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법과 위법 사이의 그 모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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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법과 위법 사이의 그 모호함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12.11.0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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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하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하루하루가 판단의 연속이다. 특히 요즘은 소비의 시대이니 만큼 우리가 내리는 판단의 많은 부분이 구매할 물품의 선택과 관련된 것이다. 물건 선택하는 것도 품이 제법 많이 든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처럼 첨단과학제품인 경우에는 법서만 옆에 끼고 살아온 나로서는 도대체 무얼 기준으로 제품의 우열을 판단해야 하는지 오리무중이다. 그래도 물건 고르면서 하는 고민은 행복한 고민 아닌가? 나에게 선택권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판단하는 것이 의무이자 나아가 평생 직업이 되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로펌에서 변호사로 8년을 조금 넘게 일하는 동안 동일한 법률질의를 받은 기억이 별로 없다. 변호사로 일한 햇수가 늘어나면 비슷한 법률질의도 많아져서 일이 수월해질 법도 한데 어떻게 그렇게 매번 새로운, 그것도 전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질의가 들어오는 것인지 참으로 희한했다. 대부분의 법률질의는 “법률에 위반되는 것은 아닌지” 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에 관한 것이다. 여러 당사자 사이에 얽히고설킨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적법인지 아니면 위법인지, 누가 권리자고 누가 의무자인지를 판단하라고 한다. 무엇을 사야 하는 지도 판단하기 힘든 세상인데 실타래마냥 얽힌 타인의 일을 판단하라 한다. 누군가 법률가는 그렇게 골치 아픈 문제를 남을 대신하여 판단하고 해결해 주는 대가로 보수를 받는 거라 말했다.   


그런데 법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직업이 가진 문제점 중의 하나는 법률가의 법과 일반인이 생각하는 법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밤늦게 혹은 새벽 일찍 자동차를 운전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는 도로에 빨간색 신호등이 커졌을 때 주행을 계속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름 준법정신이 투철하여 정차를 한 경우에도 초록불로 바뀌기를 기다리는 동안 자신의 융통성 없음을 자책하고 있을 런지도 모른다. 도로교통법 조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하루에도 얼마나 많이 법을 위반하고 있는지 새삼 놀라게 될 것이다. 형법을 한번 보자. 형법 제329조는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타인의 재물이라면 그것의 가격이 1만원이든 1억이든 절취한 자는 동일하게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고자 한다면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법자로 만들거나(위 도로교통법의 예) 정의에 반하는 것으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니냐는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위 절도죄의 예).


반대로 법을 논리적으로만 엄격하게 적용하다 보니 법을 위한 법이 되는 경우도 있다. 최근의 횡성한우 판결은 2005년도의 “짝퉁갈비” 판결을 떠올리게 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는 살점이 없는 갈비뼈에 살을 붙여 갈비라고 팔면 죄가 되지만 살점이 있는 뼈에 살을 이어 붙여 팔면 축산물가공처리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최근의 횡성한우 판결 건을 보자. 대법원은 관련 규정이 없었다면 특정지역에서 단기간 사육했다 해도 지역명칭을 상표로 쓸 수 있다면서 횡성으로 옮겨 온지 2개월 미만인 한우를 일괄적으로 ‘도축준비기간’으로 보아 ‘지역명 상표를 붙일 수 없다’고 유죄 판결을 내린 원심은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판결했다. 일반인들은 2005년도 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갈비를 먹으면서 이것이 갈비뼈(살점이 있었는지를 불문하고)에 다른 부위살을 이어 붙여 만든 것이라는 것을 어디 상상이나 했겠는가? 횡성한우? 그것이 횡성에서 나고 자란 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을 이번에야 알게 되었을 게다. 


법률가들은 법률가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을 통해 법조문에 충실한 법해석과 적용을 훈련받는다. 그래서 법률가들은 법을 기술적으로만 해석하고 적용하는지도 모르겠다. 일반인은 가슴으로 판결을 하라하고 법률가들은 머리로 판결을 한다. 법률가의 입장에서는 할 말이 많다. 그게 법이라고… 법은 조문에 충실하게 해석해야 하고 그러한 해석에 의한 결론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법을 개정해야 할 문제지 판결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고… 법은 어렵다. 이러니 하늘도 알고 땅도 아는 진실을 왜 법원, 검찰만 모르냐며 억울해 하기도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기 어려운 만큼 어떠한 법해석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하기도 어렵다. 오늘의 정답이 내일은 오답이 될 수 있고, 나에게는 맞는 답이 다른 사람에게는 틀린 답이 될 수도 있는 게 법일 수 있다. 법 공부가 왜 이렇게 어렵냐고 푸념하지 말라. 10년, 20년을 일해도 알기 어려운 것, 그것이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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