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박일만 시인의 “엿장수”, 그리고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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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박일만 시인의 “엿장수”, 그리고 정의
  • 법률저널
  • 승인 2012.10.2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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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 / 변호사 / 시인

 

마음이 삭막해지려 할 때면 나는 어김없이 동료시인들의 시집을 펴든다. 이성만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생각하고 살아가기에는 세상이 너무 어지럽기 때문이다. 아니 이성으로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황당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박일만 시인의 시 “엿장수”를 읽는다. “어느 시대의 검객인가/ 야밤을 피해/ 대낮에도 칼질을 해대는// 시대를 늦게 탄 외로운 검객인가/ 혼자서도 쌍칼을 들어 잘도 겨룬다// 아예 두 칼을 단단히 비끄러매고/ 더 이상의 후퇴란 있을 수 없다는 듯/ 비장한 각오로 불꽃을 튀긴다// 매미마저 도심나무 위에 숨어 칼을 가는/ 저 무림 속의 현대/ 우리들의 검객/ 마땅한 상대도 없이 무한정 고수를 찾아// 제 속의 저와 겨루며 사는// 대명천지에  칼꽃을 튀기며/ 온 동네를 피로 물들이는/ 예리한 손놀림의 저 검객” (박일만 시집 “사람의 무늬”에 수록, “엿장수” 전문, 애지 간).


박일만 시인은 엿장수의 칼질을 보며, 시대에 뒤떨어진 외로운 검객을 떠올린다. 아주 예전 어렸을 때 엿장수는 동네 아이들에게 달콤한 엿을 안겨주는 고마운 아저씨였다. 빈병이나 떨어진 고무신 또는 버려진 철조각 등을 가져다주면 어김없이 달콤한 엿으로 바꿔주었다. 그 엿을 들고 친구들끼리 소위 “엿치기”라는 내기를 하여 부러뜨린 엿 속의 틈새가 누가 큰지 내기를 했었다. 빈 공간이 크면, 속이 없으면 이기는, 조금은 웃기는 놀이가 바로 엿치기였다. 옛말에 “엿장수 맘대로”라는 말이 있다. 엿장수가 가위질을 도대체 몇 번 하느냐 라는 말도 되지 않는 질문에 나오는 정답이 바로 “엿장수 맘대로”였다. 전국을 떠돌며 엿판을 벌여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엿장수의 삶은 어찌 보면 고달프다. 그런데 우습게 “엿장수 맘대로” 속의 엿장수는 엄청난 힘을 가진 강자로 부각되기도 한다.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강자” 말이다. 엿장수가 자신의 가위를 가지고 열 번 가위질을 하든 스무 번 가위질을 하든 도대체 누가 통제하고 명령할 수 있단 말인가?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 건립을 위한 내곡동토지구입사건의 실체가 점차 베일을 벗어가고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아들 이시형씨를 불러, 내곡동 땅을 매입할 것과 매매대금에 대한 돈심부름을 시킨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매도인측에 의해 이시형 명의의 토지매입가격이 낮게 책정이 되고, 경호원용 토지매입대금이 의도적으로 높게 책정되어 이명박 대통령 개인이 부담해야 할 매매대금이 낮게 책정이 되고 국가가 부담해야 할 매매대금이 높게 책정 된 사실이 밝혀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큰 형 이상은씨 집에 이시형씨가 찾아가서 현금 6억 원을 받아 세 개의 가방에 담아 청와대로 운반하였다는 사실까지 밝혀져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할 때 이명박 대통령과 이시형씨가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혐의를 벗기 어렵고, 관련당사자들이 배임죄 혐의를 벗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핵심은 6억 원이라는 돈의 의심스러운 출처라고 할 것이다. 6억 원보다 더 많은 현금이 이상은씨 집 장롱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하니, 압수 수색과정에서 그러한 돈을 넣어둘 수 있는 규모의 금고가 없었다고 하는바, 과연 그와 같이 거액의 현금이 금고도 아닌 그냥 장롱 속에서 일상적으로 보관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일반 국민들로서는 쉽게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돈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현금을 보관하기도 한다는 관련자들의 말이 가관이라는 생각뿐이다. 호주머니에 평소보다 많은 현금이나 수표 등을 넣고 다닐 때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변을 자주 돌아보게 된다. 강도 피해 등을 입게 될 것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몇 억이나 되는 현금을 일상적으로 집안에 보관하는 사람들은 모르긴 해도 정상적이지 않다. 모두들 이용하는 은행의 기능을 무시하는 자들은 모르긴 해도 그 돈에서 구린 내가 나거나, 그 돈의 출처를 밝힐 수 없는 남모를 속사정이 있기 때문에 현금으로 돈을 보관하고 전달하고 했을 것이다.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전화 한 통화로 모든 은행거래가 이루어지는 이 편한 세상에, 일국의 대통령 아들이 돈가방을 챙겨들고 큰 아버지 집으로 가서 세 개의 가방에 돈을 나누어 싣고, 그 돈을 다시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것은, 그 돈이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으로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지 않겠는가? 마치 조폭영화나 부정한 뇌물전달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더 가관인 것은 최교일 서울지검장이 취중진담처럼 무의식 간에 밝혀버린 바와 같이, 검찰이 헌 칼을 엿장수 마음대로 써버렸다는 것이 특검조사과정에서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을 이 시대의 유일한 검객으로 자처해온 검찰은 내곡동사저부지매입과정의 관련자 모두를 “범죄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혐의불기소처분”을 내렸다. 말 그대로 “엿장수 맘대로” 국가형벌권을 부당하게 행사해 버린 것이다. 그러한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박일만 시인은 “엿장수”라는 저 시를 통해 하루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대인을, 소시민들을 향해 “시대를 늦게 탄 외로운 검객”이라며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더 이상의 후퇴란 없다.”며 낭떠러지 위에 서서 절벽 아래로 추락해야 하는가, 아니면 어려운 현실을 붙들고 매미처럼 울면서라도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가 되묻고 있다. 박일만 시인의 엿장수는 고달프다. 하지만 박일만 시인은 마지막에 절창을 부르짖는다. “대명천지에 칼꽃을 튀기며 온 동네를 피로 물들이는 예리한 손놀림의 저 검객”이 바로 엿장수라며 말이다.


이광범 특검체제, 새로운 무림고수가 중원에 출현하였다. 중학생시절 읽었던 무협지의 이름 잊혀진 주인공처럼, 이광범이라는 무림고수, 엿장수가 나타나 제대로 된 특검의 가위질을 해대니, 청와대가 떨고, 검찰이 떨고, 부정부패를 저지른 자들이 벌벌 떨고 있다. 자신들만이 엿장수인 양 달콤한 엿을 언제나 떼어 먹으며, 그 무딘 칼날로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며 맘 놓고 약자들만을 향해 가위질을 해대던 엿장수들이 된통 서리를 맞게 되었다. 청와대는 떨고 있지만, 정의에 굶주렸던 무림의 정파고수들은 환호하고 있다. 제발 이번 특검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고, 여태 자신들만이 엿장수인 양 맘대로 가위질을 해대던 자들의 불의를 밝혀줄 것을 말이다. 앞으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궁금하면서도 진실이 점차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하겠다.


박일만 시인의 또 다른 시 “상처가 사람의 무늬를 만든다”를 읽으며 시인의 새로운 발견에 함께 동조하며 웃는다. “포경수술을 하고 온/ 중학교 삼 학년/ 아들 녀석을 보고 우리 부부는/ 웃었다/ 투정과 장난기 덕지덕지 하던 얼굴/ 온데 간데 없고/ 제법 근엄한 미륵불 같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듯/ 무거운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소리 없는 등짝을 타고/ 들바람, 산구름, 눈, 비 들이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빠르게 건너가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도 예전 그 모습/ 돌아오지 않아 웃었다/ 녀석,/ 깊어지고 있었다.”(전문, 위 같은 시집에 수록).


포경수술을 통해 소년에서 청년으로, 한 남자로 성장해 가는 아들의 내공을 보며 “녀석, 깊어지고 있었다”고 감탄하는 아버지, 아니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엿장수 앞에서, 엿판 앞에서 엿 사달고 생떼를 부리던 아들이 포경수술을 통해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이 함께 클로즈 업 되면서, 깊어지는 인간을 생각한다. 그래, 사람이 나이가 들면 생각이 깊어지고, 성찰이 깊어지면 헛된 욕망이 사라지게 될 것인데, 나이가 들수록 노욕이 더 커지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발견하게 된다. 내 자신부터 나이가 들어 갈수록 욕심이 더 많아지는 것 아닌가 염려스러울 때가 있으니 말이다.


이제 세상은 약자의 엿장수 맘대로도 허용되지 않지만, 강자의 엿장수 맘대로도 허용되지 않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사람의 인격과 품성에 의해 엿장수 맘대로의 탐욕이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발달로 더 이상 엿장수 맘대로의 탐욕이 허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후보가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한 기자회견 뒤 끝에 “정의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고 폭탄발언을 하였다. 맞는 말이다. 우리 모두는 “정의가 패배하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라는 생각을 가슴에 품고 산다. 정의가 승리해야만 이 세상이 올바른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저 말만 딱 떼어놓고 보면 정답이다. 다만 문제는 저 말을 정의로운 자가 하는 것인지, 아니면 불의한 자가 반성하며 하는 말인지 아니면 불의를 감추며 자신을 핍박받은 자로 호도하며 하는 것인지에 따라 저 말이 우리의 가슴에 와 닿으며 공명하게 되는지, 아니면 희화화되는 것인지 달라질 뿐이다. 사회과학에서 어찌 보면 “정의라는 개념은 ‘엿장수 맘대로’”인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와 네가 생각하는 정의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상처를 통해 말수가 줄어든 중학교 3학년 아이의 모습에서, 이광범 특검의 공정한 수사과정을 통해 점차 밝혀지고 있는 내곡동사저토지매입사건의 실체를 지켜보면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잠기게 된다. “그래, 정의가 결코 패배하는 일은 없어야지.” 하며 위로를 받는다.


“더 이상의 후퇴란 있을 수 없다는 듯 비장한 각오로 불꽃”을 튀기는 이 시대의 엿장수, 그 엿장수가 비록 시대에 뒤떨어져 부정한 권력과 야합하지 못하고, 도심 속 나무 위에 숨어 칼을 갈아 왔던 저 무림 속의 “현대판 엿장수, 우리의 검객”이 되어 정의를 밝히고 진실을 밝혀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 정의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 거야. 박근혜 후보의 근엄한 표정 속에 오버랩되는 저 말 “정의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는 말에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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