”은 2013년 미래를 향한 우리에게 우리가 가진 첫 번째 열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묻고 있다. “붉은 색과 노란 색의 싸움”이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측을 향해 빨갱이 또는 종북주의세력이라 강변하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측은 상징색으로 빨간색을 사용하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측을 향해 유신독재의 잔재라고 혹평하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측은 상징색으로 노란색을 사용하고 있다.


빨간색은 불과 태양을 상징하는 색으로 열정, 활력, 사랑 등을 연상시킨다. 빨간색을 좋아하는 어린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대체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하고 적응력이 뛰어난다. 성격도 외향적이고 적극적이며 개방적이지만, 지나치면 갈등을 유발하고 심한 공격성을 드러낸다. 빨간색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는 행복한 상태를 유발해 스스로 자아만족에 빠지지만, 부정적으로 작용할 때는 적의에 차거나 격한 행동을 보이며 상대방을 공격하며 괴롭히는 경향이 있다. 새누리당의 빨간색이 과연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와 달리 노란색은 순수함과 밝음, 명랑함과 즐거움을 상징한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어린 아이들을 관찰해 보면 조금은 타인에게 의존적이며 타인의 주목과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성향을 보인다. 대체로 생각이 많으며 나름 성취동기가 강한 편이다. 명랑하고 희망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장점이 있는 반면 소극적이거나 우유부단한 성향을 나타내는 단점이 있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남과 잘 어울리며 그룹의 구성원으로 참가하는 것을 좋아한다. 민주통합당의 노란색이 과연 어떻게 기능할 것인지 역시 지켜볼 일이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양 후보가 “향후 5년간 자신이 국정을 책임지게 될 경우 어떤 정책을 추진할 것인가?”를 알리며 표를 구하는 정책선거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선거가 시작되는 초반부터 이러한 기대는 무망하게 되어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진영 논리에 의한 이념대결”로 나아가고 있어 정책이 실종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어 심히 염려스럽다. 이제 “생각하는 국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이게 말같이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비록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하였지만 안철수 후보의 파란색 영역에 존재하는 유권자들의 표심이 선거결과를 좌우할 것이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이렇게 수많은 색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삼원색이 아름답게 융합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잡탕이 될 것인지 남은 선기기간 동안 우리 국민이 얼마나 5분 후를 지혜롭게 생각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지옥의 문인가? 아니면 천국의 문인가? 생각 없이 사는 우리에게 로댕은 생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생각하라! 그리고 행동하라! 그리고 스스로의 운명을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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