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꿀맛 보다 꿀에 빠져 죽는 파리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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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꿀맛 보다 꿀에 빠져 죽는 파리떼
  • 법률저널
  • 승인 2012.08.0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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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변호사/시인

 

선동과 구호는 무지몽매한 민중을 강하게 중독시키는 힘이 있다. 아니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마저 중독시키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가랑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옷이 흠뻑 젖는 현상처럼 말이다. 그러기에 국민들은 정치가들의 선동과 구호에 세뇌당하기 전에 그들의 선동과 구호를 냉정하게 비판할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론이 그렇다는 것일 뿐이지, 지혜로운 자들조차 선동과 구호에 휩쓸려가기 쉬운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게 휩쓸려가는 스스로에 대해 “어, 어, 어” 하고 인식하면서도 그냥 휩쓸려가 버리고 마니 황당해지는 것이다. 마치 미끄러운 얼음판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차가 쓰윽 미끄러지며 사고가 날 때 “어, 어, 어” 해보지만 속수무책인 경우처럼 말이다. 그러기에 선동과 구호의 중독성을 잘 알고 있는 정치가들은 아주 적절한 곳에서 선동과 구호를 사용하려고 타이밍을 찾는 일에 분주하다. 그게 먹혀들면 소위 홈런을 치는 효과를 톡톡히 보지만, 잘못되면 시중에서 말하는 소위 “쥐약”이 되어 사람 꼴 우습게 되어 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여론 또한 묘한 것이라 쥐약 같아 보이는 선동과 구호인데도 아주 잘 먹혀 들어갈 때가 있는가 하면, 명백하게 잘못된 것 같은데도 오히려 사람들이 환호하며 지지를 보내는 경우가 있다. 정말 그러기에 세상사 알다가도 모를 노릇인 것이다.


손자병법에는 최대의 공격이 최대의 방어라는 말이 있다. 그러기에 선제공격을 통해 상대방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전법이 많이 이용된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말꼬리싸움”으로 끝나는 싸움을 종종 보게 된다. 처음에는 A라는 본질적 문제를 놓고 싸움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한참 싸우다보면 본질적 문제는 어디로 사라져버린 채 “당신이 뭔데 나에게 반말이야?”라는 식의 말싸움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이때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사람은 대부분 본질적인 문제에서 잘못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본질적인 문제로 싸우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세를 역전시키고자 “본질과 무관한 사소한 말꼬리”를 물고 싸움의 방향을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그게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본질에서 우세한 자는 상대방에게 말꼬리를 잡히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어디 싸움판에서 그러한 절제가 잘 지켜지는가 말이다. 싸움판이 벌어지면 흥분하게 되고, 흥분하면 할수록 반성하지 않은 상대방에 대한 분노가 치솟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나오는 말의 강도가 쎄지게(이럴 때 ‘세어지게’ 라고 표준말을 쓰면 참 재미없는 표현이 되고 만다) 되고, 그게 결국 상대방에게 약점으로 잡혀 오히려 공격을 당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기에 도덕적으로 우월한 자, 명분에서 우월한 자는 싸울 때도 언행에 조심할 일이다. 이게 잘못되면 본질에서 이겨야 할 자가 말꼬리싸움에서 지게 되어 오히려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그래도 본질에서 옳은 자는 좀 억지스러울 필요가 있다. 이미 본질에서 진 상대방은 옳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옳지 않은 자에게 말꼬리싸움에서 지게 되면 좀 황당하지 않는가? 그러니 상대방의 억지스러움을 더 억지스러움으로 이겨버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부터 시비를 걸지 말아야 한다.


통합민주당 이종걸 최고위원의 박근혜 의원에 대한 “그년 서슬이 퍼래서”라는 트위터 막말로 세상이 시끄럽다. 그런데 이종걸 의원이 저 말은 박근혜의원계로 분류되어 온 현영희 의원이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받는 대가로 또 다른 측근인 현기환 공천심사위원에게 3억 원을 불법제공한 사건에 대해, 당시 새누리당비상대책위원장으로 돈을 받은 현기환 전 의원을 공천심사위원으로 임명한 박근혜 의원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라고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즉 본질은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 선정과정에서 오고 간 불법적 공천헌금 3억 원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박근혜 의원이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위 불법공천헌금사건이 불거졌는데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사실로 밝혀지면 황우여 당대표가 책임을 지겠다거나, 그들을 제명하는 것으로 종결지었으니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자고 하니 열 받은(진짜 열 받았겠지, 열 안 받으면 야당 의원이 아닐 테니) 이종걸 의원이 그 열을 식히지 못하고 막말을 해버린 것이다. 그러자 부정공천헌금문제로 정치적 곤경에 빠져 우왕좌왕하던 새누리당은 옳다구나 하고 “이종걸 의원의 ‘그년’ 한 마디”를 물고 늘어지며 말싸움을 시작해 버린 것이다. 어찌 보면 앞서의 말꼬리싸움의 전형적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종걸 의원은 결국 사과를 하였지만, 위와 같은 막말파동을 불러올 단초를 제공하지 말았어야 한다. 설령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더라도 속으로 삭혔어야지 이를 공공연히 표현하는 것은 자제했어야 한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이렇게 끊임없이 불법적 공천헌금을 주고받으며 매관매직을 할까? 그것은 정당독재 때문이다. 정당이 상향식 민주정당이라면 정치가들이 국민과 지역 주민들을 두려워할 것인데, 위에서 정당대표자의 입맛에 따라 후보자가 임명되는 독재정당시스템이다 보니(모든 정당은 내부적으로도 민주적이라고 말을 하지만 당원들만의 투표로 뽑지 않으니 민주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하겠다) 결정권을 행사하는 상층부 몇 사람에게만 잘 보이면 되고, 잘 보이는 방법 중의 하나가 돈보따리를 싸들고 “여기 시꺼먼 돈 가져왔습니다.”하고 가져다 바치고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리는 수법을 쓸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엄청난 돈을 뿌리고 국회의원이 된 못된 자들이 제대로 입법활동이나 국정감사기능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본전 생각에 두고두고 이권에 개입하고 부정한 짓을 저지르는 데 앞장설 것이니, 그러한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되돌아오지 않겠는가? 이런 나쁜 자들을 향해 정상적인 국민이라면 “못된 년ㆍ놈들”이라고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나쁜 자들을 향해 “아주 나쁜 짓을 하시는 분이시군요, 호호호”라고 아주 젊잖게 말하며 웃는 얼굴을 보이라는 것은 위선이다.


도둑놈을 도둑놈이라 하고, 도둑년을 도둑년이라 표현해야지, 도둑놈을 도둑분이라 하고 도둑년을 도둑여사라고 하는 것은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국어에 대한 모독이다. 시인인 나에게 국어는 그렇다. 도둑놈을 도둑놈이라 하고, 도둑년을 도둑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모든 국민은 사석에서 “저런 도둑년놈들”이라고 비난하고 욕하다가, 공적인 자리에서 “어마나 도둑님, 도둑분, 도둑선생님 오셨어요, 호호호 또는 하하하”라고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것은 좀 낯간지럽지 않는가 말이다. 현영희 의원 말고도 몇 몇 의원들이 추가로 공천헌금이 문제되어 수사대상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잠복되어 있는 불법 공천헌금문제는 계속해서 불거지며 박근혜 의원의 대선가도에 복병이 될 지도 모르겠다. 왜 이리 새누리당은 “불법적인 정치자금문제”에 발목이 잡힐까? 이러한 점은 전국비례대표후보의 공천헌금을 특별당비라는 명목으로 선거자금조달창구로 이용해 온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도 마찬가지 아킬레스건이었음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3김시대로 상징되는 박정희 3공화국시절이나 전두환으로 상징되는 5공화국시절이나, 아니 지금도 동일반복되고 있는 이 구태를 우리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정당민주화를 이룩할 때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정당민주화, 다시 말해 상향식 민주주의를 도입하겠다는 통합진보당의 비례후보 경선과정에서 다시 부정투표시비가 끊이지 않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진보당의 분당 내지 신당창당문제가 문제되고 있으니, 도대체 상향식도 안 되고 하향식도 안 되는 대한민국 정당정치는 어디에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인가? 참으로 절망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정당독재정치에 식상한 많은 국민들이 정당정치인들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안철수 교수에게 환호하며, 정당독재정치를 종식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으니, 어찌 되었던 정당도 바뀌기는 바뀔 것이다. 시대적 소명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러한 사회적 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나쁜 습성에 절어 있는 자들을 단칼에 베어내는 “읍참마속”의 결단이 국민운동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나쁜 짓에 익숙한 놈은 자신만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그 나쁜 짓에 끌어들인다. 그러니 그 나쁜 놈이 나쁜 짓을 하지 못하도록 이권이 개입될 수 있는 연결고리를 확실하게 끊어내는 국민적 결단이 요구되는 것이다.


또 다시 발생한 불법공천헌금제공사건을 보면서 “꿀맛을 알아 버린 파리떼들”을 연상하게 된다. 마치 달콤한 꿀맛을 알게 된 파리가 자신의 다리가 꿀에 달라붙어 버리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 채 꿀에 탐닉하다가 결국 온 몸이 꿀칠되어 꿀에 빠져 죽는 현상 말이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라 나쁜 짓도 자꾸 하게 되면 무덤덤하게 되어 자꾸 더 나쁜 짓을 죄의식 없이 범하게 된다. 박근혜 의원의 수난시대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는 칠푼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나, 이종걸 의원으로부터는 그년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나. 하지만 지금, 박근혜 의원은 이런 극단적 표현이 나오고 있는 국민적 정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런 적대적 표현에 대해여 무작정 분노만 하고 있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성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입으로만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앵무새처럼 되뇌이고 있을 것인지, 아니면 최저임금이 시간당 4,580원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절감하고, 그렇게 적은 돈으로 도대체 어떻게 인간다운 생활을 꾸려갈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소통의 가슴이 되어 서민들과 아픔을 함께 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릴 것인지. 파리떼가 들끓는 곳은 원래 똥통이다. 그러니 똥통을 깨끗이 치우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진정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휴우, 어떻게 해야 변해야 하나, 참으로 어려운 숙제다,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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