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톨스토이의 “바보 이반”과 말바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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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톨스토이의 “바보 이반”과 말바꾸기
  • 법률저널
  • 승인 2012.11.0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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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 / 변호사 / 시인

 

“바보 이반”은 톨스토이가 말년에 쓴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이반에게는 세몬과 타라스라는 형이 있다. 큰 형 세몬은 권력욕에 불타는 장군으로, 악마의 유혹에 따라 군대를 강하게 만들어 약한 나라를 침범하여 승리하지만 나중에는 강한 나라를 겁도 없이 쳐들어갔다가 대패한 후 바보 동생 이반에게 얹혀 살게 된다. 작은 형 타라스는 상인으로 악마의 유혹을 받아 폭리를 취하여 큰 돈을 벌지만 나중에 더 큰 상인에게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가난뱅이가 되어 역시 바보 동생 이반에게 얹혀 산다. 한편 이반은 오직 농사만을 지으며, 바보스럽게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나중에 바보나라의 지도자가 된 후 함께 사는 바보들과 역시 일을 부지런히 하며 하루하루 근면성실하게 살아간다. 부귀도 명예도 권력도 원하지 않으면서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할 뿐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권력과 금력을 가졌던 두 형이 망해서 돌아온 후에도 묵묵히 그들을 보살피고, 악마의 유혹을 받고 이반의 나라를 쳐들어온 침략자들조차 이반의 평화롭게 사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 이반의 나라에 눌러앉아 살게 만든다. 그러면서 이반은 오직 하나의 원칙, “일해서 손이 굳어진 사람은 항상 식탁에 자신의 자리가 있지만, 부드럽고 하얀 손을 가진 사람은 먹다 남은 음식으로 먹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갈 뿐이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비롯해 장대한 스케일의 소설을 많이 썼다. 그런데 바보 이반의 이야기 줄거리는 너무 단순해서, 현실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철저하게 무저항주의에, 무노동무임금주의에, 네 것 내 것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들 협력해서 선을 이루며 살아가는 동화 같은 공동체나라가 바로 바보 이반이 살고 있는 나라이다. 큰 형 세몬처럼 똑똑하게 군대를 키워 다른 나라를 쳐들어가서 사람을 죽이다가 결국은 자기편도 죽임을 당하는 세상이 얼마나 어리석은 세상인지, 작은 형 타라스처럼 탐욕스럽게 돈을 벌어 호위호식하지만 브레이크를 걸지 못해 더 큰 탐욕을 좇다가 결국 패가망신하고 마는 세상이 얼마나 무의미한 세상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남의 것을 욕심내거나, 남을 괴롭히지 않으며 오직 성실하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 하는 삶이 어리석은 것 같지만 참된 평화가 있는 삶임을 가르치고 있다. 일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톨스토이가 말년에 들어 인생이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하고, 어린 손자에게 들려주고 싶어 쓴 것 같은 소설이 바로 “바보 이반”이다. 소설을 덮을 때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읽고 난 후 느꼈던 감동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제 18대 대통령 선거일이 50여일도 남지 않았다. 유력한 대선주자들 모두 모든 국민을 잘 살게 해주겠다며 이런 저런 공약을 내세우며 국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에 여념이 없다. 유력한 세 주자,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의 현재까지 발표한 선거공약을 보면, 향후 5년 동안 대한민국이 크게 개선될 것처럼 보인다. 검찰개혁을 통해 국가권력행사를 억제하고, 경제민주화를 실천하여 국민의 복지증대에 힘을 쏟고, 빈부격차를 해소하여 모든 국민이 더불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 반값등록금문제를 실현하고,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여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등 하나 같이 장밋빛 청사진을 펼쳐드니, 그 말대로만 된다면 마치 “바보 이반의 나라”가 도래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조차 한다. 하지만 그러한 장밋빛 공약 속에서 잊혀지고 있는 한 가지 사실, 이반의 나라가 내세우고 있는 원칙 “일하는 자만이 대접받을 수 있다.”는 대명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안 보여서 아쉽기만 하다.


“바보 이반”에서 세 명의 새끼 악마를 파견해 이반을 어찌 해보려다 실패한 늙은 악마는 스스로 이반을 멸망시켜 보겠다며 나선다. 그리고는 머리를 쓰지 않고 오직 온몸으로 일하고, 그렇게 얻은 결과물로 삶을 살아가는 이반에게 “머리를 쓰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며, 머리를 쓰면 더 큰 재물을 얻는다고 유혹한다. 이에 대해 이반은 그 늙은 악마에게 높은 탑에 올라가 머리를 쓰는 법을 이반의 나라 백성들에게 가르치라고 하여, 늙은 악마는 이틀에 걸쳐 높은 탑 위에 올라가 백성들에게 머리쓰는 법을 열심히 가르치지만, 바보 이반의 나라 백성 바보들은 그러한 늙은 악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틀 동안 높은 탑 위에서 바보들에게 머리쓰는 법을 가르치다 배가 고파진 늙은 악마가 바보들에게 빵을 가져다 달라고 하자 바보들은 그를 향해 “머리로 빵을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늙은 악마는 “바보 같은 당신들에게 머리쓰는 법을 가르치다 보니 말귀를 못 알아 듣는 당신들 때문에 내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프게 되었다.”라며 불평을 늘어놓다가 머리로는 결코 빵을 만들지 못한 채 기력이 약하져 전망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고 만다. 그런데 이를 본 바보들은 그 늙은 악마가 계단을 머리로 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던 늙은 악마의 머리가 다쳐서 터지게 되는데, 이를 본 바보들이 이구동성으로 그 늙은 악마가 했던 말, “머리를 쓰다 보니 머리가 터지게 아프다.”는 말이 실현되었다며 설왕설래한다. 그러면서 감탄한다. “결국 저 사람이 말한 게 사실이었군. 머리로 일하게 되면 가끔씩은 머리가 터지기도 한다고 했거든. 이건 굳은살 박히는 것보다 훨씬 심하다.”며 쑤군거린다.


바보 이반은 바보이다. 하지만 그는 오직 그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할 뿐 다른 사람을 속이기 위해 권모술수를 쓰지 않는다. 남을 비방하지도 않는다. 남을 흉보거나 욕하지도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 사저토지매입과 관련된 이광범특검팀의 수사에 속도가 붙고 있다. 실체관계에 서서히 접근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를 지켜본 청와대의 수사속도조절요청이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이광범 특검을 잘 아는 이시형의 변호인 이동명 변호사가 청와대의 의중을 은연 중 전달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바보 이반처럼 이광범 특검은 그러한 의사타진, 실제로는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모두 공개를 해버렸다. 그러니 청와대가 오죽 답답해지겠는가? 톨스토이는 자신의 단편소설 “바보 이반”을 통해 이 세상에는 이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어 하는 늙은 악마와 그 늙은 악마의 사주를 받아 행동대장처럼 움직이는 새끼 악마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경고한다. 악마의 덧에 걸리면 처음에는 승승장구하다가 결국 망하고 만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오직 바보 이반만이 그러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묵묵히 손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일하고 있다. 이광범 특검처럼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작은 악마, 큰 악마의 유혹을 모두 밝혀버리고, 웃어버리고, 무심히 바라봐 버리면 악마는 설 자리가 없게 된다. 톨스토이는 세몬, 타라스, 이반을 공략하려 파견된 세 명의 새끼 악마와 마지막에 나타난 늙은 악마가 자신들의 정체가 밝혀지자 큰 구멍을 파고 땅속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바보 이반”에서 표현하고 있다. 바보 이반이 악마들에게는 빛이었고 거울이었던 것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늙은 악마, 새끼 악마의 유혹대로 권력과 재물과 명예를 위해 권모술수를 남발하고 있다. 대통령사저용 토지구입사건의 실체가 밝혀져 가고 있으니, 이명박 대통령의 마음밭이 얼마나 타들어가겠는가? 범상치 않게 몇 억씩이나 되는 거액을 안방 장롱 속에 넣어 놓고, 현금으로 거래하는 등등 아주 상식 밖의 일들이 악마의 유혹을 받았을 정치검찰에 의해 “아무런 혐의 없음”이라는 황당한 결과로 사실이 은폐되자, 바보 이반 같은 이광범 특검이 나타나 “늙은 악마의 머리 터지는 일”로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으니, 바보 이반의 평화로운 나라가 도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보 이반의 나라는 정의로운 나라이다. 땀흘리는 자만이 그 대가를 받을 수 있고, 악마의 권모술수가 통하지 않은 세상, 그게 말년의 톨스토이가 일생 동안 사색한 결과 내린 올바른 사회의 참된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에 잠기게 된다.


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투표시간 연장요구라는 국민들의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현행 오전 여섯시부터 오후 여섯시로 되어 있는 투표시간을 오후 여덟시 아니면 아홉시로 두 세 시간 연장하자는 국민청원운동이 말이다. 박근혜 후보쪽에서는 선거일이 공휴일로 되어 있고, 연장하면 비용이 100억 정도 더 들게 되어 구태여 연장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문재인이나 안철수 후보쪽에서는 법정공휴일이 공공기관에는 적용이 되지만 일용노동자나 자영업자에게는 적용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퇴근한 후에 투표할 수 있도록, 외국의 사례에 비추어 연장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이정현 공보단장이 대통령 후보사퇴 시 선거비용보전받는 것을 포기하는 내용으로 선거법을 개정하면 투표시간 연장방안도 함께 논의해 볼 수 있다고 하자(아마도 문재인 후보쪽에서 이런 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문재인 후보쪽에서 그 안을 덮석 받아 응하겠다고 해버렸다. 그러자 당황한 새누리당이 두 안건은 별개의 사안이라며 다시 발을 빼고 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며, 또 다시 “바보 이반”을 떠올리게 된다. 순수한 바보 이반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 자신들이 했던 말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으며 오리발을 내밀려 손사래 치기에 바쁜 거짓에 찌든 사람들이 설 땅이 없는 세상, 그러한 세상이 오기를 기원했을 대문호 톨스토이의 지혜를 배우고 싶을 뿐이다. 당신은 바보 이반이 되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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