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말춤(horse dance)과 말춤(verbal dance), 그리고 이웃의 도둑 공모자들을 잡아야 할 이웃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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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말춤(horse dance)과 말춤(verbal dance), 그리고 이웃의 도둑 공모자들을 잡아야 할 이웃사람
  • 법률저널
  • 승인 2012.09.0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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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변호사/시인

 

연예인의 인기 여부는 당시의 시대상을 얼마만큼 제대로 반영했는지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현상일 수 있다. 가수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이 우리나라를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모르긴 해도 거의 모든 나라에 강남스타일로 상징되는 사회현상이 인류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강남스타일이 이를 적나라하게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강남스타일에 등장하는 싸이의 말춤은 세상 모든 남녀들이 어렸을 때 집안에서 타고 놀았던 흔들목마의 잠재된 추억을 일깨우고, 디즈니랜드나 서울대공원에서 탔던 아름다운 회전목마추억을 불러 일으켰다고 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서양인들은 말을 타고 세계를 정복했을 알렉산더대왕이나 나폴레옹의 정복의 역사, 광활한 서부의 황금을 찾아 북미대륙을 횡단했던 선조들에 대한 향수를 자극받았을 수도 있고, 몽고인이나 중국인들은 광활한 만주벌판이나 중국대륙을 질주하며 세계를 재패하고자 다른 민족을 침탈하며 희열에 들떴을 자신들에게만 자랑스러운 문명의 추억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강남스타일의 노랫말이 현대 사회의 위선적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출하고 있어 공감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한 마디로 말해 “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 군상에 대한 통렬한 야유”를 보내는 노래라고 볼 수도 있다. 겉으로는 고상한 척, 점잖은 척 하지만 실제로는 속물적이고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현대인의 진면목을 가감 없이 그대로 표출한 노랫말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이렇게 자신의 위선적 진면목이 그대로 까발려지면 대부분의 사람은 부끄러워하거나 염치없어 한다. 위 고발적 노래가사를 진중하게 표현했더라면 아마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가수 싸이는 체화된 추억으로 인간 몸속에 내재되어 있는 말춤에 이를 연결시킴으로써, 말을 탄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안장 위에서 자신의 몸을 의도되었든 의도되지 않았던 들썩거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처럼 노래를 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흔들게 만듦으로써, 노랫말처럼 자신의 위선이 폭로되는 데도 부끄러워할 마음을 품을 여유조차 주지 않도록 작동함으로써 폭발적 호응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쉬우면서도 비슷한 후렴구를 반복함으로써 누구나 쉽게 친근해지도록 만들어 버렸다. 멋진(?) 포장을 철저하게 까부셔 버리는 강남스타일 노랫말에 전 세계인이 열광한 덕분으로 한류의 폭풍적 성장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니 이 또한 국익에 좋은 일이다.


영화 “도둑들”이 한국영화 역대관객수에서 2위에 등극하였다. “도둑들”이 2위였던 “왕의 남자”를 뛰어 넘어 이제 1,301만여 명의 관객을 모아 역대1위였던 “괴물”에 다가서고 있다. “괴물”에 비해 약 30만 명 정도 부족하다니 향후 열흘 남짓이면 1위에 등극할 수도 있겠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도둑들”에 이어 최근 개봉된 “이웃사람”과 “공모자들”이 그 흥행열기를 이어 여름 극장가를 후끈 달구고 있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도둑들”은 마카오 카지노에 숨겨진 시가 2천만 달러를 호가하는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치기 위한 10명의 도둑놈들의 에피소드를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웃사람”은 우리 이웃에 평범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연쇄살인범을 이웃사람들이 서서히 범죄 단서를 발견하고 이를 취합하면서 붙잡게 되는 스토리로 되어 있다. “공모자들”은 공해상의 선박 안에서 승객이 납치되고 그의 몸에서 장기가 적출되어 매매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영화 “도둑들”은 돈을 향한 인간의 집요함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왕년의 화려한(?) 전과자 10명이 국적을 불문하고 함께 모여 태양의 눈물이라는 다이아몬드를 도둑질하면서 또 서로 간에 속이고 속는 상황까지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 “이웃사람”은 괜히 우리 주변을 한 번 되돌아보게 만들며 도대체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그러면서도 누군가, 우리 이웃을 믿고 살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도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 “공모자들”은 돈을 위해서라면 사람의 장기마저도 돈벌이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인간 한계의 극한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강남스타일과 각기 제목이 다른 위의 세 영화가 흥행몰이를 계속하고 있음은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강남스타일로 상징되는 위선이 넘쳐나고 있는 세상,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하여 남의 소중한 재산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장난치듯 절취계획을 세우고 첨단과학기술을 총동원하여 즐기면서 도둑질하는 인간들이 산재되어 있는 세상,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이도 돈 몇 푼에, 또는 기분이 나쁘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정신세계를 가진 이웃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세상, 돈 몇 푼을 위해 자신의 몸을 팔거나 남의 몸의 장기를 강제로 적출해 내면서 인간을 도구화해버릴 수도 있는 참혹한 세상이 일상화되어 가고 있는 사회적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범죄가 넘쳐나고 있다. 신문을 보기가 겁이 나고 뉴스를 듣기가 겁이 난다. 곳곳에서 살인사건이, 강도사건이, 성폭행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법을 전공하는 필자로서는 “사람 사는 곳에 범죄 있다.”라는 진리(?)를 믿고 사는 것이 팔자려니 싶어 범죄발생을 수인할 수밖에 없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 역사 이래 범죄는 있어 왔고, 이에 따른 처벌이 뒤따랐으며, 범죄 예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음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범죄율의 발생 추이를 보면 세상이 살기 좋으면 범죄율이 줄어들고, 살기 힘들면 범죄율이 높아지는 현상을 보인다는 사실이 수많은 연구결과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다시 말해 살만하면 구태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없어 사회전체적으로 범죄가 급격하게 준다는 것이다. 이런 바탕 하에서 사회적 행위론과 사회적 책임론이라는 형법이론이 개발되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 사회환경을 좋게 만들면 범죄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런 사회환경을 만들기 위해 국가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흉악한 범죄영화가 국민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고 있음은 국민들의 심성 한 군데에 위와 같은 범죄의 가해자가 되고 싶어 하는 충동적 가해의식이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무의식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반증이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어떠한 반대급부가 주어져도 무관심한 성향을 보이지만, 관심이 가는 부분은 돈을 내고서라도 부응하려는 성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나, 도둑들을 필두로 한 다수인을 상징하는 위의 영화제목들은 현재 대한민국의 집단적 위선성, 가해성, 감시성, 피해성을 표출하는 상징어로 기능하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둑들도 복수이고, 이웃사람도 다수이고, 공모자들도 복수를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특히 공모자들은 공모자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복수성을 띠고 있는데 거기에 더 강하게 “들”을 붙임으로써 복수성을 강조하고 있음은, 그리고 그 강조된 복수성 속에 숨어 있는 개인성은 분명히 가해자임에도 가해행위 후 다중성에 숨어버림으로써 개인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현대인의 이중적 심리구조를 의식적이 되었든 무의식적이 되었든 잘 지은 제목으로 보인다. 이에 무의식적으로 국민들이 동조하고 있는 것이 위 영화들의 흥행원인으로 보인다.
국가는 최초에는 깡패조직이었을 뿐이다. 원시시대에 무슨 국가가 있었겠는가?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있었겠는가? 단순히 일 대 일의 단순한 대결구도였을 것이다. 거기에서 두 사람이 힘을 합치게 되자 흩어져 있는 백 명을 지배할 수 있게 되는 원리를 깨닫게 되면서 점차 구조적으로 집단화 되었을 것이고, 종국에는 몇몇이 힘을 합친 후 우리가 너희를 지켜 줄 테니 보호세를 내라고 요구하면서 세금제도가 생겼을 것이고, 집단 간의 정벌이 반복되면서 일정한 영토가 구획되자 이를 지키기 위해 군대의 징집이 이루어지면서 국가체계가 갖추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국가권력을 맡은 자가 가렴주구에, 탐관오리에, 불평등권력을 남용하자 프랑스대혁명을 필두로 시민들의 혁명이 일어났을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도 4.19혁명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리하여 제대로 된 현대문명문가는 모두 “공화국”을 천명하고 있고, 국가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주권재민사상이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권력은 국민에게 겸손해야 하고, 국민을 지키기 위해 치안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흉악한 범죄가 양산되고 있음은 국가가 결국 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상황에 이르면 국가, 다시 말해 대통령이 국민 앞에 석고대죄를 해야 하는 것이 옳은데, 오히려 반대로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강공책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은 범죄자들로부터 피해를 당할까 봐 일상생활에서 공포를 느끼게 되고, 남용되는 국가공권력의 행사로부터도 두려움을 갖게 되어 이중적 공포에 시달리게 되고, 결국 위축된 심리가 심하게 되면 극심한 외상성 트라우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올해 말 있게 될 18대 대선을 앞두고 정부가 강경일변도의 범죄예방책을 계속 쓰게 되면, 국민들은 심리적 위압감 때문에 공정한 판단에 의한 투표행위를 하지 못하게 되는 사회적 현상마저 나타나게 될 수도 있음에 우리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공포심을 갖게 되면 사람은 보수적이 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후보로 상징되는 현 여당에게 유리한 투표결과로의 진행이 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누가 덜 강남스타일인지, 누가 덜 도둑이고, 누가 더 친근한 이웃사람인지, 누가 더 집단범죄의 공모자들인지 우리 모두는 지켜 볼 일이다. 말춤을 추면서도 말이다. 자, 말춤을 추자, 말 위에서의 말춤만이 아닌, 서로서로 말을 하고 또 말을 해서 진실의 언어가 살아 춤추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말춤 말이다. 자, 당신 두 발을 벌리고 말춤 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 깨끗하게 양치질한 후 혀끝을 세워 진실을 노래할 말춤 출 준비도 되어 있는가? 두 가지 다 잘 하는 현명한 국민이 되었으면 한다. 나도 말춤을 배워야지. 에이, 나는 재미 하나 없는 교수스타일! 당신은 무슨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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