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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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의미
  • 김현
  • 승인 2012.06.1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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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대법원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에 강제 징용된 한국인 피해자가 제기한 소송에서 두 기업이 피해자들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일본기업에게 우리 국민의 강제징용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있음을 명백히 선언한 판결이다. 작년에 헌법재판소가 ‘한국정부가 한·일 청구권 협정을 이유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체결에 따른 국내보상을 위해 한시법으로 「청구권 자금 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대일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1975년에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보상을 실시했다. 행정안전부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 신고된 피해자는 22만명에 달하며, 2010년경부터는 이들에게 인도적 위로금을 지원하기 위해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시행했다.


이번 판결은 그 동안 국내법원의 판단에 걸림돌이었던 한일 청구권협정의 적용범위, 일본법원 판결의 기판력, 소멸시효를 획기적으로 달리 해석했다. 우선 일본법원 판결은 강제징용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충돌한다는 이유로 일본법원 판결의 기판력을 부인했다. 또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근거로 “한국 정부가 5억달러의 차관을 받는 대신 개인들의 청구권은 포기하였다”는 주장에 대하여는,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대한민국 국민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하였다. 또한 대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구 미쓰비시중공업, 구 일본제철과 법적으로 동일한 회사로 평가하여, 법인격부인론을 주장하는 일본 기업의 파렴치한 주장을 기각했다.


이번 판결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할 것이지만 국민 개인이 실제로 판결에 따른 손해를 배상 받는 것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원심에서 보상금액의 범위를 전혀 논의하지 않았으므로 파기환송심에서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며, 68년 전 사건의 보상금이므로 계산하기도 쉽지 않다. 더구나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 정부도 아직은 미온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제는 정부가 나설 차례다. 그간 정부는 일제 피해자 문제를 개인 차원의 일로 방관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경우에도 2011년 8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나온 이후에야 일본 정부에 양자 협의를 제안했다. 이번 판결의 주심 대법관이 건국하는 심정이라고 밝힌 것에서 보듯, 대법원의 역사적 의지를 반영한 이번 판결을 단순한 상징적인 판결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 정부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집행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원책을 강구해야 하며, 사회 각계는 일본 정부와 기업을 압박할 필요가 있다. 중국 정부와 경제계가 한 목소리로 전범기업인 일본 니시마쓰건설을 압박한 결과, 2009년 중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543명에게 47억원을 지급한 예가 있다. 독일은 나치 정권 당시 외국인 강제노동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위해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100억 마르크(7조 8천억원)를 출연 받아 2000년 ‘기억·책임 및 미래재단’을 설립했다. 2차 세계대전 외국인 피해자들이 독일 회사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하자 대안으로 재단을 세운 것이다. 강제징용, 군위안부 동원 등 반인륜적인 전쟁범죄를 저지르고도 배상은커녕 속죄나 사과조차 거부하는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일제 강점기 이국땅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던 피해자들이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을 연 이번 판결은 매우 뜻 깊다. 일본 정부와 기업은 과거에 저지른 과오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아픔을 달래주어야 한다. 일본 사법부도 반인도적 형사범죄의 공소시효 배제와 같은 세계사법의 정신을 적극 수용해 인류의 보편적인 정의 관념에 입각한 판단을 해야 한다. 한·일 간의 진정한 협력은 일본의 솔직한 양심고백으로부터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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